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포교 이끌며 불자긍지 심어
학생법회 중요성 온몸으로 보여줘
목주스님의 학생회 ‘보디삿트바의 모임’의 그 다음 작업은 구성원인 학생들에게 ‘나는 불자(佛子)’라는 인식을 새롭게 다지고 자부심을 키우는 일이었다. 스님은 아이들에게 ‘법화경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상불경 보살의 서원을 늘 외우도록 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발원을 꼭 이야기하도록 하셨다. 아이들은 그 발원을 통해서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이 마음 속에 자리잡아가고 있을 즈음에 스님은 가두포교를 계획했다.
가두포교란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불교와 모임의 취지를 알리고, 절을 안내하며 학생들을 위한 법회에 동참을 권유하는 포교이다. 어른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스님은 꼭 해볼만한 일이라며 장소와 시간까지 정해 주셨다. 강남구청 사거리의 영동백화점(지금은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일요일 오후 2시란다. 그 당시 강남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였고 가장 혼잡한 시간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물론 지도교사인 나마저도 왠지 서먹하고 어색해서 걱정이 앞섰다. 예상대로 처음 시작할 때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내전단을 다짜고짜 들이밀면 받는 사람, 뿌리치는 사람,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 심지어 불쌍한 표정으로 돈을 주는 사람까지… 모두들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때 스님께서 큰 소리로, 정말 큰소리로 상불경 보살님의 발원을 외쳤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스님은 더욱 소리치고…
아이들은 그때부터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안내전단을 나누어주고, 함께 상불경 보살님의 발원으로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순식간의 변화에 우리 모두는 놀라워했고 그렇게 열심히 그 날의 가두포교는 끝이 났다. 가두포교가 끝난 후의 뒷풀이에서 아이들의 여러가지 반응이 나왔다. 그 중 가장 의미있는 일은 아이들 모두가 자랑스럽게 불자임을 자각하고 또 자기 자신이 불교를 위해, 모임을 위해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뿌듯함이었다. 스님의 목적도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아이들을 진짜 불자로 만들어 냈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의 일을 생각하면 입가엔 미소가 머물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렇다. 그렇게 내가, 우리가 포교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인데, 우리는 무엇인가를 믿고 의지해 살아간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학생들은 선생님, 부부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산다. 이렇게 우리는 평생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약한 중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믿음과 가치관을 만나는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더욱이 그 시기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또 사회에 나가서는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청소년 시기라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불교를 전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교와 무속(巫俗)행위를 분명히 구분짓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우리 어머니처럼-지금은 물론 아니지만- 절에 다니는 어른들도 그렇다.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모두가 교육의 부재 때문이고 우리 스님들의 잘못이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요즈음 많은 분들이 어린이 포교의 중요성을 역설하신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포교의 중요성은 어린이는 물론 자라나는 청소년, 어른들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불교에 입문하는 시기가 여러가지 인연으로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시기에 맞는 적절한 포교의 방법과 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특히 중,고생 학생 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찰에서 학생법회를, 지원해야 할 법회의 대상으로만 여겨 소홀히 다루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 신병교육부대의 법회에서 학생회 출신을 헤아려보면 거의 전무(全無)했다. 부모의 종교로 인해 법회에 참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또한 부모님들의 영향과 본인들의 무지(無知)로 인한 잘못된 불교의 생각을 바로세우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군법회의 한계로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학생 시절에 불교를 접하고 조금이라도 바른 불교를 배울 수 있다면 우리 불교의 모습이 훨씬 더 풍부해지고 바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목주스님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나에게 학생법회의 중요성을 온 몸으로 보여 주셨던 스님이다. ■서울 창동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