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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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4)열려있는 불국토
신라는 경주를 중심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꾸어왔다. 고구려와 백제가 수도를 두세 차례 옮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신라인에게 있어서 경주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신성한 이상세계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신선사상의 이상처인 선계(仙界)를 지금 무열왕릉의 뒷산인 선도산(仙桃山)으로 삼았고, 불교가 들어온 이후에는 낭산을 도리천(?利天)으로 믿고 그 위에 선덕여왕의 능을 조성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토함산 자락에 불국사라는 새로운 불국토를 건립하였다. 신라인들이 경주를 성역화한 흔적은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의 불국토인 불국사는 석가정토와 아미타정토로 이루어졌다. 먼저 석가정토를 들어가 보자. 푸른 구름과 흰 구름[靑雲橋와 白雲橋]을 밝고 오르면 석가불의 몸에서 발산하는 자주빛 이내로 된 문[紫霞門]에 다다른다. 이 문을 들어서면 석가불(석가탑)이 설법하고 다보불(다보탑)이 증명하는 장중한 드라마를 목격하게 된다. 이들 탑 뒤에는 큰 영웅, 즉 석가불이 계신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대웅전 뒤에는 말이 없는 전각이란 의미의 무설전(無說殿), 그러나 큰스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강당이 좌우로 길게 뻗어 있다. 그 옆의 아미타정토를 들어가 보자. 연꽃과 칠보로 장식된 다리[蓮花橋와 七寶橋]를 오르면 서방극락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안양문(安養門)이 있다. 그 문을 들어서면 아미타불이 계신 극락전이 있는 것이다. 석가정토를 중심에 놓고 아미타정토를 그 다음 단계로 놓았다. 이러한 구성이 화엄종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법상종에 의한 것인지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사적으로 보면 부처님별로 전용 공간을 마련한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불상은 7세기에 와서 비로소 석가불, 약사불, 아미타불 등 도상적 구별이 나타나는데, 사찰의 공간에서는 불국사에서 그러한 특징이 보인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불국사의 건물 가운데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은 돌로 된 기단과 탑, 주춧돌 정도이다.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회랑 일부는 18세기에 재건한 것이고, 나머지는 20세기에 와서 새로 복원한 것이다. 이 가운데 기단은 신라미술을 대표할 만큼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두 개의 무지개다리(홍예교), 자연스런 바위와 정연하게 다듬어진 부재를 조화롭게 꾸민 석축, 구름을 상징한 석주 등은 석조미술의 정수이다. 기단은 2개로 된 다리를 올라가야 될 만큼 키를 높이 세웠다. 그 까닭은 기단 밑의 속세와 그 위의 불국정토를 뚜렷하게 구분하기 위한 고려일 것이다. 불국사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의 사찰이나 탑은 모두 기단이 높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에 한층 높아진 부처님의 권위와 삼국통일에서 얻은 자신감이 맞물려서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토함산에 불국토를 조성한 이는 재상 김대성(金大城)이다. 그는 살아있는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대성의 지극한 효심은 그의 부모를 넘어 오늘날 우리들까지 불국토로 이끌고 있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200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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