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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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 선사 (下)
벽안제자 수행 돕는 자상한 어머니

화두 참구가 보살행의 실천과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까. 성향 선사는 이 난제를 이렇게 헤쳐나갔다. 그녀는 세계적인 불교잡지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모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웠다면, 새로운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지?’라고. 우주는 매우 관대하죠. 조금만 주의를 귀울여 듣는다면, 그 대답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고 사명감은 저절로 떠오를 것입니다. 당신이 고른 직업과 사명을 명석하게 자비심을 갖고 처리하세요. 어디로 한 발 내딛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당신은 결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살행을 펼치되 언제나 ‘이 뭣고?’를 질문하며, 수행해야만 합니다.”
성향 선사는 임종간호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종말을 지켜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기직전 스스로에게 “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시간은 다 어디로 가버린거야?”라는 질문도 못한 채 일생을 떠나보내고 만다. 성향 선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방향이나 목적도 없이 죽어가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향 선사는 마음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바른 처방을 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성향 선사는 봄날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생기 있는 불법(佛法)에 대한 지혜를 숭산 스님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려는 열정을 보여 주었다. 스승의 가르침 그대로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제자들에게 따뜻한 가르침을 편 성향 선사는, 그들이 자기자신을 이해하고 본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강력하게 이끌어주었다.
1972년 숭산 선사의 제자가 된 후 30여년간 공부하면서, 어느덧 성향 선사는 숭산 스님을 닮아 있었다. 관음선원 원장 숭산 스님을 보좌한 부원장으로서, 세계 32개국 120여 개 홍법원 산하 5만여 벽안 제자들의 수행 정진을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온 것이다. 성향 선사는 처음 숭산 선사를 친견했을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숭산 선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히피였습니다. 끈 모양의 긴머리에 더덕더덕 누빈 청바지를 입고 쌀과 콩만 먹는 배타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향 선사는 선원에서 몇 주일을 살았는데, 스승의 가르침이 얼마나 깊고 노련하며 유머러스한 지를 알게 되었다.
“스님은 언제나 어떤 질문에도 기꺼이 응답하셨습니다. 가끔 엉뚱한 질문을 하면, 젓가락으로 질문을 한 제자의 머리를 톡 치면서 말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 내려놔, OK?’”
이것이 컵이냐, 아니냐 하는 속임수에 걸리지 않고 컵을 들고 마시면 되는 경지를 일깨워준 숭산 스님의 ‘문없는 문’의 관문을 통과한 성향 선사는, 그간의 수행을 이렇게 회고한다.
“숭산 선사께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 즉, 위대한 사랑과 동정심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완전하지 못하기에, 보다 완숙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과의 인터뷰 중에서)
김재경 기자
200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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