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가까이 하고 가르침 실천하라”
보현행은 믿고 구하는 사이 자연히 성취
선재동자가 지난날의 어두운 삶을 참회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을 발원하며 바른 길로 인도해주기를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청하는 것을 듣고난 문수보살은 그가 이미 보리심을 발해서,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보살행을 묻고 보살도를 닦으려 하는 정신을 칭찬하면서 “선지식들을 가까이하고 공양하는 것이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기 때문에 이 일에 고달파하는 생각을 말라”고 당부한다.
문수보살이 선재동자에게 가장 먼저 선지식을 친근하고 공양할 것을 권하면서 결코 이 일에 고달파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은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에 선지식의 의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다. 진실로 화엄경 입법계품은 모든 대승경전 가운데서 선지식의 의의와 그 중요성을 가장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수보살의 가르침은 분명히 선재동자의 구도 과정 전체를 일관하는 근본정신이다. 선재동자가 많은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는 것도 이러한 입장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결코 없다. ‘선지식을 구하고, 선지식을 친근하고, 선지식을 공경하고 공양하는 것’은 보살도를 성취할 수 있는 근본태도다.
보살도를 닦으려면 먼저 선지식을 친견하고 공양하라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은 선재동자는 다시 보살행을 배우고 닦으며, 보현행을 빨리 원만하게 하는 법을 묻는다. 이에 대해 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는 것이다.
“광대한 서원을 세워서/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세상 사람을 위하여/ 보살행을 닦나니// …방편바다에 들어가/ 부처의 보리에 머무르면/ 지도하는 스승을 따라 배워서/ 온갖 지혜를 이루게 되리// 그대 모든 세계에 두루하며/ 티끌 같은 겁 동안에/ 보현의 행을 닦아 행하면/ 보리의 도를 성취하리라”
보살행이란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주기 위해서 닦는 것이며, 스승의 지도를 따라 배워서 온갖 지혜를 이루게 되며, 일체의 시간과 장소에서 항상 모든 중생에게 이로움을 주고 자비로운 행을 펼치는 보현행을 수행하여 도를 성취하게 된다는 것을 설한 것이다. 여기에 보살행을 닦는 목적과 방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에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이 이토록 강조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선지식이 법을 설해주는 훌륭한 스승으로서 모든 법을 바르게 잘 알아서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광명의 세계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입법계품>에서 “선지식은 모든 나쁜 길을 널리 구호하며 여러 평등한 법을 널리 연설하며, 모든 평탄하고 험난한 길을 보이며 대승의 깊은 이치를 널리 열며, 보현의 모든 행을 널리 닦기를 권하며, 온갖 지혜의 성에 널리 인도하여 이르게 하며, 법계의 큰 바다에 두루 들어가게 하며, 삼세의 진리의 바다를 널리 보게 하며, 여러 성인의 가르침을 보여주며, 모든 청정한 법을 널리 자라게 해준다”는 바로 선지식의 의의를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지식을 친근하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공덕이 있다. <입법계품>에서 “선지식이 가르치는 대로 수행하면 부처님 세존이 모두 환희하며, 선지식의 말을 순종하면 온갖 지혜를 갖춘 경지에 가까워지며, 선지식의 말에 의혹이 없으면 모든 선지식을 항상 만날 것이며, 마음을 내어 항상 선지식을 떠나지 않으려 하면 모든 이치를 구족하게 된다”고 설한 것은 선지식을 친근하면 수승한 공덕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식이 지혜의 광명을 비추어 주는 근원으로서 부처님을 대신해서 법을 설해주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선지식을 친근하는 의의와 공덕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진실한 세계에 새롭게 눈을 뜬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최초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보현행을 닦아서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것과 그 보현행을 갖출 수 있는 도(道)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현행을 갖추는 것은 선지식을 믿고 그의 가르침을 구해가는 사이에 자연히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선지식을 찾는 일에 싫증을 내거나 게으른 생각을 내지 말고, 선지식을 보고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말고, 선지식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고 선지식의 교묘한 방편에 허물을 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서 남쪽의 승낙(勝樂)이라고 하는 나라의 묘봉산(妙峯山)에 있는 덕운(德雲)비구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닦으며, 살이 어떻게 보현의 행을 빨리 원만하게 하느냐”고 물을 것을 권하는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