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속에 장애없이 통하는 세계
자비로운 삶에 대한 염원으로 충만
그 때에 보현보살이 보살들을 위하여 방편을 써서 사자빈신삼매의 경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내용으로써 설명한다.
(1)모든 법계의 티끌속에 부처님과 그 국토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모양 (2)허공계와 같은 모든 불국토에서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여래의 공덕을 찬탄하는 모양 (3)모든 불국토에서 여래가 출현하여 한량없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문을 나타내는 모양 (4)모든 불국토에서 여래가 설법하는 곳에 보살들이 모여있는 모양 (5)모든 털구멍에서 삼세 제불의 몸과 같은 변화한 몸을 나타내어 한순간의 마음에 법계를 가득 채우는 모양 (6)위신력에 의해 한 몸이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나타나는 모양 (7)모든 경계 가운데 삼세 제불의 신통변화를 나타나게 하는 모양 (8)모든 국토의 티끌 속에 삼세 제불 세계의 티끌 수와 같은 부처님의 갖가지 신통변화를 한량없는 세월 동안 나타내는 모양 (9)모든 털구멍에서 삼세 제불의 큰 서원의 음성이 울리도록 해서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보살이 출생하도록 하는 모양 (10)부처님의 사자좌의 크기는 법계와 같고 깨달음의 도량[菩提道場]의 장엄은 보살들의 설법회와 같아서 차별이 없는데, 그러한 사자좌에서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여러 가지 미묘한 법륜을 굴리는 모양.
열가지의 설명을 통해서 우선 느끼게 되는 것은 일체의 세계가 서로 융통무애해서 모든 세계가 그대로 하나의 진실한 세계[一眞法界]라고 하는 점이다. 물론 법계에는 한량없는 세계가 있어서 차별이 있지만, 다양한 차별이 있는 가운데서도 아무런 장애가 없이 서로 두루 널리 통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모든 존재가 그대로 부처님이고 또한 그 세계이며,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가 그대로 보살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많고(多) 적음(少)의 세계, 크고(大) 작음(小)의 세계, 시간적인 길고(長) 짧음(短)의 세계와 공간적인 넓고(廣) 좁음(狹)의 세계가 그대로 융통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원융무애한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요, 일즉일체 일체즉일(一卽一切 一切卽一)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또 한 가지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일체의 세계에 부처님이 계시고, 일체의 시간과 장소에서 끊임없이 신통변화를 일으켜 중생을 구제하고 있으며, 그 주위에는 항상 보살들이 모여 있는 점이다. 부처님은 항상 자비의 서원을 가지고 그들에게 진실한 법을 설하여 보살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세계가 부처님 세계이고, 항상 자비로운 부처님의 생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시간적으로는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닌 지금, 환경적으로는 다른 곳이 아닌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이 몸을 가지고 부처님의 생명을 발휘하여 부처님 모습을 짓고 부처님 행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자빈신삼매는 부처님의 마음[정신]의 경지이다. 그 경계는 일체의 진실을 밝히는 밝은 지혜의 경계이면서 또한 일체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자비의 경계이지만, 그 명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삼매는 대자비를 대표적인 특징으로 삼는다. 그렇기 에 대승정신을 선양하려고 하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보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서 나아가야 할 부처님 깨달음의 마음의 경지를 이 삼매로써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자빈신삼매의 원어는 ‘사자가 포효하면서 기운뻗음이라고 이름하는 삼매’인데, 이것은 오로지 일체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커다란 자비를 나타내는 정신통일의 경지이다. 어디에도 두려워하거나 구애됨이 없이 백수의 왕인 사자와 같이 용맹스럽게 중생들을 구제하려는 것이다. 성문의 전통에 구애되어 출가주의를 고집하여 현실세계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고요한 경계만을 좋아하고 진리연구에만 머무르면서 개인 수행에만 전념하고 있는 자들을 일깨워서 세상을 구원하는 보살의 자비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고자 하는 염원으로 충만한 경지이다. 부처님이란 바로 이러한 염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현실세계 속에서 자비의 생명을 실현하는 분이며, 이러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불교라고 하는 자각 아래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대승불교의 이념을 사자빈신삼매라고 하는 용어로써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입법계품에서 ‘세존이 모든 보살들을 여래의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게 하려고 미간백호로부터 큰 광명을 놓는다’고 한 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자기자신의 마음 속에서 부처님의 사자빈신삼매를 느끼고 그것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경계를 단순히 지식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해서 체득(體得)하게 하는 요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