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휘날리는 깃대
옛날의 사찰에서는 지금과 달리 적지 않은 깃발이 휘날렸다. 절 입구에는 어느 종파의 소속임을 알려주는 깃발이 펄럭이고, 법당 안에도 기둥이나 천개에 깃발이 드리워지며, 법회 때 마당에 깃발을 세우고, 탑에는 하늘 높이 나부끼던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화려한 깃발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큰스님들의 다비식 때나 볼 수 있는 만장 정도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절 입구에도 깃발은 물론 깃대마저 사라지고 깃대를 꽂아두던 장치인 당간지주만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한 가운데 비록 깃발은 없어졌지만 깃대가 온전히 남아 있는 유물이 전하여 예전의 깃발문화를 떠올리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국보 136호로 지정된 용두보당(龍頭寶幢, 호암미술관 소장)이다.
이것을 우리는 당간(幢竿)이라 부른다. 당(幢)은 깃발이고 간(竿)은 깃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당간지주라 하면 이 깃대를 땅에 버티고 서있게 하는 받침대를 말한다. 깃발의 종류로는 당 외에도 번(?), 정(旌), 기(旗), 절(節), 개(蓋)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당이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깃발인 것이다. 물론 이 깃대에 당이 걸렸었는지 번이 걸렸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이 깃발의 대명사이기 때문에 당간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또한 당간을 간략하게 당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이 유물의 명칭이 용두보당인 것이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명칭을 붙인다면 청동용두간(靑銅龍頭竿)이 맞다.
그런데 깃대의 꼭대기는 왜 용머리로 장식되어 있는 것일까?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첫째 아들인 초도(椒圖)는 무엇을 물기를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고리인 포수함환(鋪首銜環) 장식을 보면 용이 문고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깃대의 꼭대기 고리를 용머리로 꾸미는 이유는 초도가 물고 있으면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용머리로 꾸민 깃대는 불교의 의장일 뿐만 아니라 궁중의 의장에서도 함께 활용되었다. 이 용머리 모습의 고리를 <조선왕조실록>이나 <춘관통고(春官通考)> 등 옛 문헌에서는 간두용구환(竿頭龍口環)이라 불렀다. 경북 풍기에서 출토된 금동용두(국립대구박물관 소장)가 대표적인 간두용구환인 것이다. 또한 이 깃대에는 마디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원래 깃대로 대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깃대 간(竿)자를 보더라도 대죽 머리가 씌어져 있다. 때문에 용주보당에서는 재료로 청동을 사용했어도 대나무의 마디 표현만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용두보당은 높이가 73.8㎝ 밖에 되지 않아 그 용도가 궁금해진다. 이것은 사찰 마당에 세우는 키 큰 당간은 아니고 실내에 세우는 깃대인 것이다. 그래서 마당에 세우는 당간과 달리 기단을 불상의 대좌처럼 3단으로 구성하여 위엄을 높였다. 이 깃대에는 사찰의 표식보다는 불, 보살의 위덕을 나타내는 깃발을 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용두보당의 묘미는 용의 형상에 있는데 공간적인 구성미가 매우 뛰어난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절묘한 비례 속에서 용의 형세는 생기가 넘친다. 간결한 표현이지만, 갈기, 더듬이, 송곳니, 눈썹, 귀 등의 뻗침은 살아있는 듯하다. 조용하면서도 힘찬 선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려전기 불교미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제 이 아름다운 깃대에 당이나 번보다는 혜능선사처럼 마음의 깃발을 휘날려 보는 것이 어떨는지.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