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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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스님
자연환경·생명에 남다른 애정
“밥 먹어라” 외치자 동물들 기웃

도심에서 포교한다고 떠들썩하던 시간을 정리하고 시원함과 섭섭함의 만감이 교차하던 시간에 가장 먼저 찾은 기도처가 운문사 사리암 이었다. 사리암 나반존자 기도처에서 출가 생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며 기도에 몰입하던 때 만난 스님이 사리암 원주 정호스님이다. 정호스님은 자연과 환경, 생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열정적인 비구니 스님이다.
내가 운문사 사리암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원주스님의 관심처럼 뭇 생명이 한식구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형언할 수 없는 흐뭇함에 빠졌다. 야생 산고양이가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아 애지중지 젖먹이는 모습이나, 새끼의 어설픈 날갯짓에 안절부절 못하는 어미새의 당황하는 울부짖음에서, 이렇듯 생명 가진 것들의 자식 사랑은 지극하기만 한데, 저들과 우리가 드러난 모습이 다르다 하여 무시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정호 스님이 손 위에 잣을 들고 있으면 새들이 날아들어 잣을 물고 가는 일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크기가 아주 작은 이름모를 새는 스님의 손에까지 날아와 앉아 먹이를 먹는다. 그 작은 새가 깜찍한 발톱으로 스님의 손바닥에 앉아 먹이를 먹을 때의 그 느낌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경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먹이를 줄 때는 온 산이 떠들썩하게 전체 새들이 다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밥 먹으러 오라고 소리친다. 그러고 보면 결코 조용하다거나 다소곳하다거나 다정다감한 것은 아닌데도 스님의 목소리만 들으면 먹이 주는 것을 알고 새들이 눈치껏 기웃거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슴이며 염소까지 찾아든다는 말에 산을 지키고 가꾸는 스님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자비와 신뢰의 마음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 짐승들이 사람과 말이 통해서 가까이 오겠는가! 말보다 진한 따뜻하고 악의 없는 마음이 느껴져야만 동물들은 움직인다.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요즘 세태에서는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짐승은 그가 가진 자연의 본능으로 상대를 인식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도 좋겠다는 확신이 서야만 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더러는 자신의 심통은 가려놓고 먹이를 내미는 자기에게 새가 오지 않음을 원망한다. 새나 짐승들이 생각보다는 영리하다. 최소한 자신을 지키는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새들의 직감이, 목적과 수단, 즉 순수와 허세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모든 생명에게 악의 없는 마음을 열고 있는 스님이 바로 사리암 원주 정호스님이다.
스님은 산중에 함께 사는 생명들과 대화를 한다. 앞산에 산비둘기의 울음소리를 통해 그들의 사연을 알아 듣고는 걱정과 안심사이를 수없이 오고 간다. 고양이가 유난히 많아서 사연을 물었더니 쥐들이 설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느냐면서 고양이 밥을 자식 돌보듯 정성껏 주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사는 고양이들의 이력을 꿰고 있다. 이놈은 요사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걱정이고 저놈은 얄밉게 많이 먹는다고 투정인 스님에게서 남다른 생명사랑을 느낄 수 있다. 호거산 산중에서 한 스님의 자비한 마음이 산 전체를 아름답고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 후 매달 사리암 기도를 가면서 알게 되었는데 정호스님은 짐승들에게만 마냥 너그럽고 자비심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대학입학 수학능력고사가 치러지는 날에도 기도를 갔었는데, 정호 스님의, 수험생 부모들을 향한 애처로운 마음씀이 마치 모든 기도 불자들의 어머니 같았다. 수험생 부모가 아닌, 사리암을 찾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 하루만큼은 조용히 하라, 자리를 양보하라, 신경을 자극하지 말라는 등등 수험생부모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유난히 지극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시비도 많고 뜻밖에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없지는 않지만, 스님의 생명사랑은 생명경시가 갈수록 심해지고 인간중심의 편협함이 느껴지는 요즈음 현실에서는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마음이다.
소중한 생명을 어이없이 앗아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을 보면서,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정호스님 같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웃음 가득한 세상을 살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특히 남는다.

심산 스님은 81년 내장사에서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 86년 범어사에서 자운 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86년 동국대 졸업하고, 88~90년 공군법사로 활동했다. 93~2002년 통도사 부산포교원 주지를 맡아 문화를 통한 지역포교에 앞장서 왔다. 현재 사단법인 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
200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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