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통한 대비심으로 일체중생 교화
보살행만이 불법의 생명 꽃피워

화엄삼매는 모든 법계에 충만한 지혜롭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생명력을 보살들의 무량한 삼매로써 꽃피워 내는 것이다. 입법계품에서는 보살들이 펼쳐 보이는 화엄삼매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하기 시작한다.
“그때 저 보살들이 부처님의 삼매광명이 비치었으므로 곧 이러한 삼매에 들어갔으며, 제각기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 티끌수의 크게 가엾이 여기는 문을 얻어 모든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 안락케 하는데, 몸에 있는 털구멍마다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 티끌수 광명을 내고, 낱낱 광명에서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 티끌수 보살들을 변화하여 나타내니, 그 형상이 세간 임금과 같으며, 일체중생의 앞에 나타나서 시방 법계에 가득하게 차 있으면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교화하고 조복시켰다.”
이것은 부처님이 스스로 들어간 삼매[自受用三昧]의 광명이 곧 보살들도 삼매에 들어가게 해서[他受用三昧], 보살들도 한량없는 대비심을 가지고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기 위해서 일체중생의 앞에 나타나 여러 가지 방편으로 교화하는 것을 설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가 부처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아 자비로써 여러 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을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가지 가지의 문[門]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하는 법을 설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량없는 모든 보살의 수행하는 문도 나타내고, 큰 서원의 문도 나타낸다. 열 가지 바라밀문·불법을 구하기 위해 무수히 신명을 버리는 문·모든 부처님을 가까이하여 모든 법을 물으면서도 고달픈 생각이 없는 문·모든 중생의 그때 그때의 욕망을 따라 그들이 있는 곳에 나아가서 방편으로 성숙시키어 온갖 지혜바다의 광명에 머물게 하는 문·모든 마귀를 항복받고 외도들을 제어하여 보살의 복과 지혜의 힘을 드러내는 문·모든 기술을 아는 밝은 지혜의 문·모든 중생의 차별을 아는 밝은 지혜의 문·모든 중생의 마음으로 좋아함이 차별됨을 아는 밝은 지혜의 문·모든 중생의 근성, 행동, 번뇌, 습기를 아는 밝은 지혜의 문·모든 중생의 갖가지 업을 아는 밝은 지혜의 문·모든 중생을 깨우치는 문 등도 나타낸다. 보살이 부처님의 경계를 펼쳐내는 데에는 이렇게 가지 가지의 문이 있다.
그러면 보살이 무량한 문으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펼치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장소를 설한다.
“이와 같은 말할 수 없는 부처 세계의 티끌수 방편문으로 모든 중생이 있는 곳에 나아가 성숙케 하나니, 이른바 천궁에도 가고 용궁에도 가고 야차·건달바·아수라 ·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궁에도 가며, 범왕궁에도, 인간의 왕궁에도, 염라대왕의 궁에도, 축생 아귀 지옥의 사는 곳에도 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히 모든 중생이 있는 곳이 바로 보살이 부처님의 경계를 펼쳐야 하는 곳이라고 설해져 있다. 부처님은 맑고 고요한 곳에 고고하게 안주해 계시는 분이 아니다. 부처님은 우주 법계에 보편한 무한한 광명으로서 한없이 지혜롭고 자비로운 영원의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언제나 어둡고 고통스러운 세계와 함께 하시는 분이다. 보살이 부처님께 귀의하여 그 뜻을 받들어 중생들을 위해 대비이타의 행을 실천한다면, 그는 이미 부처님의 분신(分身)으로서 부처님의 생명을 살아가는 것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입법계품에서는 다시 평등한 큰 자비·큰 원(願)·지혜·방편으로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데,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따라서 그들의 처소에 나아가서 이익을 얻도록 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경계를 펼치는 보살 모습을 밝히고 있다.
“불자여, 이 보살들이 어떤 대에는 한량없는 변화의 몸[化身]구름을 나타내기도 하고 동무가 없는 혼자 몸을 나타내기도 하나니, 이른바 사문의 몸도 나타내고 바라문의 몸도 나타내고 고행하는 몸도 나타내고 원기왕성한 몸도 나타내고, 의사의 몸도 나타내고 장사주인의 몸도 나타내고 깨끗이 생활하는 몸도 나타내고 배우의 몸도 나타내고, 하늘을 섬기는 몸도 나타내고 공교한 기술자의 몸도 나타내어 모든 시골과 도시와 서울과 마을에 있는 중생들의 처소에 가서 마땅한 대로 갖가지 형상·갖가지 위의·갖가지 음성·갖가지 언론·갖가지 사는 곳으로써 인드라그물과 같은 모든 세간에서 보살의 행을 행할 적에 세간의 훌륭한 사업을 말한다.”
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나타내 보이는 여러 가지의 분신에 대해 설한 것이다. 세상 속에서 다양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보살행을 실천하여 부처님 생명을 꽃피워 가는 구체적인 모습이 설해져 있다. 이 내용을 통해 불법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불교인의 바람직한 모습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