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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두 집회 ‘국론분열’아니다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3월 1일 서울에서는 네 가지의 3·1절 행사가 열렸다. 첫째는 북한의 종교인 대표단 100여명이 남한의 종교인과 함께 참가하여 민족화해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3·1 민족대회’다. 두번째는 ‘3·1절 국민대회’로, 반공·친미를 내세우며, 각종 보수적 단체와 종교인, 정치인을 망라하여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세번째는 ‘3·1절 구국금식기도회’로, 개신교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여의도 시민공원에서 주최하였다. 네번째는 700여 개의 ‘진보적’ 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3·1 민족자주·반전평화 촛불 집회’다.
친미적인 ‘3·1절 국민대회’와 자주와 반전(反戰)을 주장하는 촛불 집회는 여러 가지로 상반된 성격을 보여준다. 전자가 반(反)김정일, 반공, 그리고 주한미군 철수 반대와 한미동맹의 강화를 외친 반면, 후자는 반전·평화, 그리고 민족의 자주성 확립을 주장하였다. 집회 참석자도 차이를 보여, 전자는 주로 중·장년층인 반면, 후자는 대부분 20-30대의 젊은층이었다. 그동안 두 차례의 시청 앞 기도회를 주도했던 한기총이 이번에는 구국 기도회를 개최하며, ‘3·1절 국민대회’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가지 면에서 앞서 열린 두 차례 시국기도회를 확대한 것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3·1절을 맞아 서울에서 이처럼 상반된 집회가 열린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리고 이런 집회에 종교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거나, 적극 참여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이는 해방 후 좌우대립 정국의 혼란상을 떠올리며 걱정이 많다고 하고, 또는 국론의 분열을 심히 염려하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해방 후와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그리고 국론이 통일되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사고방식은 파시즘적 독재의 냄새를 풍긴다.
민주사회는 시민 자신이 믿는 정치적 신조를 표현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정치적 입장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민주사회의 모습이다. 만약 하나의 정치적 입장만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체에 질식할 듯한 억압이 행해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낼 뿐이다. 국론 분열 운운하는 이는 대부분 위험한 착각을 하고 있다. 파시즘적 억압이 판을 치고 있던 시절을 기준으로 지금의 상황을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 시청 앞 연단 밑에는 여태껏 반공과 친미를 금과옥조로 무한 특권을 누려온 우익 정치인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맹목적 반공주의자인 개신교 목사들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였다. 지금까지 이들은 정치적 시위를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반공·친미정권이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거리에 나와 정치적 시위를 하게 된 것을 보니, 요즘 상황이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정치적 입장이 자유롭게 개진되는 분위기가 비로소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정치적, 종교적 지배층은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억압하여 침묵시켰다. 하지만 그동안 군림했던 지배 이데올로기는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다른 정치적 관점과 서로 경쟁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겉으로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며, 음험하게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던 종교인들은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집회를 개최함으로써 자신의 허구성을 폭로하게 되었다. 이제 친미, 반공의 종교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득을 챙겨온 이전의 방식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3·1절은 모두에게 소득이 된 셈이다.
200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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