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선재는 참 보기 드문 몇 가지 일을 보았다. 우선 행정부의 최고 수반이 임명한 장관이 결정한 일을 일반 검사들이 뒤집겠다는 집단 행동이 그랬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가 군대만큼이나 강한 검찰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더 놀랄 일이 생겼다. 최고 상관에게 항명하고 있는 검사들을 징계하면 그만일 행정부 수반이 직접 그들과 대화를 나누겠다고 한다. 그리고 선재는 두 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된 그 놀라운 토론회를 보았다.
선재는 토론회를 보면서 부처님께서 법륜을 굴리실 때의 모습을 상상했다. 부처님의 전법 세월 45년 모두가 대화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부처님은 특유의 대화법으로 상대를 조복시켰다. 그것은 이미 연기법이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라는 선언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신통력’으로 교화하는 일을 절대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런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거침없는 말로 설법하셨다. <화엄경>이 전하는 내용이다.
“첫째는 법무애변(法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에 통달하여 걸림없이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의무애변(義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의 바른 뜻을 알아 걸림없이 말하는 것이며, 셋째는 사무애변(辭無碍辯)이니, 여러 가지 말을 잘 알아 통달하고 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넷째는 요설무애변 (樂說無碍辯)이니, 온갖 교법을 알아 중생의 근기에 따라 중생이 좋아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말이라는 것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재는 이번 토론을 보면서 그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대화하는 일의 어려움을 배운 것이다. <법구경>에서 이런 말을 배운다.
“사랑스럽고 색깔이 아름다울지라도 향기가 없는 꽃처럼 실천이 따르지 않는 훌륭한 말은 효과가 없으리라.”
부처님께서 교화에 성공하신 것은 그에 따르는 실천 때문이었다고 선재는 생각한다. 자, 토론회 이후 어떤 실천이 이루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