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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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케넷 선사 (上)
서구형 선불교 ‘불교명상종’ 창종

a서구에 맞는 선불교를 전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한 영국의 지유 케넷(1924~1996) 스님은 1962년부터 일본 조동종 본산 총지사 방장 고호 스님 문하에서 공부한 후 견성을 인가받았다.
비구니계를 받고 일본의 한 절에서 주지 소임도 맡았던 스님은 비구니로서의 포교에 한계를 느끼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샤스타수도원을 설립, 서구형 선불교인 불교명상종을 창립했다. 서구인 문화에 맞게 영어로 독경하고 영어 법명을 수여하는 등 독자적인 선불교를 가르친 것이다. 예를 들면 독경할 때 영어 경전을 그레고리안 성가같은 음악에 맞춰 읽고, 스님들의 법명은 낯선 일본 이름이 아니라 고풍스런 영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식이다.
지유 스님은 자신의 묵조선(默照禪) 수행과 견성 체험을 <사자후(Roar of the Tigress)> 등 몇권의 저서로 집필해 선불교 포교에 큰 역할을 했다.
1924년 페기 케넷(Peggy Kennet)이란 이름으로 영국에서 태어난 지유 스님은 어린 시절 <아시아의 등불(The Light of Asia)>이란 책을 통해 처음 불교를 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행을 하게 된 것은 30세가 되어서야 였다. 54년 영국불교회에 가입한 그녀는 곧이어 강사가 되었고, 4년만에 관리위원이 되었다. 이 때 정진하다 만난 고승이 일본 조동종의 고호 선사였다.
그러나 지유 스님이 일본에 가서 수행하기 시작한 62년은 아직 불교가 서구에서 발전하지 않은 때였으며, 조동종의 본산이 총지사에서도 외국인 수행자는 드문 형편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비구승 밖에 없는 절에 외국인 여성이 출가했으니 자연 놀림과 외면,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유 스님은 구도의 길에서 힘이 되어줄 도반의 부재와 주변의 무시라는 이중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깨닫고야 말겠다는 발심 하나로 정진해 이런 역경이 오히려 수행의 밑거름이 되었다.
심지어 비구승들의 짖궂은 장난도 많았는데, 어느 날 총지사의 뜰에서 한 스님이 지유 스님의 머리에 사마귀를 올려 놓은 적이 있었다. 깜짝 놀라거나 울음을 터트릴 것으로 예상했던 비구승은 오히려 실망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지유 스님은 저서 <사자후>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사마귀를 잡고 머리에서 떼어 놓았는데, 사마귀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황금빛 광채를 보고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사마귀를 내려놓은 황금빛의 풀잎 역시 마찬가지 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가요!”
지유 스님은 총지사의 고호 방장 스님이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제자로 받아들였으며, 나중에는 직접 견성을 인가하고 법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스승의 인가에도 불구하고 일본 조동종에서는 외국인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질시를 받았으며, 영국불교회에서는 진짜 일본 스님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감은 지유 스님이 고호 선사의 인가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뒤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70년, 드디어 지유 스님은 종파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선불교 포교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샤스타(Shasta) 수도원을 설립, 그가 창립한 ‘불교 명상종(Buddhist Contemplative Order)'의 본산으로 삼는다. (계속)
김재경 기자
2003-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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