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다가도 명절 전후만 되면 다투는 부부들을 선재는 흔히 본다. 싸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명절이란 남편들만의 잔치이고 아내들은 그저 잔치 뒷바라지에 등골이 휜다는 것이다. 그나마 세상이 변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마 이번 설에도 이러한 명절 후유증으로 다투는 부부가 제법 많으리라. 선재가 보기에 이것은 ‘자기 자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유독 명절 때면 두드러지는 ‘남자의 자리’와 ‘여자의 자리’. 하지만 자리라는 것이 어디 고정된 것이겠는가?
부부는 인연이라고들 한다. 화엄에서는 세상의 인과가 어떻게 생겨나는가를 설명하면서 ‘인(因)’에 결과를 만들어낼 힘이 있느냐, 없느냐 등에 따라 여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인을 두 가지 성격으로 나누고 각각에 대해, 인에 힘이 있고 ‘연(緣)’을 기다리지 않는 경우, 인에 힘이 있지만 연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 인에 힘이 없어서 연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로 설명하는 것이다. 인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 세계의 사람 관계를 탁월하게 설명했다고 선재는 생각한다.
사실 말로는 인이니 연이니 구별하지만 인과 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이 되고 연이 된다. 내가 결과를 만들어낼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연의 도움을 받아 결과를 만들어낸다. 내가 힘이 있으면 힘이 없는 쪽으로 나의 힘을 밀어준다. 인과 연을 나눌 수 없을 만큼 긴밀한 인연 관계, 어째 부부 사이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과연 명절에 남편들은 어떤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일까.
한쪽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방바닥에 등 대고 누워있는 것은 ‘지아비’의 특권이라기보다는 ‘검은 머리 파 뿌리’ 약속을 순식간에 날려 버리며 인연을 끊겠다는 선언과 다를 것이 없다.
명절이 다 끝나고 나서야 수고했다며 몸져누운 아내의 팔 다리를 주무르기 보다는 미리미리 힘을 보태주어 서로가 서로에게 수고의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인연으로 만난 부부의 할 일이 아닐까?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