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인연맺게 이끌어준 스님
논리적·당당한 자세 내게 영향

내가 처음 절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어머님 때문이다. 사실 나는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중학교 시절에 일요일엔 거의 교회에서 사는 골수 기독교인이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 대부분의 불자(佛子)들처럼 절에 열심히 다니시면서도 점 집에서 점을 보셨다. 어렸을때 나는 그런 어머니와 또 어머님이 믿는 불교를 그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거부감같은 것도 있었고…. 한번은 어머니께서 점을 보고 오시더니 내 명(命)이 짧다고 하시며, 절에 이름을 팔아야 한단다. 며칠을 완강히 버티던 나는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겨 결국 서울 강남 삼성동의 봉은사엘 갔다. 거기서 지금 나의 은사 스님을 만났고 이름도 팔았다(그때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 줄도 몰랐지만)… 또 스님과의 약속으로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절에 오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일요일 오전에는 교회에 가고 오후엔 절에 가는 이상한 생활을 한참 했다. 당시 어린 나에게 교회는 재미 있었지만 절에 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렇게 절이 싫다는 생각을 오래 했었으면 나는 출가(出家)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런 나에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불교에 심취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분이 목주스님이시다.
내 기억으로 스님은 그때 봉은사에서 제일 나이가 어린 스님이었다. 학원 공부에 절 일에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님은 절에 오면 항상 재미없어 하고 긴장하고 있는 나를 위해 재밌는 얘기며 절 곳곳을 구경도 시켜 주셨다. 또 집에 올 땐 항상 차비도 주셨다. 어린 내게 어쩌면 이것이 제일 중요했었는 지도 모르겠다. (웃음) 그렇게 나는 절에서의 시간을 스님 덕분에 재밌게 보냈다. 스님을 못 뵌지 오래됐지만 지금도 내 마음에는 천진하고 자상한 스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스님은 나를 불교로 이끌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강력하게 불교 공부를 권했던 분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출가하고 수행자 흉내를 내는 것은 모두 스님 덕분일 것이다. 스님은 내게 불교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인도(印度)를 알고 공부하는 것은 필수라며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추천해 주셨고 그렇게 되었다.
스님과 나는 승랍(僧臘)은 은사와 제자뻘이지만 학교는 1년 선후배 사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렇게 학교를 다니면서 목주스님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스님이 평소엔 웃음과 농담으로 얘기하다가 중요한 순간엔 매우 논리적이고 당당한 자세로 설득하며 토론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그때는 어찌도 그렇게 멋있게 보이던지 나도 출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했다.
내가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스님은 봉은사에서 중·고등부 학생회 지도법사를 맡으셨다. 그때 스님의 권유로 나는 지도교사를 했었다. 스님은 기존의 형식적인 법회에서 벗어나자며 대단히 능동적이고 파격적인 법회를 운영하고자 했다. 그 첫번째 작업으로 학생회 자체의 이름을 ‘보디삿트바의 모임’이라고 지으셨다. 대개 학생회 법회는 절 이름 뒤에 붙여 그냥 쓰는게 일반적이었다. 또 지금은 범어(梵語)를 쓰는 것이 많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보살’이란 말은 원래 범어로 ‘보디삿트바 (Boddhisattva)’다. 이것을 중국에서 보리살타(菩提薩陀)로 쓰게 되었고, 줄여서 ‘보살’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살은 수행하는 모든 이를 총칭해서 쓰는 말인데, 사실 그때만 해도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절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지칭하거나 점 집 주인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스님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바른 불교의 모습을 전해야 한다며 그런 이름을 지으신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도 그저 웃기만 했지만 나중엔 다들 자부심도 갖고 불교의 바른 모습에 조금씩 가까이 가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아이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보디삿트바`라는 이름이 제일 기억에 남는단다. 나는 그때 스님에게서 받은 영향으로 지금도 아이들에게 불교 용어부터 바르게 설명하고 법회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상당히 효과가 있다. 또 아이들에겐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법회를 진행하라는 스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언제나 자신있고 재미있게 우리를 감동시켰던 스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민이 많았던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어떤 법회가 필요한지를 고민해 본다. ■서울 창동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