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불을 따라온 6천 비구들에게 보살심을 확고하게 심어 주고 그들에게 권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부처님께서 성취하신 최고의 완전한 깨달음을 몸소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한 후, 남쪽으로 나아가던 문수보살은 복성(福城)의 동쪽에 있는 장엄당 사라숲에 이르렀다. 이곳은 옛적에 부처님들이 계시면서 중생을 교화하던 곳이며, 세존께서도 과거에 보살행을 닦으시던 곳이다. 문수보살이 이곳에서 ‘법계를 두루 비추는 경’을 설하니 무수한 중생들이 불도를 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복성으로부터 무수한 대중이 몰려왔는데, 그 가운데에 선재동자도 있었다. 문수보살은 선재동자가 과거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며 선근을 많이 심었고, 온갖 지혜를 구해 법기(法器)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선재동자와 대중들을 위해서 모든 부처님에 관한 법을 설해 그들을 기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했다.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여러 가지 공덕을 들은 선재동자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며 다음의 게송을 설한다.
삼계는 생사의 성곽이 되고/ 교만한 마음은 담장이 되며/ 윤회의 여러 길은 문이 되고/ 애욕의 물은 못이 되었네// 어리석은 어둠에 덮이어/ 탐욕과 성내는 불이 치성하니/ 마왕은 임금이 되어/ 어리석고 몽매한 사람들이 그것에 의지해 있고// 탐심과 애욕은 묶는 노끈이요/ 아첨과 속이는 일 고삐가 되며/ 의혹이 눈을 가리어/ 삿된 길로 나아가게 하네// 간탐과 질투와 교만이 많아/ 삼악도에 들어가고/ 여러 가지 나쁜 길에 떨어지면/ 나도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로다// 묘한 지혜 청정한 해님의/ 가엾이 여기는 원만한 바퀴/ 번뇌의 바다 말리시나니/ 바라건대 나를 살펴 주소서// 묘한 지혜 청정한 달님의/ 인자하고 때 없는 바퀴/ 모든 이를 안락케 하시니/ 바라건대 나를 비춰 주소서// 온갖 법계의 왕이시여/ 법보로 길잡이 삼아/ 걸림이 없이 허공에 다니시니/ 바라건대 나를 가르쳐 주소서// …… 참는 갑옷 입으시고/ 손에는 지혜의 검을 들어/ 마군을 자재하게 항복받으시니/ 바라건대 나를 구제하소서// …… 삼계의 생사 범부의 집이요/ 의혹과 짓는 업 여러 길의 원인/ 보살께서 모두 조복시키시니/ 등불처럼 나의 길을 비춰 주소서// 여러 나쁜 길 여의시고/ 모든 착한 길 깨끗하게 하여/ 세간을 초월하신 이시니/ 해탈의 문을 보여 주소서// …… 부처님의 바른 소견에 머물고/ 부처님의 공덕나무 기르며/ 부처님 법의 묘한 꽃비 내리시니/ 보리의 길을 보여 주소서// …… 온갖 업 잘 아시고/ 여러 승(乘)의 수행을 통달하시니/ 결정한 지혜 가지신 이여/ 마하연 [大乘] 길을 보여주소서// 서원은 바퀴, 자비는 속바퀴/ 신심의 굴대[軸] 참는 건 굴대빗장[轄] 공덕보배로 잘 꾸미시니/ 그 수레에 나를 태워 주소서// …… 보시하는 바퀴 항상 굴리며/ 깨끗한 계율의 향을 바르고/ 인욕으로 굳게 꾸미었으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선정과 삼매는 수레방이요/ 지혜와 방편은 멍에가 되어/ 물러가지 않도록 조복시키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큰 서원은 청정한 바퀴/ 다 지니는 견고한 힘/ 지혜로 이루어졌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하소서// 보현의 행으로 두루 장식하였고/ 자비한 마음 천천히 굴려서/ 어디로 가나 겁이 없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 업과 번뇌를 깨끗이 하며/ 헤매는 고통 끊어버리고/ 마(魔)와 외도를 꺾어 부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지혜는 시방에 가득하고/ 장엄은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의 소원 만족케 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청정하기 허공과 같아/ 애욕과 소견 없애버리고/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그 수레에 나를 타게 하소서// …… 네 가지로 거둬주는 원만한 바퀴/ 다 지니는 청정한 광명/ 이와 같은 지혜의 해를/ 나로 하여금 보게 하소서// 법왕의 지위에 이미 들었고 지혜의 관을 이미 쓰셨고/ 법의 비단을 머리에 맸나니/ 바라건대 나를 돌봐 주소서//
이 게송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비로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어리석고 허망하여 고해에 빠진 것임을 탄식하고, 이를 깊이 참회하며 진실한 법을 구하여 깨달음 삶을 살아갈 것을 발원하면서 문수보살에게 바르게 인도해주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어둠이 어둠을 없앨 수 없다. 빛이라야 어둠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빛은 어둠을 발견하게 해주면서 또한 어둠을 없애준다. 빛에 의해 발견된 어둠의 인식과 그에 대한 반성과 부정이 어둠을 없애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회와 발원(發願)이라고 하는 종교심이다. 종교심이란 빛과 어둠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싹트게 되는 참회를 바탕으로 한 원심(願心)인 것이다. 선재동자가 설하는 게송을 통해서 진실한 종교심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