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사회적 역할 강조
지유 케넷 선사는 ‘선 포교 협회(Zen Mission Society)’를 이끌며 미국 캘리포니아에 샤스타 사원을 설립한 뒤 3년후인 1973년, 연이어 영국 중북부 노섬버랜드에 트로셀홀 사원을 설립했다. 5년간 교육을 받은 지도교사들이 양성되자 스님은 선포교협회를 불교명상종으로 전환하게 된다.
지유 스님은 당시 100여명의 제자들에게 계를 전했는데, 서양인 스님으로는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 조동종에서 제자들을 정식으로 등록시켜 주지 않자, 스스로 종단을 창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 캐나다, 독일, 네델란드, 미국 등에서 많은 사원과 명상모임을 만든 지유 스님은 서구인들의 정서에 맞는 선불교를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불교 명상종(Buddhist Contemplative Order)’이란 용어에서 ‘Contemplation’이 가톨릭에서 ‘묵상’이라는 말로 쓰이는 예에서 보듯, 상당부분 그리스도교적 언어나 제도를 빌어썼다.
가장 파격적인 것은 영어 독경을 비롯해 비구, 비구니의 호칭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 ‘스님(monk)’이라고 부르는 점. 이는 도겐(道元) 선사가 남녀평등을 말한 것에 근거한 것이었다. 지유 스님은 수행도량의 명칭 역시 ‘사원(monastery)’ 대신 수도원(abbey)'을, 심지어 예불도 ‘아침기도(matins)’나 ‘저녁기도(vespers)’와 같은 가톨릭식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문화권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조동종의 기본 수행법인 묵조선 즉, 묵묵히 좌선하여 본래 자성청정(自性淸淨)한 마음의 작용을 일으킨다는 선풍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샤스타 사원 안내책자에 적혀있는 지유 선사의 말이다. “좌선을 통해 우리는 각자 가진 본성을 즉각적으로 발견할 수 있으며, 좌선을 통해 수행자는 자신과 세계를 어떻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지를 배우게 됩니다. 언젠가는 이를 통해 여여한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심오한 대전환이 다가올 것입니다.”
지유 선사는 서구불교의 특징인 선의 ‘사회적 역할’도 강조하고 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성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미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
지유 선사는 서양인들이 익숙한 이야기들을 불교적으로 해석하여 들려주는 재치가 탁월했다고 한다. 불교가 서구인들에게 가 닿을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색칠을 할 필요가 있었다. 서양에서 거듭난 선불교는 선종이라는 진리의 흐름을 담고 있기에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요 새로운 문화와 형식, 방법, 관습을 형성했기에 완전히 옛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유 선사의 묵조선은 간화선과 같은 고정된 화두를 챙기는 대신 ‘일상의 삶’이라는 화두를 가슴깊이 새기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1996년 입적할 때까지 남긴 저서 <선은 영원한 삶(Zen is Eternal Life)>,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How a Zen Buddhist Prepares for Death)> 등 10여권의 저서는 이러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김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