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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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정뿐만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
지구촌을 살리려면

해가 거듭될수록 오존층의 파괴와 해수면의 상승, 에너지 자원의 고갈 등, 지구 전체의 문제가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공부를 해나가는 불자들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한생각이 법이 되어 지구촌을 살릴 수 있는 것인지 가르침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의 도리를 공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며, 모두가 각자 내 몸속에 있는 자생중생들과 하나가 되야 합니다. 즉 말하자면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업식이 제가끔 논다면 운명팔자를 못 면합니다. 내 마음으로 다스려서 한아름으로 뭉쳐서 한마음이 돼야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 따라주며, 그래야 한생각이 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 군데로 모아서 작용을 해야 하는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에 옆구리가 아프다 하면 옆구리를 작용하는 그놈들에게, 둘이 아닌 까닭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요소 요소를 진행해 나가면서 모두를 리드하는 마음의 주인이 있어야 모든 중생들도 다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리드해 나갈 수 있어야만이 말 자체가 법이 되고, 행 자체가 그대로 법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중생들의 마음이 내 한 생각에 따라서 배우고 나가는 데에 바로 흡수돼서 팔자운명이라든가 그런 걸 떠나서, 내 마음에 의해서 모든 것이 돌아가기 때문에 그때는 원래 가지고 있던 의식이 없어지고 딴 의식으로 돌려지니까 화해서 보신으로 응신으로 화한다 이겁니다. 그래서 천백억화신으로서 능히 법신이 되고 응신이 되고, 부처가 되고 다 제도가 돼서 자유자재권을 얻어야만이 마지막에 내가 천백억화신의 대표로서 성불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럼과 동시에 우리가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동시에 해결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때는 안팎이 똑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마음이 훈련이 되고 계발이 되고 내면에 불을 밝혀서 자동적으로 작용을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스스로 생길 때, 지구의 수명도 길게 할 수 있고 태양의 수명도 길게 할 수 있고 은하계의 별성들도 다 내 몸속 중생의 별성과 똑같이 이룰 수가 있다 이 소립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어떤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 마음도리로서 관해주면 훨씬 나아지는 겁니다. 우리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만 적용 되는 줄 알고 그러지만 큰 일이나 조그만 일이나 다 같아요. 그러니 올해에는 더욱 더 내 가정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를 위해서 내면의 불을 밝히고 정진 또 정진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 생전에 자성불을 밝혀서 욕심과 아상을 녹여야 하고 가정의 문제나 국가의 문제를 무마해야 하고 지구의 문제도 무마해야한다는 것을 아주 명심하시고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나요?

죄송하지만 모르는 게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본래 공한 데서 나왔는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요?

우리가 애당초에 생명이 생기기 이전에 지수화풍에 의해서, 흙과 물과 바람이 한데 합쳐서 따뜻한 원기(火)를 줌으로써 생명체가 생기고, 생명체가 생기기 이전 불(火)이라는 자체의 불성(佛)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게 네 가지가 한데 합쳐서 수없는 미생물이나 혹성의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미생물이 수없이 흘러나와도 묘한 것은 그 미생물은 넷이 동업자가 돼서 태로 낳고 알로 낳고 화해서 낳고 습한 데서 낳고 이래서 네 가지로 화현을 했는데, 물의 성품은 물의 성품대로 물에서 살게 했고, 바람의 성품은 바람의 성품대로 날아서 살게 했고, 습한 데서 난 것은 그런 성질이 있기 때문에 바로 이 땅에서 살게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아주 기묘한 것은 불의 성질입니다. 불의 성질은 뜨거운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의 근본, 나기 이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 자체는 모든 것을 포괄하게 돼 있고 또는 모든 게 같이 이끌어 돌아가는 한마음의 끝없는 진리! 이것은, 누가 생명이 더하고 덜함도 없는 소중한 불이라는 보배가 우리에게 전부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생물에서부터 쫓고 쫓기면서 단계단계, 즉 말하자면 미생물의 세계 곤충의 세계 동물의 세계, 진화된 인간의 바로 밑에 있는 코끼리라든가 소나 말 등이 있고 나서 인간은 제일 마지막에 됐다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되기까지 먹히고 먹고 쫓고 쫓기면서 부딪치면서 뼈아픈 세월을 지나오면서 진화돼서 인간까지 왔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으로 세 번을 태어나서 살아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금방 된 사람은 가끔 짐승의 짓을 해서 행동이 부드럽지 못하고 악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생각에 돌려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이 우리가 지금 돌아가는 이 시점의 공한 자체를 부처님께서는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까 말한 그 자체가 얼마나 묘한 도리입니까? 물에서는 물 성질을 띄고 나왔기 때문에 물에서 살고, 습한 흙에서 살고 또는 날라 다니며 살다가 불성을 본래 다 가졌기에,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몸 속에 있는 중생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잘 아는 게 아닙니다. 그건 왜냐하면 여러분이 과거에 인연 지은 대로 악업 선업을 지은 대로 인연에 따라서 바로 여러분의 몸 속에 뭉쳐 있는 것입니다. 그걸 고(苦) 덩어리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 자체 생명의 의식들은 내가 잘못됐다 잘됐다 이걸 모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이 바로 자기의 몸에 있는 중생을 제도하고 다스리며 나가야 된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안에서 나오는 것대로 둘이 아닌 까닭에 놓고 바로 다스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나오기 이전의 악업 선업이 담긴 마음의 배낭을 짊어진 채 나왔으니 과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짊어지고 나왔는데 말입니다. 미래는 오지 않아서 없다고 했지만 미래도 여기 있습니다. 정신계로부터 물질계로 나오니까 정신계와 물질계의 그 깊은 사연들은 삼합이 한데 합쳐져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현실에 극락과 지옥이 다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소로 살다가 소의 습을 놓지 못해서 도로 소로 태어나고, 사람으로 그냥 살다가 보면은 회향을 잘 못해서 도로 중세계 차원의 삶을 가지고 다시 또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 철 사는 동안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벗어나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깨우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 불기둥이 자기를 움죽거리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계의 지름길

저는 물질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청년법우입니다. 그런데 물질계를 공부하다보니까 물질과학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면 마음의 과학이 아니고는 안된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물질계와 정신계가 둘이 아니고 심성답
과학이 아니고서는 물질과학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실제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물질적인 연구를 생업으로 삼으려고 하는 사람이 마음공부를 통해서 정신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지름길이 무엇인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과학이라고 해서 어떤 물질적인 연구를 하는 것만이 과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농사를 지어서 밥 한 끼니 해 먹는 것도 과학이요,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도 과학입니다. 과학 아닌 것이 어디 하나나 있습니까? 설 명절 때가 되면 모든 가정에서 많이들 해 먹는 식혜를 생수를 가지고 만들어 내놓는 것도 바로 발전입니다. 그러고 과학입니다. 적다고 해서 과학이 아닌 게 아닙니다. 큰 거나 작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심성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심성과학이란 걸 모르고 물질과학으로만 가기 때문에 지금 모두들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의학이나 과학이나 천문학이나 그 어떠한 연구도 심성(心性)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팡입니다.
우리가 물질세계의 50%를 바탕으로 앞으로 정신세계로 치닫는 교차로에 놓여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지금 천체물리학이니 철학이니 지리학이니 천문학이니 하고 무수히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연구를 할 때 첫째 이런 게 있죠. 예전에 누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스님! 지금 우리는 우주에서 외계인으로부터 전파를 타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 아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그건 천부당 만부당하다고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부터 내가 내 무전전화를 놓아야 남한테 전화도 하고 전화를 받을 수도 있지만 나를 떠나서는 그 통로가 막히기 때문입니다. 모두 제가끔 통로가 있으니까 그 통로를 바로 틔어주고 모든 게 파악이 된다면 물리가 터지고, 파악이 되면 두루 탐험할 것이고 볼 것이고 또는 두루 들을 것이고 찰나찰나 만날 것이고, 내가 결정지을 것이고, 안팎으로 통신하는 소임으로 할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이라는 이름 없는, 바로 진드기 발 하나도 내 발 아닌 게 없기 때문에 평발이라 했고 내 손 아님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바로 평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계를 알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거를 알아야 알 수 있는 거지 그거를 모르고는 절대 알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깨우친 분들은 과거 생을, 즉 말하자면 이 사바세계와 무아의 세계를 그저 한 찰나에 들고나는 겁니다. 그렇게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그냥 넘나드니까 모를 리가 있나요? 삼천 년 전도 알고 삼만 년 전도 알고 삼십만 년 전도 알 텐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모른다고만 하고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른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리가 심안으로 볼 줄 알고 마음의 귀로 들을 줄 안다면 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너무 넘치게도 하지말고 진실로 자기 자성의 뿌리를 밝힌다면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마음의 능력을 맛 볼 수 있을 겁니다.


허탈한 마음이 드는데…

항상 공부할 수 있게 이끌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다보면 환희심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허탈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이러면 안되지 하고 다시 잡아 나가면서 굴려 놓고 그러는데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마음이 여일하지 못하고 허탈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허탈한 마음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여러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그 생명들만 해도 그 의식들만 해도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한 두개라야죠. 그러면서도 마음은 색깔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니까 그게 광대무변하다는 얘기입니다. 그 뜻을 생활 속에서 느낀다면 우리가 자유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이 집일 수도 있지만 자기의 시자일 수도 있습니다. 즉 종이라고 할 수도 있죠. 듣는 데 따라서, 보는 데 따라서 작용을 합니다. 그러니 각자 여러분의 진실한 그 마음은 어디 가고 그저 나오는 대로 움죽거리죠.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화를 벌컥 내고 누가 조금만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벌컥 내는 그 마음, 듣고 화내는 마음은 뭐며 또는 내가 이렇게 하면 안되지 하는 마음은 또 뭡니까?
그리고 마음이 부처라고 해서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고 자만하신다면 나라는 욕심이 들어가서 더 공부를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몸 속에 있는 그 중생들이 누구로 인해서 그렇게 뭉쳐 있습니까? 악과 선이 거기에 다 있다고 보는데 하나의 지배인이 통솔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닦아야 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점차적으로 가다보면은 닦을 것도 없고 또는 다스릴 놈도 없이 여여하겠지만…. 몸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있기 때문에 악업 선업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여러분이 지은 바 그대로…. 내가 그러죠, 입력이 돼서 낱낱이 나온다고요. 낱낱이 나오는 대로 속고 바깥으로 물질에 속고, 보고 듣는 대로 속고 안에서 일어나는 대로 속고 끄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마음이면 마음이지 왜 한마음이라고 그랬느냐? 우리 몸을 봐도 한마음이요, 바깥에 모두를 봐도 한마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뼈와 살을 빌어서 몸 하나를 받았지만, 과거에 살던 인과로 인해서 악업도 뭉치고 선업도 뭉쳐서 이렇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허탈감이 온다든가 그럴 때에 허탈감도 스스로 조절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기가 올라갈 때는 올라가는 대로 잔잔하게 만들고, 또 내려갈 때는 내려가는 대로 조절을 해서 위로 조금 올리고 하는 그 리듬을 맞춰서 주인공에다 모든 거를, 올라가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다 일임해서 놔 버린다 이거죠.
전자에 선지식들께서는 끊으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요즘은, 배우는 사람에게 끊어 버린다 하는 소리가 아주 극적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끊는 게 아니라 안으로 넣어서 굴려라 이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끊으려고 10년 20년 애써도 끊어집니까? 우리가 수시로 생각나고 수시로 행하게 되는 거를 끊으려고 하니 그게 끊어집니까? 그렇게 끊으라고 하니까 그걸로 안단 말입니다. 우리 생활하는 데 생각나는 거를 망상이라고 해서 그걸 끊으라고 하는 것이 자극적인 말이 돼 버리고 말았죠.
그래서 안으로 놔 버려라, 안으로 돌려서 놓으라고 하면은 되는데 끊으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하나는 자극적인 말이요, 하나는 유하게 돌아가는, 리듬을 타고 그냥 놔 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걸 끊으려고 해서는 도저히 부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망상을 끊고, 일일이 생각나는 걸 끊고 부처를 이루겠습니까? 그러니 일어나는 마음으로 하여금 공부의 재료로 삼아서 부처를 이루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이해가 안 가는 거는 이해가 안 가는 대로 주인공에 놔 버려서 일임해야 하고, 또 아는 거는 아는 것대로 행을 하되 그것도 함이 없이 해야 하는 겁니다. 그것도 주인공이 하는 거니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거죠. 주인공이 이날까지 해왔고 이날까지 같이 돌아갔는데 그걸 모르니깐 그자리를 발견하라고 일러주는 거 뿐입니다. 길을 일러 드리는 거죠.
그래서 조금 공부를 해나가다 보면 마음의 요동이 없어지고 그대로가 무심한 상태가 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나침반을 가지고서 리듬을 타고 높은 거는 낮게 하고 아래 거는 높이고 이렇게 해서 한 군데로 다 놔 버리는 상태니까, 믿고 일임하는 상태니까 그대로 무심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모든 전체가 다 무심한 상태이기 때문에 행하면 그대로 법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또 거기에다 왜곡을 해서 ‘아! 무심한 상태로 만들어야지.’ 이런다면 그건 이미 무심한 상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대로가 무심한 상태입니다. 육신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말도 영원한 게 아닙니다. 생각하는 것도 영원한 게 아닙니다. 즉 말하자면, 움죽거리는 그 모두가 전부 허망한 겁니다. 순간순간 변하는데 아예 바뀌는 때가 있거든요. 이 몸이 바뀌는 때가 있죠? 그러니까 이것 바뀐다 안 바뀐다는 말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부가 공했단 말입니다. 그랬으니 하나도 한 것이 없으면서도 함이 없이 그냥 하고 있다 이겁니다. 허탈한 것도 그 자리, 즐거운 것도 그 자리라는 것을 알고 한군데로 모으는 작업을 실천해 나가기 바랍니다.


마음에너지 활용하려면…

스님, 새해에도 법희가 충만한 자비의 가르침 모든 이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내려주시길 발원합니다. 스님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어두운 사바세계에서 하루하루,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저를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저희 식솔들을 마음법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 안의 무한광대한 에너지를 마음껏 활용하면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라고 하시는데, 제가 생각해 볼 때는 제가 하는 일에서마저 제대로 꺼내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미년 새해에는 내 안의 충만한 마음의 에너지를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 법에 대해서 내가 더 말을 안 해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거와 일체 만물이 사는 거와 고정됨이 없이 찰나에 나투면서 돌아가는 그 모두를 봤을 때 일체가 내 생명 아님이 없고 내 살림 아님이 없고, 내 아픔 아님이 없고 내 몸 아님이 없는 까닭에 더 이상 불법(佛法)이 이러니 저러니 얘기할 것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하니까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또 그렇게 생각하시게 되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죠.
말을 하는 순간 전자와 전자가 한데 합쳐서 작용을 하면서 불이 들어오는 거와 같이, 여러분의 마음과 내 마음, 일체제불의 마음이 통틀어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그 자체를 아신다면, 그 일심조차도 공(空)해서 이 세상이, 우주 법계가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지만 내 마음 밖에서 찾는 것은 공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운전수가 차를 끌고 다니지 차가 운전수 끌고 다니는 것 보셨습니까? 운전수는 중심을 잡고서, 위로는 기름을 넣고 아래로는 차를 끌고 다닙니다. 이게 바로 중용이며 중심입니다. 우주의 근본도 인간의 마음의 근본에 있고, 이 세상 모든 살림살이도 다 내 마음에 가설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공생 공심 공용 공체 공식화하고 그대로 여여하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지수화풍을 바탕으로 해서 광력이나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 모두가 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 자체를 알지 못하고는 남의 마음도 모릅니다. 입력이 돼서 자꾸 현실로 나오는 거를 나오는 데다 다시 맡겨놓는 것이 재입력하는 것입니다. 앞서 입력된 거를, 녹음했던 것을 다시 다른 것으로 녹음한다면 앞서의 녹음됐던 것이 무산돼 버리죠. 그와 같은 겁니다, 우리의 마음을 작용하는 것도.
도둑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난다거나 사기를 치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스려서 그러지 않도록 다시 그 자리에다가 놓는 겁니다, 맡겨놓는 겁니다. 선행을 할 때는 선행을 하는 대로 감사하게, ‘선행하게 해서 감사하구나!’ 하고 거기 또 놔야 합니다. 그렇게 양면을 다 놓으면서 믿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구한다면 아주 진실하게 깨달음의 소식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신계의 50%와 물질계의 50% 양면이 작용이 돼야 에너지가 나온다는 얘깁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아무리 물질계의 50%에서 지금,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모든 거를 다 충족시키려고 해도 그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50%가 마저 같이 작용을 해야만이 에너지는 충족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뭐 삼재가 들었다 뭐가 들었다 이거는 혼란이 많이 오는데, 어떠한 애고가 왔든지 이사를 잘못 간다는 문제까지도,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모든 것은 내 한마음에 달려 있으니까 주인공에다 맡겨놓고 그저 내 가고 싶은 날 이사 가면 되고, 삼재가 들었다 하면은 삼재가 들었다는 것도 관습입니다. 관습에 의해서 모든 점을 그르치는 일들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잘못돼서 들어오게 되면, ‘잘못되는 것도 내 주인공에서 나온 거니까….’ 나로 인해서 온 거 아닙니까? 하여튼 내가 없다면 부딪칠 것도 없으니까 내가 있는 반면에 오는 거니까, ‘바로 내 안에서 나온 거니 내 안에서 해결을 할 수 있다.’ 하는 그 믿음과 물러서지 않는 진실을 가지고 맡겨 놓는다면, 나를 발견하고 실험하기에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재료로 알고, 내가 괴로운 데서 괴로운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만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실험을 함으로써 체험이 되고, 체험을 함으로써 그 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천도를 해야 하는 이유?

며칠 전에 선원에서 행하는 새해맞이 촛불재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을 위해서 해마다 거행하는 행사였지만, 올해는 더욱 더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내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나뿐만 아니라 일체 조상님들과 더불어 이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공부가 부족하고 업장이 두터워서 마음으로는 느껴지고 감응은 되지만, 우리가 숨이 다해 죽게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에 천도를 꼭 해야 하는 것이며, 살아 생전에 어떻게 공부를 해야만 자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깁니다.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이나 법을 설하시면서 한 사람을 만나면 한 사람에게 가르쳐주시고 두 사람을 만나면 그 두 사람을 위해서 함이 없이 설법을 하셨는데, 그렇게 설법을 하시고 행으로 보여주셨고, 말로 가르쳐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착이 조잘이 조잘이 붙어가지고는 사대가 흩어져서 원점으로 돌아가니깐 한 발짝도 딛지 못하겠다 하는 겁니다. 살아 있을 때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도리를 몰라서 재산에 집착하던 습이나 자식들에게 가지는 집착이 잔뜩 있으니까 욕심을 내 몸뚱이보다 더 크게 가지고 있으니까 친척집으로 자식들 집으로 친구 집으로 그냥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도재를 하는 방편이 생긴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가 사대로 흩어져서 없어지면 자기의 고 덩어리가 인과로서 맺어진 인연들이 전부 화해서 큰 곤충으로 변하고 또 인간의 인연을 맺은 인과는 그냥 머리를 풀어 산발하고 전부 늘비하게 늘어있으니, 그림자처럼 자기를 쫓아다니니까 어찌 한 발짝인들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요게 첫째 대목입니다.
둘째는, 여러분이 만날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하고 반야심경 독경하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깐 천도가 이래서 생겼구나 하는 거를 느낄 수 있는 겁니다. 나도 전에 어렸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죠. 왜 만날 음식을 괴어 놓고 염불하고 잔뜩 벌려놓고 그러나 그랬더니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런 생각이 납디다. 아, 그걸 눈으로 보고 만날 가지 않습니까? 글쎄요, 모두 몸뚱이가 있는 줄 알고요, 살아서 생전에처럼 몸뚱이가 있는 줄 알고 강에 가서 배 올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강을 건너가려고 배 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글쎄. 그 도리를 잘 모르는 영혼들이 말입니다.
그러니 5백 생을 기다린들 그 배가 오겠습니까? 자기가 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은 한생각 끄덕이면 한찰나에 건너갈 수 있고, 내 마음이 공했는데 강이 어디 있으며 건너갈 거는 어디 있겠습니까? 건너간다는 말은 어디 할 게 있습니까마는 건너가기 위해서 배를 기다리고 영혼들이 그렇게 죽 섰다니 말이 됩니까? 아, 그렇게 배 올 때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영혼들이 어떻게 건너갑니까? 자기가 몸이 없다는 것을 알면 빠져 죽을 것도 없고 그럴 텐데 빠져 죽을까봐 건너갈 수도 없죠, 참 묘한 도리입니다. 여러분의 한생각이 자기를 홀랑 벗겨 놓을 수도 있고 홀랑 씌워 놓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참, 그러니까 만물의 영장이죠.
그러고 세번째는, 불 속에 들어가면 타 죽을까봐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에, 타 죽을까봐 불바퀴 소용돌이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뛰어넘지 못한다 이겁니다. 자기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마음은 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몸이 있는 줄 알고 타 죽을까봐 애쓰는 그 점을 좀더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모두 늘비하게 인과 법칙으로 인해서 악업 선업을 자기가 만들어 놓고 자기가 거기를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일 단계와, 또 물에 빠져 죽을까봐 못 가는 이 단계와 타 죽을까봐 못 넘어가는 삼 단계, 단계 없는 단계가 내 한생각을 돌리면은 그만큼 일 단계도 없고 이 단계도 없고 삼 단계도 없건만 그렇게 해 가지고서 자기가 자기를 이끌어갈 수 없는, 영원토록 세세생생에 끄달리는 그런 고 덩어리를 짊어진 채 그저 만날 쳇바퀴 돌듯 해야 하는 그런 인생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살아서 그 도리를 모른다면 죽어서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공부한다고 하면서 진짜 행을 안 하고 실험을 안 하고 체험을 안 한다면 생활 속에 부처가 있다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여러분이 잘 아셔야만이 한생각에 우주 법계를 두루 할 수 있는 그런 눈이 될 것이요 귀가 될 것이요, 한마음으로 전부 두루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도리를 모르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을 위해서 백종이나 촛불재를 할 때 마음을 모아서 모두가 한자리하도록 정성스럽게 지낸다면 위로는 묵은 빚을 갚고 아래로는 빛을 줄 수 있는 그런 자손들이 되시는 겁니다.
2003-02-12
 
 
   
   
20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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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