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과 뚝심으로 지극히 기도
순박하면서도 흥과 멋 아는 스님

통도사 승가대학에서 공부하던 때의 일이다. 윗반에 순박하고 뚝심 있는 강원도 사나이가 있었다. 내 고향이 강원도라서 더욱 정감이 갔는지 몰라도, 유난히 느껴지는 강원도 억양의 말투도 그렇고 생긴 것도 울퉁불퉁한 감자바우의 전형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소식을 모르지만 내 기억속의 진각스님은 참 지극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명부전에서 칠일기도를 시작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신심이 나서 스스로 시작한 기도라서인지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회향하는 날 본인도 깜짝 놀랄 사건이 일어났다. 마지막 기도를 하고 있는데 명부전 안에 모셔진 시왕탱화에서 전기가 합선되어 불꽃이 튀듯이 법당 안을 한바퀴 돌아 번쩍거리더라는 것이다. 놀란 스님은 겨우 기도를 회향하고는 큰방에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상식으로 볼 때 그것은 과연 가능한 일이었을까? 거기에는 전기라고는 없는 곳인데 말이다. 혹 착시현상으로 환상을 본 것은 아닐까? 아무튼 우리는 그것이 기도가 잘된 것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고 열심히 기도한 진각스님을 부러워했다.
옛 어른스님들의 일화에서도 기도하고 정진하는데 유별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진묵대사께서 어느 해 상운암에 있을 때 대중스님들이 모두 탁발을 나간 사이 참선 수행에 들게된다. 한 달 후 탁발수행을 끝낸 스님들이 돌아와 보니 가부좌한 진묵대사 얼굴과 옷자락엔 거미줄이 걸쳐 있고 방안엔 먼지가 가득하였다. 그때 스님은 “벌써들 돌아 왔느냐”고 말할 뿐이었다. 이것은 유(有)속에서 무(無)를 보이고 정(靜)속에서 동(動)을 보인 경지이니 아무런 걸림이 있을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대목이다.
우리는 이처럼 지극하게 정진하면 비범한 현상이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몇 가지의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합리적 상식의 수준에서 착시나 환상으로 보는 경우다. 지극히 철저하게 기도하면 어떤 결과도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정서적 관점에서 수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하나는 기도와 수행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도 마구니의 장난으로 무시하고 더욱 매진하는 경우다.
요즘 우리는 영험을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이해한다. 특히나 젊은 세대의 합리주의적 사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진묵대사나 진각스님의 모습은 그것을 기대하고 행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현상이지만, 순수하게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오늘 여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일런지도 모른다. 다만 행하지 않고 부정만 하거나 행하면서도 성급히 기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소중한 종교적 신비체험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진각스님의 장점은 무뚝뚝한 가운데 보이는 자상한 포용력이다. 스스로 자부심으로 여기는 공군 헌병의 절도감도 몸에 배있는 매력중의 하나다. 마치 비행장을 혼자 지키듯 부대 정문을 통과하는 모든 차량과 사람들을 훤히 외워야하는 근무 습관이 일상의 생활 속에 자연스레 연결되어 매사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심지어 헌병 헬멧을 쓰고 근무하던 그 시절의 기상 넘치는 상상이, 정 반대 개념으로 살아가는 절에서도 여전히 꿈속에서 연결된다는 고백은 가히 스님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진각스님에게는 그런 기도의 뚝심이 있는지 모르겠다. 요사이는 선방을 찾아 정진하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 듣고 있다. 그때의 그런 신심과 뚝심이라면 선방 수행도 그에게는 큰 결과를 얻을 또하나의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런가 하면 통도사 승가대학 소임을 살 때는 아랫반 스님들을 합리적으로 대해줌으로써 인정도 있고 상·하반이 신뢰와 안정 속에 강원이 이끌어지기도 했다. 또, 탁구를 칠 때는 오직 탁구공에 관심이 집중되어 남다른 승부욕을 보여 주기도 하는, 흥과 멋을 아는 참 괜찮은 스님이다.
돌이켜보면 때 묻지 않는 순수한 신심으로 부처님 전에 지극한 기도를 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배우게 해준 스님이다.
요즘 스님이나 신도들이 입으로만 생각으로만 머리로만 기도의 염원을 불태우는 아쉬운 현실에서, 굳이 어떤 특이현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을 불태우는 진각스님과 같은 지극한 기도가 그리운 시절이다.
■(사)한나래 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