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토로하는 참회와 발원의 게송을 통해서 종교에 귀의하는 진실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선재동자가 불교에 귀의하게 되는 계기는 문수보살로부터 모든 부처님에 관한 법과 부처님의 여러 가지 공덕을 들었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그 법문을 듣고 기뻐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던 것이다.
선재동자는 진실한 삶을 구해서 문수보살을 찾아온 사람이다. 그로부터 듣게 되는 ‘부처님에 관한 법’과 ‘부처님의 여러 가지 공덕’이 선재동자로 하여금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존재의 진실을 깨달아서 한없이 밝은 지혜광명을 갖추신 분이다. 그러므로 무지에서 비롯된 인생의 미혹으로부터 해탈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다. 진실로 부처님께서는 어둠속을 헤매는 인간을 광명의 세계로 해방해서 자각과 확신에 찬 삶을 가능하게 해 주신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불교의 근본적인 의의는 인간존재의 미망(迷妄)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진실한 삶에 뜻을 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자 종교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진실한 삶을 구하던 선재동자는 부처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의 진정한 근거와 의지처를 발견하게 된다. 무량한 세월동안 어둠속을 헤매던 선재동자는 부처님 법을 만나 비로소 광명된 세계를 열게 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어두운 삶과 대비되는 부처님의 밝고 거룩한 삶에 대해 접하고 나서 진실한 삶에 눈뜨게 된다. 그야말로 어둠이 빛을 만난 것이다. 어두움을 밝혀주는 진실의 빛을 만나서 비로소 진실을 알고 동시에 스스로의 어두움에 대해 알게된다.
그러므로 선재동자가 설하는 게송의 첫머리 부분에는 자신의 어두웠던 삶을 깊이 뉘우치면서 참회하는 설해져 있는 것이다. “불도(佛道)는 참회로부터 시작된다.”는 말과 같이, 진실한 삶의 길이라 할 수 있는 깨달음의 길이란 어둡고 어리석었던 삶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참회하면서 토로하는 온갖 바람직하지 못한 삶의 모습들은 그대로가 우리들 모든 중생이 살아가고 있는 실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재동자의 참회를 접하고 나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어두움에 대해 알고 그것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게 되면 진실의 빛을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참회는 반드시 새로운 진실한 삶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자신의 어두웠던 삶을 참회하면서 발원하는 내용은 자신의 어두움을 없애고 광명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빛이 진실한 가르침이라면 빛이 오는 곳은 부처님이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들은 것은 부처님의 여러 가지 훌륭한 공덕이었다. 그러므로 선재동자가 발원하는 것이 부처님의 여러 가지 훌륭한 공덕을 자기 스스로도 갖추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궁극적인 종교적 가치를 자기 스스로가 구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종교적 가치라고 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체득되지 않고서는 인생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은 욕망으로써 살아가고, 보살은 원(願)으로써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종교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상(理想)에 도달하려고 발원하고 힘써 노력하는 것이다.
대승의 구도자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상을 목표로 해서 그 분이 갖추고 계신 거룩한 덕을 스스로도 성취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며 세상을 위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노력이 그 사람의 삶을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여 맑고 밝고 자비롭게 하며 그 자신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사람의 인격이 향상되며, 또한 부처님의 공덕을 스스로 갖추고 불국토를 장엄하게 되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이렇게 참회와 발원을 통해서 새로운 광명의 삶을 열게 되는 것은 그가 진실한 삶을 구하는 맑고 진실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맑고 진실함으로써 진실을 보는 것이 가능하고 진실과 거짓을 뚜렷이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어리석음의 허물을 깊이 인식하게 되고 또 그것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종교는 어떠한 이익을 얻기 위해 이기심으로써 귀의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참생명을 확립하여 진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도 맑고 진실한 마음이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진실을 파악할 수 있고, 그 진실이야말로 인간생존의 진정한 귀의처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