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성취함에 고달파 하지 말것 강조
보살행은 발원통한 신념과 실증

서다림 속에서 나타난 부처님 경계의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찬탄하던 문수사리동자는 선주누각(善住樓閣)으로부터 나와서 무량한 동행(同行)보살, 신중(神衆) 등과 함께 부처님 처소로 와서 모든 공양거리로 공양한 후 하직하고 물러나 남방으로 인간을 교화하러 떠났다.
그때 사리불 존자는 문수보살이 여러 보살과 함께 서다림을 떠나서 남방으로 가는 것을 보고 문수사리와 함께 남방으로 가려는 마음을 내고 그를 따르는 6천의 비구와 함께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뜻을 여쭙고 허락을 받는다. 사리불과 함께하는 이 6천 비구는 출가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모두 문수사리가 설법 교화한 이들로 한량없는 부처님께 공양하고 선근을 깊이 심어서 이해하는 힘이 광대하며, 항상 부처님의 공덕을 부지런히 구하는 이들이었다. 이것은 소승인 성문 비구들 가운데에서도 대승에 뜻을 두고 대승으로 나아가려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6천의 비구들은 사리불이 문수사리동자가 한량없는 공덕으로 장엄되었다고 찬탄하는 것을 듣고, 문수보살의 경계와 덕을 구하려고 하여 문수보살에게 설법해 주기를 청한다. 이에 문수보살은 “선남자 선여인이 열 가지 대승으로 나아가는 법을 성취하면 여래의 지위에 빨리 들어간다.” 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법을 설한다.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착한 뿌리를 모으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모든 부처님을 뵈옵고 섬기고 공양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모든 부처의 법을 구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온갖 바라밀다를 행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모든 보살의 삼매를 성취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온갖 세상에 차례로 들어가는 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시방의 부처님 세계를 두루 장엄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조복시키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모든 세계의 모든 겁에서 보살의 행을 성취하는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과 한 중생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부처 세계의 티끌수 바라밀다를 수행하여 여래의 모든 힘을 성취하며, 이와 같이 차례차례로 모든 중생을 성취하게 하기 위하여 여래의 모든 힘을 성취하는 데 마음이 고달프지 않음이니라.”
입법계품에서는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성취하는 것을 고달파하지 않으면 능히 선근을 기르며, 소승의 지위에 떨어지지 않고, 여래의 힘을 얻어 여러 마귀와 외도들을 굴복시키며, 모든 번뇌를 멸하고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지위에 가까워진다고 설하고 있다.
문수보살이 열 가지 대승으로 나아가는 법을 설하면서, 이 법을 성취하는 데에 고달파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그 열 가지 법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를 지향하는 성문 연각의 소승의 경계와는 달리, 보살은 일체의 시간과 장소에서 항상 중생들과 함께 하면서, 그 속에서 깨달음의 삶을 실현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펼치려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대승의 경계로서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단순한 불법 이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대승의 마음을 확고하게 일으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구들은 문수보살의 이러한 법문을 듣고 곧 ‘걸림 없는 눈으로 모든 부처의 경계를 봄’이라고 하는 삼매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문수보살의 법문을 통해서 이제 아무런 막힘이나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하게 부처의 경계라고 하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비구들은 모든 세계에 대한 새로운 안목과 이해를 가지게 되고, 수많은 보리심·삼매 ·바라밀다·큰 지혜를 성취하였으며, 보살의 마음에 머물러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비구들이 보살의 마음을 확고하게 가지게 되자 문수보살은 그들에게 권하여 보현행에 머물게 해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계신 데에서 몸을 나타내어 모든 부처님 법을 구족하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계품에서는 대승으로 나아가려는 뜻을 세워서 보살의 마음을 확고하게 가지면 누구든지 보현행을 실천하여 시방세계에서 부처님 법을 성취 할 수 있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위에서 설한 대승으로 나아가는 열 가지의 법은 대승의 보살이 실천 수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내용으로서 앞으로 전개되는 선재동자의 구법내용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나긴 대승불교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진정으로 우리 불교인들이 대승으로 나아가는 열가지 법을 실천수행하는 데에 고달파 하지않는 삶을 살아 왔었는가 하는 점을 반성하게 되는 것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대승의 보살행은 신념의 행이요, 실증(實?)의 행이다. 보살행에서 끊임없는 발원(發願)이 강조되는 것은 까닭이 있는 것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