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면 ‘불우이웃’을 돕자는 캠페인이 벌어진다. 선재는 ‘불우이웃’이라는 말이 늘 찜찜했다. 왠지 ‘멀쩡한’ 내가 ‘불우한’ 이웃을 도움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몇 년 전부터는 ‘희망 이웃돕기 캠페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결 어감이 부드럽다. 어감만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ARS나 동전 모금함 등 자발적으로 기부를 유도하는 방식도 퍽 세련되었다. 그렇게 해서 가슴에 달고 다니는 ‘사랑의 열매’는 또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선재는 문득 주변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중사업으로 추진하는 모금과 배분 사업에, 지난해 사상 최악의 수해 때 사상 최고액인 1천 3백억원에 달하는 수재의연금이 접수되었고, 이번 연말 ‘희망 이웃돕기 캠페인’에는 12월까지 20억원이 넘는 모금액이 모였다고 한다. 그 중에 불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담겨있을까?
‘지금 잠시 힘든’ 누군가를 돕는 일은 그들이 불우해서도 아니고 내가 여유로워서도 아니어야 한다고 선재는 생각한다. 업(業)에는 나의 개인적인 업 이외에도 공업(共業)이 있다. 흔히 공업은 기세간(器世間)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국토나 자연환경 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공업은 단순히 자연환경과 기세간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기세간에 어디 사물만 있겠는가.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 역시 기세간이고 나의 주변환경이 아닌가 말이다. 누군가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나의 공업의 결과이고, 누군가가 힘든 환경에 살아도 나의 공업의 결과이다. 그러니 내가 ‘사랑의 열매’ 하나 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업장을 소멸하는 일이다.
‘사랑의 열매’. 세 개의 열매는 나, 가족, 이웃을 뜻한다고 한다. 지난 연말연시에 나의 공업장은 얼마나 소멸되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기세간이 청정하게 되었는지 잠시 가슴에 손을 올려볼 일이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