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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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경전의 초월적 경향(7)
브라만교의 속성 ‘반야’에 수용돼
경전-주문 동일시…절대화 방지

부파불교의 유아론적 경향은 대승불교의 흥기와 함께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무신론적 흐름과 유신론적 흐름이다. 무신론적 흐름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반야경전들과 <유마경>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상이다. 학파로는 중관학파가 여기에 속한다. 유신론적 경향을 대표하는 경전은 <법화경>과 <화엄경>, <열반경> 등이다.
초기 대승불교를 주도한 것은 반야사상이다. 일반적으로 반야사상은 무신론을 대표하는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반야경전 속에서 신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초월적 경향을 나타내면서 신의 속성과 상통하는 개념은 있다. 반야는 완성이란 용어이다. 흔히 이것을 반야바라밀이라 부르며, 줄여서 반야지라고도 한다. <대품반야경>을 중심으로 반야바라밀의 성격을 살펴보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깊은 반야바라밀을 듣고 수지 독송하며, 바르게 사유해 살바야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면 두 군대가 싸우고 있을 때라도 이 선남자 선여인은 반야바라밀을 외우는 한 전투에 휩쓸리게 되어도 목숨을 잃거나 칼이나 화살에 다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대명품 제32)
“반야바라밀을 단지 베껴 써서 책으로 만들어 집에서 공양하고, 기억하지도 읽지도 않으며, 설하지도 바르게 사유하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사람이나 혹은 사람 아닌 것[非人]이 해칠려고 해도 그 기회를 얻을 수 없다”(상 동)

인용문에서 반야바라밀은 <반야경>을 지칭한다. 살바야는 일체의 지혜 즉 반야지다. 따라서 반야바라밀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반야바라밀이 인간의 보편적인 인식과 경험의 세계를 벗어난 초월적 공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반야경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논리적 설득을 얻기 위해 몇 가지 더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전제조건은 반야바라밀에 대한 수지, 독송, 서사, 바른 사유, 남을 위해 설명해 주는 것 등이다. “선남자, 선여인이 혼자서 빈집에 있거나 혹은 무서운 황야를 가거나 혹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게 되어도 마침내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않는다”(삼탄품 제30), “갖가지 투쟁을 일으켜 파괴하려고 찾아온 사람이 있더라도 반야바라밀의 위신력에 의해 그 나쁜 마음이 바로 소멸되고, 그 사람은 오히려 착한 마음을 내어서 공덕을 더하게 된다”(멸쟁품 제31), “송사가 벌어져도 반야바라밀을 독송한 까닭으로 아무 일이 없다. 반야바라밀의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권지품 제34), “독약 냄새를 맡더라도 혹은 사악한 요술을 사용하거나 불구덩이에 빠지더라도, 칼에 죽임을 당하려 하거나 독약을 먹게 되더라도 다치지 않게 된다”(대명품 제32), “눈이 병들지 않고, 귀, 코, 혀, 신체도 병들지 않는다. 몸을 다쳐 불구가 되지 않고, 쇠약해 늘지 않으며, 결코 횡사를 당하지 않는다”
이상은 모두 <대품반야경>에 나오는 내용들을 요약한 것이다. <대품반야경>의 주석서인 <대지도론>에는 반야지의 성격을 22가지 정도로 분석하고 있다. 이 22가지 속성 중에서 반야바라밀의 불가사의한 공덕에 관해 여섯 가지 정도 언급한다. 그렇다면 반야바라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초월적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단순한 지혜의 작용으로 이상과 같은 초월적 속성을 설명하기에는 논리적 설득력이 박약하다.
근본불교 어디에도 지혜가 이상과 같은 초월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부파불교에서는 지혜를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대별하고 있다. 그리고 무루법은 다시 택멸(擇滅), 비택멸(非擇滅), 허공(虛空)무위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여기서 선택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지혜 그것이 바로 비택멸 지혜이며, 자연지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자연지 속에는 생사 내지 인간사의 길흉을 주제하는 초월적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히려 인도사상사 일반을 주도하고 있던 브라만교의 속성이 그대로 반야바라밀에 수용된 것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반야경>에선 경전 자체를 주문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초기불교와 그 성격을 달리하는 점이기도 하지만 모두 브라만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반야사상가들은 여기서 반야바라밀을 절대화시키지 않는다. 만일 반야바라밀을 절대화하여 이원론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켰다면 반야사상은 유신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반야바라밀은 우리들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것이며, 언제나 수행과 함께 체득되는 것이라 강조한다. 어떤 개념, 설사 그것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더라도 개념화되는 것에는 반대했기에 부정의 논법을 통해 절대화를 방지하고자 했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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