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으로 변한 고려왕실 원찰
중원 땅 숭선사지(崇善寺址)는 폐사지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외짝의 당간지주. 돌멩이보다 더 많은 기와 파편들. 산비탈의 늙은 감나무. 눈보라를 앞세운 신덕 저수지의 갈대들. 이 모든 것들이 비지정 사적지인 숭선사지의 유적들이다. 이름 있는 현존 사찰들만을 찾아가 윤기 흐르는 안마당만을 밟고 오는 사람들은 불교의 참맛을 알기 어렵다. 앞모습이 소중한 만큼 뒷모습도 소중한 법이다. 폐사지는 불교의 뒷모습이다. 세상살이가 시끄러울 때 슬쩍 역사의 뒤켠으로 돌아가 옛 절터를 더듬으면, 거기 이 나라 절집의 영욕들이 오롯이 숨쉬는 추억의 박물관이 있음을 본다.
전국에 널려있는 폐사지들 중에는 이미 수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수많은 재원이 투입되고 복원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지들도 있지만, 충청북도 중원군 신니면 문숭리 숭선사지처럼 아직 세상에 그 모습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세월의 이끼를 뒤집어 쓰고 역사의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비지정 사적지들도 있다.
이번 답사 코스로 아침나절 들렀다가 서둘러 빠져나온 청주 흥덕사지가 인스턴트 식품의 맛으로 답사 뒤의 입맛이 깔깔하다면 숭선마을 숭선사지는 잘 익은 군고구마를 껍질 채 씹은 듯 텁텁하다. 흥덕사지 답사의 뒷맛을 주덕 근처에서 황태조림으로 씻어내고 신니면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때 아닌 눈발이 눈보라로 그 숫자를 불리기 시작한다. 이 길의 옛적도 그러했을 것이다. 저 눈보라 숫자만큼 많은 중생들이 저 눈 보라 숫자보다 많은 사연을 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숭선사지는 <고려사(高麗史)>광종(光宗) 5년(945) 조에 ‘춘창숭선사추복비’라고 기술된 바로 그 사찰이다. 태조 왕건의 아들로 고려 제4대왕인 광종이 어머니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었던 것이다.
숭선사지는 수리산 남동사면에 위치하며 사역은 약 1만여 평으로 산지와 평지의 중간지대인 완만히 경사진 곳에 자리하는 고려시대 가람의 입지를 잘 보여준다. 숭선사지는 1995년 지방사학단체인 예성동호회(현 예성문화연구회)에 의해 처음으로 실시된 지표조사를 통해 ‘숭선(崇善)’, ‘선사(善寺)’ 등이 새겨진 기와를 수습함으로써 숭선사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충청대학교 박물관팀에 의해 발굴조사가 더 이루어졌는데, 희국사(希國寺)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어 마을에 구전되는 희국사라는 소문과 같이 후대에 사명이 변경되었던 것으로도 추정된다.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결과로 숭선사지는 고려초기에 건립되어 1차로 1182년 (고려 명종6)에 대규모로 중창되었으며, 1579년(조선 선조12)에 다시 중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숭선사가 처음 중수된 시기는 충주지방의 미륵리사지, 오갑사지, 의림사지 등에서 대규모 중수불사가 이루어졌기에 왕실의 원찰인 숭선사지도 당연히 중창불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2차 중수기인 조선 선조 무렵에는 ‘희국사’라는 명문이 발견되어, 이 때 지엽적인 중수와 더불어 사명 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 왕실의 원찰로 창건되어 18세기까지 사찰의 경영이 계속되었던 숭선사의 폐사 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불탄 기와 등이 다량으로 수습된 것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시기에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숭선사는 바로 왜군의 북상로에 위치했고, 탄금대가 멀지 않아 신립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던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현재 숭선사지는 발굴된 사역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사역의 일부를 비닐로 덮어 놓았다. 아직 비지정 사적지이기에 곧이어 농번기가 다가오면 다시 사지는 사적지가 아닌 고추밭이 되어야 하고 담배 밭이 되어야 한다. 근처 절터 진입로에서 땔감을 톱질하던 촌로는 골짜기 전체가 사지이고, 마을회관 앞에 돌기둥처럼 생긴 당간지주가 있다고 일러준다.
그동안 숭선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가운데 가장 특이한 것은 금동제 연봉형장식. 연봉이란 기와 고정못의 부식을 막기 위해 쇠못을 덮어씌우는 꽃봉오리 모양의 물건을 말하는 것인데, 전례가 없는 국내 최초의 것이다. 이것은 창건 당시 금당의 지붕 윗면 가장자리에 박혔던 와정을 금빛 찬란한 연봉형 장식으로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화려하고 웅장했을 사찰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사지 위쪽에는 발굴 작업에서 나온 기와 조각과 백자 파편들을 낟가리처럼 쌓아 놓았는데, 이렇게 많은 기와 조각이 출토되기까지 무심하게 고추농사, 콩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네 농민들의 무덤덤한 문화적 안목을 읽게 해준다.
마을조차 절 이름을 따 ‘숭선마을’이라 불리는 예사롭지 않은 이 폐사지에는 이정표인듯, 마을의 표석인 듯 외짝 당간지주가 마을 한켠 길옆에 서 있다. 짝은 일제치하에서 저수지 다리를 놓느라 끌어가 수심 깊은 곳 어딘가에 수장되어 있고, 혼자 남은 기둥도 그 당시 도끼로 맞은 정강이의 상처가 아직도 선연한 채 번(幡) 대신 눈바람을 펄럭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
다음은 충남 서산 보원사지편
사진=고영배 기자
숭선사지 가는길
숭선사지는 충북 중원군 신니면 문숭리 숭선마을 862-2번지에 위치한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이천 IC에서 3번 국도를 따라 충주로 가다가 주덕에서 신니면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된다. 충주 쪽에서는 3번 국도를 타고 서울방면으로 22㎞ 정도를 달리다가 신덕저수지(일명 용원저수지)가 보이면 동락초등학교 오른쪽을 돌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