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난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선재는 그런 일이 언제 있었나 싶게 벌써 잊고 있는 스스로에게 놀란다. 망각의 강이라는 ‘레테’에는 근처도 가본 적이 없는데 정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잊고 만다. 새로운 정보를 담기 위해서 망각이라는 것이 작동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남의 일에 그토록 오래 신경을 쓴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고 집중하는 것을 흔히 ‘삼매’라고 한다. 수행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 삼매는 다시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는 말로도 표현한다. 마음을 대상과 하나가 되도록 집중한다는 의미이다. <분별론>에서도 참선의 단계를 설명하면서 ‘제4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평등한 마음[捨]과 심일경성이다’라고 하고 <대념처경>에서는 다시 “이것을 바른 선정[正定]이라고 한다.”고 하고 있다.
선재는 선가에서 흔히 ‘화두일념’으로 정진하라는 말을 들었다. 화두와 심일경성이 되도록 하라는 말이 될 터이니 수행에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일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늘 공통된 일인 모양이다.
마음이 어떤 것으로부터 떠나 있으면 그것이 망각일 것이다. 선재가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면 국화꽃 한 송이를 보며 가슴 아파했던 마음도 사라지는 것이고 가족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눈물도 선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망각이란 선재 아닌 것들을 더 이상 선재와 관계 맺도록 하지 않고 포기하는 일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動靜)에도 화두를 들고 있으라는 선가의 말이나 12처·18계 등이 세계의 전부라고 하는 부파불교의 설명이 사실은 망각을 경계시키려는 의도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선재는 생각한다.
한 달을 눈물로 보냈을 그 분들의 아픈 마음을 선재가 잊지 않는 일, 그것은 바로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곳을 대비시키는 일이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