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장사 창건…눈부신 도심 포교
좋은 절 좋은 불자 가꾸기 헌신
퇴휴스님이 개원 한 법장사는 올해로 12살이 되었다. 법장사는 생활(生活)불교, 실천(實踐)불교, 대중(大衆)불교의 기치를 들고 그동안 대단한 양적, 질적 발전을 이루어냈다. 양적인 면에서 보자면 창동역 앞 20여평의 건물 귀퉁이작은 공간에서 시작하여 2년만에 중계동의 요지에 위치한 건물에 200여평을 분양받아 확장 이전했고, 다시 7년만에 중랑구 신내동 아파트 단지내에 300여평의 종교부지를 확보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또한 주변의 여러 곳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10여년 만에 이루어낸 포교의 성과다.
또 질적인 면으로도 대단하다. 도심포교당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인 교육에 중점을 두고 영산불교대학을 운영하여 일년에 두 기수씩 지금까지 25기 정도를 배출했고, 어린이회, 학생회, 청년회. 거사회, 신도회등의 조직과 불교대 동창회, 각 지역의 법등법회등의 신행모임을 갖추어 기도와 수행, 포교와 교육의 역할을 모두 감당해 내고 있다.
또한 스님은 지역 포교의 필요가 있는 곳에는 항상 그 역량을 보여준다. 도봉경찰서 경승실장, 57사단 향승위원장등을 맡아 원만하게 소임을 보았다. 모두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도 퇴휴스님 덕분(?)에 스님 뒤에서 경승실, 향승위원회의 총무 소임을 맡았었다. 그리고 많이 배웠고…
이런 것을 종합해보면 스님 포교당의 사업 규모와 내용이 가히 본사(本寺)급이라고 할 수 있다. 법장사의 이러한 성장까지 스님의 노력은 참으로 대단했을 것이다. 특히 개원 당시의 어려움은 직접 포교당을 운영해 보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그만 포교당을 운영하는 나도 안내전단 배포, 절을 절답게 꾸미기 위한 여러 편의시설 설치등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데 지금 법장사의 규모를 보면 그 어려움이 상상이 간다.
가끔 스님과 만나 절의 여러 문제와 운영등에 관한 담소를 나누며 지난 날의 어려움을 이겨낸 이야기를 듣는데 기억에 황벽희운(黃檗希運)선사의 매화꽃 이야기가 있다.
“매화꽃은 여러 가지의 꽃 가운데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며,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워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매화는 영하 20도 이하의 강추위를 이겨내고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낸다. 그리하여 이른 봄에 화사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뿜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렇듯이 모든 영광과 기쁨 뒤에는 반드시 수 많은 인고(忍苦)의 시간이 있었음을 알아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에게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불법을 전등(傳燈)하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란다. 전등이란 말은 법의, 진리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전한다는 의미이다.
퇴휴스님은 이런 이야기를 신도들에게도 항상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정진하자고 말한다. 오히려 희망과 진리의 등불이 꺼질 것을 두려워 하자고 한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밝은 미래를 함께 하자고 강조한다. 그리고는 몸소 모범이 된다. 또한 매사에 자신감을 갖고 일한다. 그럴 때 스님의 목소리는 사자후(獅子吼)에 다름 아니다. 얼마나 힘찬지 그런 이야기를 듣던 우리 절 신도들은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그것은 자신감이고 신념이다.
지금까지 포교당에 살면서 느낀 점이라고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스님의 말처럼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이다. 이런 고통의 아픔이 밑거름이 되어 다른 어느곳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행생활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음을 새삼 느낀다. 욕심낼 필요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지길 발원할 뿐이다. 훌륭한 불자가 되기 보다는, 또 훌륭한 절이 되기 보다는 좋은 불자, 좋은 절을 가꾸고 싶다. 나는 이러한 작은 소망을 오늘도 퇴휴스님에게서 배운다.
■서울 창동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