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선재는 정말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안전한가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본다. 한 발 한 발 떼고 사는 일이 이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번에는 사고도 아니다. 누군가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발 밑을 살펴보고 살아야 할 지경이다. 선재는 ‘조고각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큰절 승방의 댓돌 위에서 우리를 다그치는 말이다. “발 밑을 보라!” 신발을 제대로 벗어놓았는지 살피라는 말은 곧 스스로를 반성하라는 경책으로 바뀌어 들린다. “정신차려라!”
선재의 불안한 마음 때문에 떠오른 그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사건과 맞아떨어지는지. 그가 불을 지른 이유가 너무 황당하다. 혼자 죽기 싫어서란다. 뇌졸증을 앓고 나서 몸이 불편해지자 온갖 미움과 원망이 바깥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픈 탓을 왜 남에게 모두 돌리는가? 자기 발 밑을 보지 않고 남의 발 밑만 쳐다보고는 울분을 쌓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할 것인가?
한 수좌가 각명 선사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네 발 밑을 보라”고 대답했다. 바로 지금 네가 진리 자체 속에 있다고 말한 것이다. 진리는 멀리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다는 말이다. <무문관>의 이야기다. <벽암록>에서도 ‘발 밑에서 대광명이 나온다는 것을 알라’고 하였다.
한없는 진리의 광명이 퍼져나와야 할 그 발 밑을 절통한 원한의 불길로 채워놓았으니 그가 무척 안타깝다. 자신을 바로 알고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일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자기를 바로보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성철스님의 당부가 새삼 다가온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습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을 걱정하며 두려워하여 헤매고 있습니다.”
<1982년 부처님오신날법어>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