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윤회…실체없다” 부처님 말씀
印 사상가들 5논리 내세워 부정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존재의 궁극적 실체인 아트만(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아트만이 생물학적인 윤회의 실체라는 점에서 아트만을 인정하지 않는 무아설에 대해 많은 사상가들이 비판과 회의를 제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업과 그 과보는 윤회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그런 점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인도 일반에서 상식화되어 있는 윤회의 개념과는 분명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히려 영향력, 전달 등의 의미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의미에 가깝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일반 사상계에서는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도덕부정론자들은 업보사상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부정적이었다. 실체가 없이 윤회한다는 것이 쉽게 수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갑이란 인간이 탄생하여 성장하고 죽는 과정에서 불변의 실체가 있어서 갑이란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 사고였다. 그런데 불교적인 견해에 따른다면 갓 태어난 갑과 40세의 갑, 그리고 60세의 갑은 동일한 인간이 될 수가 없다. 외형이나 인간적 특징에 어느 정도의 유사성은 있을 수 있지만 불변의 실체인 아트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단 그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단순히 갓 태어난 갑과 40세의 갑, 그리고 60세의 갑은 격절된 인간이 아니라 업과 업보의 상속이라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업과 과보의 연속선상 위에서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세포조직 내지 구성 요소들이 받아 유지하다가 다음의 세포나 구성요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은 소멸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적인 용어로 온(蘊)이 사라지고 다른 세계의 온이 쌓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당시의 도덕부정론자들은 이런 점은 간과한 채 아트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만 천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트만을 부정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업보설을 부정하는 도덕부정론자들과 다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지타 케사캄발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비나 박애의 행위를 해도, 신에게 제사지내고 기도를 올려도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선악업이라는 것도 그 과보란 없다. 금세도 내세도 없으며, 아버지나 어머니도 없다. 올바른 수양이나 노력을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해탈한 성자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세상에는 단지 흙, 물, 불, 바람의 물질적 4원소가 있을 뿐이며, 이 4원소의 집합에 의해 인간과 동물이 태어나고 발육하고 운동 변화하는 것이다”
아지타는 유물론자의 입장에서 물질 이외의 영혼이나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동일한 차원에서 종교나 도덕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약간의 시각적 차이는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도덕과 업보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유행했던 도덕부정론자들을 유형별로 구분하면 대략 다섯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첫째 자재화작인설(自在化作因說)이다. 이 세계나 인간의 운명은 모두 범천이나 자재천 등의 최고신이 창조하였다고 본다. 따라서 일체는 신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며,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정되지 않는다.
둘째 숙작인설(宿作因說)이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행과 불행의 운명은 모두 우리가 과거세에 행한 선악업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며, 인간의 운명을 전세의 업보로 본다. 따라서 현세에 선악의 행위에 대해 노력하더라도 그것은 내세의 운명을 규정하는 원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현세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셋째 결합인설(結合因說)이다. 세계 인생의 모든 것은 흙, 물, 불, 바람 등의 여러 요소의 결합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그 결합 상태의 좋고 나쁨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이 정해진다는 주장이다.
넷째 계급인설(階級因說)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흑, 백, 청, 황, 백, 순백의 여섯 가지 계급으로 구별되어 있으며, 그 계급에 따라 인간의 성격, 지혜, 환경, 가계 등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다섯째 우연기회인설(偶然機會因說)이다. 무인무연설(無因無緣說)이라고도 한다. 사회, 인생의 운명은 인과업보의 법칙에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신의 은총이나 징벌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상 다섯 가지의 사상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배제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이 우연론이든 유신론이든 아니면 전세의 업보이든 모두 자유의지가 전제된 인과율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덕부정론의 논리적 단초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