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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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과 부처님 세계
공간적 무한성, 자비로운 작용 전개
마음·세계 하나되어 활동하는 세계

보현보살이 사자빈신삼매 경계에 대해서 설하고 난 후,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게 하려고 미간의 흰 털로부터 큰 광명을 놓는다. 그 광명의 이름은 삼세의 법계를 두루 널리 비추는 광명[普照 三世 法門]이었는데,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광명으로 권속을 삼아 시방세계 제불국토에 비치었다. 그 때에 서다림에 있던 보살대중은 모두 모든 세계 불국토의 여러 가지 이름·빛깔·청정함·머무는 곳·형상을 보게 되었다.
입법계품에 설해진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부처님의 근본 뜻은 어디에 있으며,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엿보게 된다. 부처님의 근본 뜻은 보살들을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게 하는 데에 있다. 불교라고 하는 종교의 본령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지혜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나가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보살은 그러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부단히 지혜롭고 자비로운 삶을 펼치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지혜롭고 자비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광명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화엄경>에서 모든 광명의 근원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그 근원을 둔다. 그러므로 광명의 근본은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인 것이다. 부처님은 일체법에 정각을 이룬 한없이 지혜로운 분이다. 이러한 성격은 무엇보다도 비로자나(Vairocana)불이라고 하는 명호에 잘 나타나 있다. 비로자나(Vairocana)라는 말이 ‘광명을 두루 널리 비춘다(光明遍照)’ 라고 번역되는 것처럼 지혜의 빛이 모든 것을 두루 비춘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본질이 사물의 진실을 아는 지혜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비로자나불은 특히 공간적인 무한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광명이란 태양에 비유되는 자비로운 작용이 되어 전개하는 지혜의 광명이다.
이렇게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 지혜를 비로자나 여래로 해서 인격적으로, 힘차고 활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화엄경>에서는 여래의 활동이 주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지혜의 광명은 말할 것도 없이 여래의 지혜가 중생들의 무명 암흑을 깨뜨리는 것으로, 지혜의 작용이 세상 만물에 이로움을 주는 태양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진다. <화엄경>에서는 지혜광명을 가지고 한없이 자비로운 여래의 활동을 나타낸다. 따라서 <화엄경>은 세상 만물에 작용하는 크나 큰 자비의 생명력으로서의 여래의 활동을 찬탄하고 강조하는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큰 자비에 입각한 이타(利他)의 작용은 절대적인 대승의 입장을 천명하는 <화엄경>의 커다란 특색이 되고 있으며, <화엄경>에서 누누이 설해지고 있다.
티끌과 같은 시방세계에/ 광명 그물이 가득하고/ 광명 속마다 불타가 계셔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
운전하시는 묘한 법수레/ 법의 성품이 차별 없나니/ 오직 진실한 이치에서/ 모든 법상(法相)을 연설한다.
중생들이 많고 넓어 끝이 없건만/ 여래께서 모두가 염려하시고/바른 법륜 골고루 굴리시나니/ 비로자나불의 경계로다.
<화엄경>에 설해진 이러한 설법을 통해 화엄경의 여래는 일체 존재의 진실을 밝히는 대지혜의 부처님[大智慧佛]으로, 확실히 중생구제자로서의 입장이 강하게 나타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신불은 영원불멸의 부처님으로서 그대로 한없는 지혜이고 자비이다. 지혜는 우리들 인간의 근원적인 무명을 비추어서 없애는 광명이 되어 작용하고, 자비는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해서 따뜻하게 감싸고 고뇌를 없애줄 수 있는 힘을 주는 참된 생명이다.
그런데 비로자나불이 대지혜불(大智慧佛)이라고 해서 다만 주관적인 지혜만을 부처님으로 보지 않고 그 지혜에 의해 비춰 나온 객관적인 세계도 또한 부처님의 내용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세계가 하나[一體]로 되어 활동하고 있는 세계다. 중생의 가지가지 업보에 의해 여러 모양과 상태로 느껴지고 있는 세계도 부처님의 지혜 광명의 눈으로써 보면 미묘하게 장엄된 화장세계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해 나타나는 불국정토, 즉 한량없는 광명과 장엄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제다. 여래의 광명이 비치는 곳이 객체적인 세계로서의 불국정토다. <화엄경>에서 여래의 광명이 시방세계에 두루 비친다고 하는 의미는 이러한 객체적인 세계의 성립이 여래의 광명에 의해 있게된다고 하는 의미일 것이다. 공간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것의 진실된 모습이 여래의 지혜 광명에 의해서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세계는 객관적으로는 장소적으로 나타나지만, 주체적으로는 체험적으로 파악되는 마음의 세계[心境]라 할 수 있다. 진실로 이 현실의 세계는 우리들 마음가짐에 의해 사바세계도 되고 화장세계도 되는 것이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
200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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