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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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밝게 켜져 있음을 깊이 알아 믿고
오늘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본래 우리는 항상 한자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헤어지기도 하고 또 만나기도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99% 부처 될 가능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우리 몸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대뇌와 소뇌가 있고, 대뇌는 다시 좌·우측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전체를 보이는 현상 세계 50% 보이지 않는 세계 50%라고 한다면, 대뇌의 좌측은 50%의 보이는 현상 세계 속에서 우리의 오관으로 보고 느끼며 사는 생활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대뇌의 우측은 그 나머지 50% 세계인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잠재의식 자체의 아주 광대무변한 법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대뇌의 우측과 좌측이 다 같이 계합되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참으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이는 현실 생활에 대한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나지만, 눈으로 보이는 현상세계가 나오게 된 그 이면, 즉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법에 대한 판단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뇌 안에 우측과 좌측이 한데 계합이 되어야만 어디에도 걸림없는 여여(如如)한 지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시 생활 속에서 닥치는 모든 것들, 즉 오관(五管)을 통해 닥쳐오는 모든 것을 즉시 마음으로 굴려서 놓는다는 것은, 바로 대뇌의 좌측으로 들어서 우측으로 전달(통신)된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들고나는 그 어떤 것이든지 대뇌의 좌측으로 들어서 대뇌의 우측으로 전달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로 모든 것을 자기 근본 주인공에 놓고 사는 사람, 또 자기 근본과 한마음으로 계합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걸 무시하고 보이는 50%만 가지고 사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해결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물의 겉과 속을 환히 다 비춰볼 수 있는 마음의 능력, 즉 본래부터 다 갖춰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그 지혜는 여러분 대뇌의 좌측과 우측이 송두리째 계합이 되어 여여하게 되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안 나오고 있느냐?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시계추와 같아서 항상 좌·우측 대뇌로 통신이 왔다 갔다, 들락날락 하지만 다만 여러분이 그것을 감지할 수가 없고 더구나 생각조차 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능력의 중용을 발휘할 수가 없을 뿐입니다. 그러면 대뇌의 좌측이 먼저냐, 우측이 먼저냐? 하고 여러분은 묻겠지만 이건 어느 것이 먼저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것이든지 다 똑같기 때문입니다. 다 똑같이 순환이 되고, 다 똑같이 대뇌로부터 소뇌로 전달되어서 모두 사대로 통신이 된다고 봅니다.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하고 의아해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생각조차도 못합니다. 생각도 못하니까 먹고 싶은 마음은 더구나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러분한테 제가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던져드리면 그때서야 여러분은 생각을 낼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렸듯이, ‘애비 묘지와 자식 묘지가 있는데, 양면에 구멍이 뚫렸느니라. 그런데 자식이 애비한테 가면 애비로 하나가 되고, 애비가 자식한테로 오면 자식으로 하나가 되니 그 연고는 무슨 연고인고?’ 하고 묻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젊었을 때에, 그저 무조건 길을 걸을 때에 있었던 얘기입니다만, 이 도리나 우리 대뇌의 좌·우측 기능이 송두리째 계합이 되어 하나가 되는 도리나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대뇌의 좌우측은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요? 대뇌의 좌측에서는 항상 오관을 통해서 들이는 것을 대뇌의 우측에 맡겨 놓게 됩니다. 이 맡겨 놓고 맡김을 받는 관계는 마치 어린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이치와 같습니다. 즉 대뇌의 좌측이 아들이라면 그 우측은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믿고 무엇을 달랠 때도 ‘아버지!’ 드릴 때도 ‘아버지!’ 감사할 때도 ‘아버지!’ 어려울 때도 ‘아버지!’ 이와 같이 자기가 자라기 전까지는 아버지한테 모든 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장성해서 어른이 되어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를 믿고 따라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와 같이 우리의 대뇌에서 좌측은 우측으로 다 맡기게 됩니다. 다 맡기면 어떻게 되느냐? 그리고 우측 대뇌는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 다 맡기게 되면, 옳은 것을 맡길 때에는 당연히 옳은 것이 나오겠지만, 설사 불리한 것을 맡겼다 해도 불리하지 않게끔 되어 바깥으로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꼭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꼭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우측 대뇌는 마치 용광로와 같아서 좌측 대뇌에서 맡기는 모든 것을, 즉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녹여서 좋은 새 쇠로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이 아무리 기분이 나쁘다, 속이 상한다 하더라도 한번 안으로 맡겨서 거기에서 한번 굴려서 밖으로 내놓는다면, 아까 맡길 때와는 달리 지금은 좋은 말로 나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화가 났다 해서 그냥 곧이 곧대로 대뇌의 우측으로 전달되어 돌릴 사이도 없이 곧바로 쏘아댄다면, 거기까지 지혜의 능력이 밝게 비춰지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지혜로운 능력이 밝게 비춰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밝은 등불을 저만치 놓고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고도 돌부리에 차이고,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본래 밝은 지혜의 불을 밝혀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본래부터 밝게 켜져 있음을 깊이 알아 믿고, 그리고 하나 되어 마음대로 쓸 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항상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99% 부처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났다는, 그 어떠한 것도 다 녹여서 새로운 것으로 누구에게나 좋은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이 세상에 나왔다는 엄청난 진실을 깊이 믿고 정말로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이나 물건을 받는다면 참으로 고맙다,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자기 몸을 형성시켜서 이끌어 가는 지수화풍에게는 고맙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주상 보시를 받으며 공기를 마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수화풍의 생명에게 참으로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지수화풍 사대의 근본, 즉 우주 천하대지와 모든 생물을 나투어 형성시켜 준 자기를 고마워할 줄을 모르고, 자기 밖의 어떤 대상이나 관념에 속아 거기에다 빌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 죄를 사해달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다시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딛고 다니는 이 땅도 생명체와 같이 세포가 있고 자력 전력 광력 통신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자력이 있는 것과 같이 땅에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을 한발 디디면 우리에게 자력이 있어서 땅을 끌어당기듯이 땅에는 자력이 있어 자기 힘대로 끌어당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딛고 다닐 수 있기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마음 주인공 안에는 모든 일체가 다 들어 있습니다. 천문학이나, 지리학, 물리학, 의학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발끝으로 땅을 딛고 다닌다 해도 서로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시 전달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예가 있었습니다. 어떤 스님께서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통지를 받고서 속가로 가서는 산소를 쓰기 위해 아버님의 관을 이끌고 발이 가는 대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딱 멈춰서지는 곳에 아버님을 매장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스님께서 한 발 한 발 땅을 딛고 가기 때문에 발이 딱 멈춰진 곳 그 자리가 그대로 법이요, 좋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나쁜 곳이라 해도 좋은 곳이라고 딱 지적하면 좋아지고,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해도 저 자리는 안되겠다 한다면, 아무리 좋은 데에 묘 자리를 썼다 해도 그 집안은 아주 안되게끔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한생각의 도리가 깊고 깊어서 그렇게도 광대무변하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그러한 도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도리라고 하기 이전에 우리가 그냥 부처님 법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그 말조차도 붙을 수 없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설사 어떠한 경우에 맞닥뜨렸다 해도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나쁜 꿈을 꾸었다 하더라도 나쁜 꿈을 꾸게 한 것도 거기에서 한 것이니까 좋게 꿈을 꾸고 살게 할 수 있는 것도 거기지 하고 한생각 돌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울퉁불퉁한 험한 길을 잘 운전하고 탈 없이 넘어간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생각을 잘 낸다, 돌린다 하는 것은 바로 운전을 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일이 좋게 이루어졌다면 ‘아, 좋게 한 것도 거기지. 참 감사하구나!’ 하고 일임하여 맡겨 놓을 수 있는 그런 살림살이라면 여러분은 살림살이하면서도 그대로 참선하는 것이요, 행선하는 것이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활이 바로 길입니다, 길.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여러분은 곧 여여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아오르고 내 집안이 망한다 해도, 모두가 바가지 들고 얻어먹으러 다닌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한 마음의 태도가 바로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요, 믿는다 안 믿는다도 없는 믿음이요, 그래서 원력이 되는 것입니다. 원력, 그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지혜입니다. 영원한 빛이요, 영원한 밝음입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앉아 계시는 모든 여러분께 다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왜 믿지 않습니까? 또 믿는다면 왜 실천을 해보지 않습니까? 왜 행을 하지 않습니까? 한다 하면 모든 것을 걸고 한번 해보는 그러한 배짱, 당당한 포부가 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좀 안다는 사람은 알아서 더 못 나가고, 모르는 사람은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더 못 나가니 이 일을 어쩝니까? 도대체 알면 얼마나 알고, 또 모르면 얼마나 모르겠습니까? 어차피 한철 살다 가고 또 오고 또 가고 쉴 사이 없이 연방 왔다 갔다 하는데 무엇이 그리 문제란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살면 영원히 살고, 죽으면 영원히 죽습니까? 모두가 찰나 생입니다. 찰나 생활이기에 한시도 머물러져 있는 것이 아니며 돌고 돌기 때문에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원력이니 능력이니 하지만 그것도 코웃음 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 아까 말한 것처럼 물질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꼭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해서 그것만을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믿고 놓고 그리고 일체와 하나로 계합된다면 보이지 않는 수 없는 호법신장, 수호신 등이 모두 보이지 않는 데서 보이는 데로 나와 가지고 다 살게끔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뭘 먹고 살기 위해서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안 주면 안 먹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또 안 오시면 안 오시는 대로, 오시면 오시는 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사실은 항시 같이 하고 있으니까 걱정을 안 하는 겁니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신도님들이 거의가 다 부처님! 부처님! 하면서 하도 부처님만 찾기에 그냥 부처님 상을 파불 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놀래 가지고는 모두 다 안 온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안 나오실려면 그만두라고 그랬지요. 글쎄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부처님 뼈다귀나 끓여 먹고, 또 부처님 이름이나 팔아서 여러분한테 거짓말을 하고 산다면 차라리 혓바닥을 깨물고 죽어버리지 하고선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냥 또 다시들 나오십디다.
저는요, 지금까지 신도님들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 팔아서 그런 걸 많이 해서 뭘 한다는 말입니까? 따지고 본다면 여러분이 그렇게 아끼고 아끼던 부모 자식도 다 버리고 가게 되고, 그렇게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돈도 가져가지 못하고, 집도 가져가지 못하고, 내 몸마저도 가져가지 못하는데! 그게 뭐 그렇게 귀중합니까? 사실은 우리가 이 몸을 가지고 있을 때에 남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더불어 같이 돌아가면서 너와 나에게 다 해롭게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하지 말라! 시간 약속 지켜라! 의리를 지켜라! 도의를 가져라! 인간 된 도리를 지켜라! 그러면서 그것마저도 거기에 모두 맡겨 놓고 지킨다면, 구태여 팔정도니 육바라밀이니, 사제법이니, 십이인연법이니 따지지 않더라도 계율도 다 지킬 수 있고, 또 더불어 다 같이 유익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계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일일이 따져서 올바르게 보아야 한다, 올바르게 들어야 한다, 올바르게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일일이 다 해야 된다면, 그 소리를 다 듣고 복잡해서 언제 공부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언제 알 수 있겠습니까?
지난달에도 자세히 얘기했듯이, 여러분 각자가 이미 오신통의 재료를 충만히 갖고 있으므로 그것을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마음대로 요리해서 먹을 수도 있고 또 남에게도 먹여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곧바로 들어가십시오! 언제 요것조것 따지고, 이론 따지고, 경전 따지고, 학식 따지고, 정도니 사도니 따지고 그럴 새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따지는 사람은 공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이유 따지지 말고 곧바로 들어가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도리가 참으로 광대무변한 법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재료가 자기에게 다 있는 것이니 맛있게 요리를 하여 먹으란 말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떠한 사회적인 또는 자연적인 큰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나 피해를 주게 된다고 할 때, 바로 내 한생각 진심으로 낸다면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나쁜 일들은 다른 데로 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작은 일이나 인류적인 큰 일을 막론하고 다 여러분 자신이 할 일이며 또 할 수 있는 일이지 누가 대신 해주거나 좋은 결과를 갖다 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이 갖추고 있는 그 재료들은 누가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누가 빼앗는다고 해서 빼앗아 갈 수도 없는, 그러면서 항시 오고감이 없이 오고가는 그러한 지혜요, 능력이요, 원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 모든 것을 자기 주인공에 놓다 보면 놓는다는 것도 다 놓게 되며, 다 놓게 될 때에 스스로 무심이 이루어지게 되고, 그대로 무심도가 되어서 한 생각을 내면 내는 대로, 들이면 들이는 대로 모든 것이 구족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경우, 그 한 소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옛 선지식들께서는 할! 하기도 하고, 주장자를 들어서 내려치기도 하고, 주먹으로 치기도 하고 내밀기도 하고, 또는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서산대사께서도 공부하실 당시에 쌀을 한 짐 마차에 싣고 가는데, 가는 도중에 그만 소가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서산대사께서 그 쌀을 한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지고 가서 사시 마지 때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려고 했던 쌀인데 어째서 내가 지고 가지를 않고 소에다가 밀어 던졌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님께서 그 쌀을 직접 짊어지고는 왔던 20리를 되돌아가서 다시 20리를 걸머지고 오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다 마음입니다. 절대로 남에게 미루지 않으려는 마음 말입니다.
이렇게 하여 스님께서 천일 동안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는 중인데, 어느 날은 공양을 올린 다음 자리에 앉아 관하고 있으니까 별안간 일곱 사람이 나타나 총을 겨누면서 그냥 막 쏘아대더랍니다. 그런데 총 쏘는 그 사람들을 돌아보니 그냥 웃음이 나오는 겁니다. 너무나 우스워서 그냥 하늘을 쳐다보고 얼마나 크게 웃었던지 그 소리가 저 중국대륙에까지도 전부 다 들렸답니다. 서산대사께서도 이와 같이 깨우치시고 다시 돌아다보니 총 쏘던 사람들이 간 곳이 없더랍니다.
그러면 서산대사께서는 그 한 생각을 과연 어떻게 하였길래 깨우치셨고, 또 어떻게 하였길래 일곱 사람이 총을 쏘려고 겨누었으며, 그리고 총을 쏘고 나서는 없어졌겠습니까? 그리고 그 일곱 사람은 누구일까요. 여러분께서는 또 각각 보시겠지요. 저 칠성별도 각각 보시겠죠? 그것도 각각 보시니까 그것도 각각 보시겠지요. 그러니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서 저 태양도 나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공부를 하신 서산대사께서는 그 후부터는 어떠한 것들이 온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왜냐? 바로 나 하나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 나 하나를 버린다면 구태여 무얼 그렇게 두려워할 것이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처음에 여기에 건물을 짓고 난 후에 한번은 도둑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부근에 집이 한 채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하루는 제가 일하는 아이 보고 “오늘은 도선생님이 오실 것 같다. 그러니 문을 꼭 꼭 잘 잠궈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어떤 선생님이 오신다구요?” “도선생님 오신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도선생님이 누구신데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와서 가져가면 도선생이지.”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때서야 그 아이가 깔깔대고 웃는 겁니다. 그래서 그 날 문을 다 잠그고 있는데 결국은 내가 말을 해놓고 내가 문을 열어놓은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지하실 보일러를 내가 직접 때고 그랬었는데 새벽녘이 되어서 추우니까 보일러실로 내려가서 보일러를 켜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만 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고 그냥 나왔단 말입니다. 하여튼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팔장을 끼고 앉아 있는데 누가 문을 사르르 열고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가 새벽 4시쯤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내가 “어서 오세요” 하니까 “어!” 하며 아주 난감해하고 서있어요. 그런데 마침 옆에 풀어놓은 시계가 있어서 내가 그것을 집어 들고 “아니 왜 사람을 놀라게 합니까? 드릴 것도 없는데, 드릴 게 있으면 오시라고 할 테니까 그때 오도록 하세요.” 그러면서 그 시계를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시계를 얼른 받아 가지고 그 사람이 하는 소리가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가지고 갑니다.” 하면서 생긋이 웃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나도 웃었죠. 그랬더니 그 후부터는 문을 열어 놓아도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모두가 다 마음 아닙니까? 나를 버린다면 아무 것도 두려운 게 없습니다. 내가 살려고 하고 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법이고, 두려움이 생기니까 사고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설사 내가 그 손에 죽는다 해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꼭 하고 갈 것이 있다, 내가 무엇을 꼭 해야 한다, 내가 꼭 했어야만 한다 이런 것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다 부질 없는 얘기입니다. 죽을 때 되면 죽으면 그만이고 살 때 되면 사는 거고, 그저 그냥 길을 걸어갈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것을 다 버린다면 악업 선업도 다 그냥 송두리째 녹아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 덩어리 하나 거기에 착을 두지 않는다면 ‘멸’ 하게 되고 그리고 ‘도’가 되는 겁니다.
이와 같이 서산대사께서는 그렇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는 활이나 칼이나 창을 쓰던 시대였습니다. 비행기나 총도 없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 환경대로 육신통을 하지 않으면 아주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그것은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도 필요했고, 또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에도 그러한 술수가 참으로 필요하였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체험하고 써보면서 대도를 이루신 분이 서산대사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명대사께서 새를 한 마리 잡아 가지고 덜렁덜렁 왔습니다. 제가 좀 빼먹고 말하더라도 뜻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방에 들어와서 새를 손에 쥔 채 사명대사가 서산대사에게 하는 말이 “제가 이 새를 날려보내겠습니까, 아니면 죽이겠습니까?” 이럽니다. 그러니까 서산대사께서는 아무 소리 없이 일어나 문지방에 걸터 서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나가겠느냐 들어오겠느냐?” 하니까 사명대사가 그만 그 한 말씀에 뚝 떨어진 거죠.
그래서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에게 큰절을 올리며 스승을 의심치 않고 믿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 한쪽에서는 의심이 일어납니다. ‘과연 스승이 육신통을 좀 했다고 해서 정말 대도가 이루어졌을까? 저런 술수는 나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말입니다. 그래서 사명대사는 한가지 계책을 쓰기로 하고, 무엇을 했느냐 하면 계란 쌓기를 했습니다. 계란을 아래서부터 위로 쌓아서는 지붕까지 붙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산대사께서 쓰윽 그것을 보더니 “거 참 장난 심하구먼. 그럼 나도 장난 좀 해 볼까?” 하시고는 계란을 지붕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꽂는 겁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것이 옳은가, 그것이 옳은가?” 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만 사명대사는 하는 수 없이 “제가 잘못하였습니다. 다시는 의심치 않겠습니다.” 하면서 서산대사에게 백배사죄를 드리고 다시 스승으로 모시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서산대사께서는 앞장을 서시고 사명대사는 뒤에 따라가는데 한참 뒤따라가던 사명대사는 앞서가는 서산대사를 보고 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키는 조그맣고 몸뚱이는 가냘퍼서 볼품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저분이 과연 대도를 이루었을까?’ 하고 의심이 더럭 나는 겁니다. 잘 생긴 자기 모습에 비하면 스승이신 서산대사는 정말 너무도 못 생겼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겉 생기기로 말하면 정말 너무나도 천지차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명대사는 속으로 ‘저런 분이 정말 대도를 이루었을까? 과연 내가 진정한 스승으로 모실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면서 슬슬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순간, 서산대사께서 획 뒤로 돌아서면서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시는 겁니다. “이놈아! 그렇게도 못 믿겠고 그렇게도 보잘 것 없는 걸로 보인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거라!” 하고 사정없이 야단을 치니까 사명대사는 그만 자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야! 내 속까지 들여다보시니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구나.’ 하고 사명대사는 생각하다가 마침내 생각을 굳히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더라도 스승이신 서산대사를 믿겠다.’ 이렇게 각오를 굳혔습니다. 그 후부터 사명대사는 서산대사께서 거꾸로 간다고 해도 “네! 옳습니다” 바로 간다고 해도 “네! 옳습니다” 하고 믿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가다 보니까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그렇게 가던 어느 날, 천야만야한 절벽 위를 두 분이 가다가 저쪽 큰 집 쪽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나오니까 스승이 제자를 탁 밀어 던졌습니다. 그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로 밀어 던졌단 말입니다. 그런데 사명대사는 어디로 떨어졌느냐 하면 절에 부목이 나무 해다 놓은 나뭇짐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나뭇짐 위에 뚝 떨어져서 자기 몸뚱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사명대사가 “떠다 밀으셔도 요런 데로 떠다 밀으셨으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스님!”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침내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에게로 다시 올라가서 백배 사례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서산대사가 하는 말씀이 “떨어진 것이 화가 나느냐?” 하니까 사명대사가 “아닙니다. 스님!” “그러면 떨어진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떠다밀어 넣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냐?” “아닙니다. 스님!” 그러니까 서산대사께서 “그만하면 됐구나!” 하시고 그 이튿날부터 무얼 주느냐 하면, 솔잎파리 찧은 물에다 날 콩가루를 타서는 한 그릇씩 주는 겁니다. 물론 서산대사께서도 같이 마시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고 난 사명대사는 설사가 어떻게나 나는지 그냥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들락날락하느라고 앉았다 섰다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설사를 하느라고 드나드니까, 서산대사께서는 커다란 작대기를 들어 사명대사를 사정없이 후려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이놈아! 나는 먹고 된 똥을 누는데 너는 어째서 먹고 설사만 하느냐? 지금 일본 놈들이 쳐들어와서 온통 난리를 치는데도 그래 설사하기에 볼일 못 본다면 그래 가지고도 어찌 막대기 하나 손가락 하나는 제대로 쳐들 수가 있겠느냐? 술수만 배워 가지고는 절대로 안되느니라. 술수라는 것은 우리가 급할 때라야 쓰는 것이지 진짜 우리가 도를 이루려면 그게 아니니라.” 하면서 작대기로 어찌나 때리는지 그냥 설사 똥끝이 다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명대사가 그 날부터야 된 똥을 누기 시작하였다는 얘기입니다. 이와 같이 스승이 그렇게 가르치면 제자는 그대로 믿고 따랐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일본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되실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공부를 하면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나이가 젊어서 산으로 다닐 때 얘기입니다. 겨울철인데 너무나 추웠습니다. 추운 겨울날이라도 산 속에서 빨래를 해서 입어야 되는데 그것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춥고 밤은 어두웠는데 마침 먼발치로 불이 깜박거리는 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만약 서산대사처럼 축지법을 할 수 있다면, 순간 저쪽으로 갈 수가 있을 터이니, 그렇다면 이 추위를 면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곧 다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그때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활이나 칼이나 창을 쓰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렇게 해야 됐지만 만약 지금에도 몸으로만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말 것이다. 그러한 일은 몹쓸 일이라고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어찌 내가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으랴! 만약 춥다고 하면 구차히 이 몸을 움직여서 더운 곳으로 가고자 할 것이 아니라, 이 춥다는 의식 자체를 빼서 좀 뜨뜻하게 만들면 되겠지. 지금 시대는 바로 앉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만약 어떤 별이, 예를 든다면 태양이 크게 팽창이 되어 우리 국민은 물론 이 지구의 사람들을 다 삽시간에 삼켜버리고 말게 된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것은 우리의 한생각에 의해서, 지구도 그렇지만 지금 태양도 우리 손아귀에 들어 있다고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크게 믿어야 됩니다. 우리가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이 시대를 잘 넘기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마음 내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즉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될 수 있는 그러한 나툼의 도리를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일체와 더불어 나투는 도리를 꼭 알아야 하겠기에 죽었어도 또 죽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 말을 다시금 하느냐 하면 우리 한생각이야말로 우주천지를 들었다 놓을 수도 있지만 자기가 죽지 않고는 진정한 그 깊은 한생각을 쓸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생각이 이렇게도 중요합니다. 내 한생각에 따라서 내 몸 속에 든 수십억 마리의 생명들이 다 급하면 급한 대로 모습을 바꿔가면서 나투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멀고 가까움도 없습니다. 한 찰나입니다. 저런 혹성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문제가 있다면 벌써 저 은하계의 별들하고 더불어 나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천지와 다 통신이 되고, 천지를 다 볼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에는 우리가 이 보이는 몸뚱이를 가지고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또 모습을 감추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한생각을 잘 해서, 즉 내가 이것을 이렇게 해야만 되겠다 하는 마음을 내면 그게 내가 되어서 바로 나는 여기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수 없는 몸으로 천백억 화신으로 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아까 두뇌에 대한 이야기도 하였습니다만 아무쪼록 여러분께서는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재료와 지혜 능력을 우리 모두가 다 갖추어 가지고 있다는 것을 꼭 아셔야 됩니다.
오늘 저의 얘기는 이것으로 마치고 여러분의 질문을 받기로 하겠습니다.
▲질문자1: 스님! 저에게는 가정이 있고 남편과 자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부를 꼭 하기 위해서 무척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 하기 위해서는 첫째도 죽어야 하고, 둘째도 죽어야 하고, 셋째도 또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죽어야 된다, ‘나’라는 관념의 에고가 죽어야 된다고 알면서도 참으로 죽어지지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만 되는지 말씀하여 주십시오.
▲스님: 여러분! 여러분은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이게 말입니다. 난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는 이런 분이 더 죽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런데 죽는다는 것은 다른 이치가 아닙니다. 몸뚱이가 죽으란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고정되게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공하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관념을 몽땅 놓는다면, 그대로 살아가면서 그대로 사랑도 해가면서, 또 그대로 발전도 해가면서, 그대로 거기에 놓고 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나와 나를 계합시킬 때까지는 오로지 자기 마음의 주인공을 믿고 놓아야 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질문이 없으시면 한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예가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신데, 그분은 이 공부를 한다고 단전 호흡도 하고 좌선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열이 머리로 올라가는 바람에 학교에도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서 어떻게 하면 이거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고 여기를 찾아왔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바로 모든 것을 놓지 않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라는 것을 놓지 않고 항상 그 머리로 열을 올려 가지고 이거다 저거다 하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단전 호흡을 하는 것은 몸을 좀 풀기 위해서인데 그 몸을 풀기 위해서라면 주인공에 맡겨 놓으면 다 여기 생명들이 피를 운반하여 주어서 건강하게 될 텐데, 구태여 그렇게 꿇고 앉아서 할 것이 뭐 있습니까?
피가 잘못 머리로 올라가면 그건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런 짓 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여러분이 위험하면 나도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 전부 나 아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여러분이 우는 것을 보면 제가 아픕니다. 그래서 내가 아플 짓은 안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사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로지 주인공을 믿고 ‘당신이 오다가 엎어졌으면 당신이 일어나야지 누가 일으켜 주는 게 아니다. 전생에 내가 살면서 악업 선업을 지었다면 거기에서 악업 선업도 지은 거니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도 거기다.’ 하고는 탁 놓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되면 잘 됐으니까 ‘감사하다. 우리가 지수화풍으로서 지수화풍 사대를 먹고 사는데 이렇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이 공부를 해나간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한 번 죽고, 두 번 죽고, 세 번 죽어야 한다는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첫 번째,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은 ‘나를 버려서 나를 얻는 소식이니라.' 즉 (주먹으로 법상을 탕! 치신 후) 이렇게 칠 수 있는 이런 겁니다. 두 번째, 또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은 ‘나와 더불어 일체를 버려서 일체를 얻는 소식이니라.' 즉 이 소식이 너무 광대무변하기에 말로는 다 할 수 없어서 (주먹으로 법상을 탕! 치신 후),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다시 또 내가 죽어야 한다는 뜻은 ‘나와 더불어 나를 버려서 일체 나투는 나툼의 소식이니라.' 하는 것을 말로는 할 수 없으니까 (다시 주먹으로 법상을 탕! 치신 후) 이렇게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 가지의 소식을 아신다면 나와 같이 동등하고, 일체와 같이 동등하고, 우주천하 전체가 도량 아님이 없고, 일체 천하만물이 나 아님이 없고, 그리고 모두 내 아픔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이 공부를 잘 하시면 이 중요한 시대에 살면서 마음의 법으로써 모든 일체를 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싸움이 심하면 말릴 수도 있고,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원심력에서 원통력을 굴릴 수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싸움도 말릴 수가 있고, 그 어떤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오직 자기 자신을 좀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23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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