절 방문 스님·도반들에 늘 차공양
개방적인 생각…불교문화 일가견
조주스님은 도를 묻는 많은 납자들에게 “차나 한잔 하게” 라고 말하곤 했다. 아리송한 진리를 묻는 구도자에서 단순한 안부를 묻는 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던진 차 한잔의 의미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모든 것이 부질없으니 차나 한잔 마시라는 말인지, 아니면 뭐라고 해도 모를 일이니 차나 마시면서 속을 달래라는 것인지, 분별사량으로 헤아리지 못하겠다. 오늘 이 시대에도 끝없는 차 공양을 실천하는 스님이 있다. 바로 통도사승가대학의 강사 우진 스님이다.
스님 방에는 언제나 스님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큰 절(통도사)에 행사라도 있는 날이면 말사 주지소임을 보는 스님들이나 도반, 그리고 선 후배 스님들이 가장 만만하게 들르는 방이기도 하다. 스님들이 오면 으례 차를 달여 쉼없이 내 놓는다. 그리고 그동안의 안부를 서로 물으면서 걱정과 격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공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우진스님 방은 크지는 않지만 ‘스님들의 사랑방’이다.
우진 스님의 성격은 원래 깔끔하다. 같은 승복인데도 우진스님이 입은 승복의 모양새는 단정하기 그지 없다. 어디 내 놓아도 어쩔 수 없이 스님이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출가의 길이 잘 어울리는 스님이다. 체구는 깡말라서 살을 찾을 수 없고 무테안경은 수행자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가 펼치는 논리는 질서가 있다. 그래서 도반들은 ‘호락호락하지 않는 냉정한 이론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정이 메말랐거나 모가 나 있지 않다. 어찌나 유(柔)한지 스님 전체가 부드러움 그 자체다. 남을 향한 마음에서는 모나고 독단적인 면을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성격을 보였다면 스님 방에 그처럼 사람들이 모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에게는 고집스러운 인내심이 있다. 대학 도반인 나로서는 벌써 2십년을 보아온 셈인데, 우진스님은 백상원(동국대 비구스님 기숙사) 때부터 혼자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다.
강원에서도 더러는 쉬어가며 공부하는데, 유독 우진스님 혼자만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꾸준히 공부했다. 그 노력과 끈기가 옆에서 보기에 아름다웠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어디 가서 더 배운 것 없이 은사인 종범스님(중앙승가대 총장)으로부터 전강을 받기에 이르렀다.
스님은 언제부턴가 사찰의 문화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직접 사진기를 들고 전국 각지의 사찰과 문화유적을 찾아 다니더니 사찰건축과 탑, 불상 등 우리 불교문화의 자료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전문성도 갖추었다. 그렇게 모은 것을 법회나 강의에 활용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것도 스님이 가지고 있는 은근과 끈기의 소산이라고 생각한다.
공군법사 시절의 추억도 새롭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여윈 체구에 잠자리 날개 같은 물색 깨끼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국악 하는 사람이나 혹은 새 신랑 같은 이미지였다면 어느 정도 상상이 갈 것이다. 그렇게 멋쟁이였다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옷만 멋쟁이가 아니라 공군교육사령부 법사시절에는 훈련병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했고, 일반 가요를 법회시간에도 부를 정도로 개방적인 사고를 가졌다. 그래서 우진 스님은 인기법사였는데, 사병뿐 아니라 부대의 모든 불자와 관사의 가족들에게까지 깔끔하고 화통한 법사로 기억되고 있다. 내가 우진 스님의 후임으로 근무했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서 안 사실이다.
대학 입학과 더불어 만난 우진 스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다. 한때는 영어 화엄경을 보면서 한문으로 보는 경전의 묘미도 적지 않지만 영문으로 보니까 이해가 더욱 명확하게 다가오는 재미가 있노라고 기뻐하기도 했다. 거기다 강의 내용을 전산화하는 작업을 오래전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스님방의 책상에는 항상 컴퓨터 모니터가 꺼지지 않았고, 바닥에는 찻상이 소담스런 대화를 나눌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학자적인 면에서부터 어느 순간에는 사진기에 역사의 흔적을 담는다고 현장을 바쁘게 움직이는 탐구적인 모습까지 그의 삶에는 낭비가 없다. 십년을 훨씬 넘는 세월을 통도사승가대학에서 강의하는 것도 그렇고, 도반들과 차 한 잔을 놓고 가지는 여유는 멋스러움의 극치다. 언제나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조화롭게 보여주는 우진 스님을 항상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한나래 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