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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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공예(6)
경주의 중심, 더 나아가 신라의 중심을 상징하는 황룡사. 강당의 북쪽에서 출토된 조각들을 맞추어보니 높이가 182㎝나 되는 치미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치미가 이만하니 그 강당이 얼마나 컸겠는가? 치미(?尾)란 신화로 전하는 치(?)라는 새의 꼬리이다. 황룡사 치미를 보면 안쪽으로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가운데 바깥부분에는 꼬리털이 새겨져 있다. 이 치미는 용마루 양끝에 건물의 표정을 잡아주기도 하고 건물의 위세를 드러내주기도 한다. 그러나 치미는 단순히 이러한 미학적인 고려에서 세운 것은 아니다. 치가 화재를 막는다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에 취약한 목조건축에서 치의 상징적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황룡사 치미를 보면 늘 흥미로운 의문에 휩싸인다. 겉에 노인들의 얼굴과 연화무늬를 두드러지게 새겼는데, 토우를 빚듯이 거칠게 손가락으로 주물럭거려 표현한 것이다. 그것도 해학적으로. 신라에서 가장 큰 사찰의 건물 꼭대기에 설치된 치미의 무늬를 왜 세련되고 정교하게 다듬지 않고 손가락으로 거칠게 주물럭거려 만든 것일까? 치미가 큰 건물의 꼭대기에 있어 밑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잘 잡히지 않으니 와공들이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장난기를 발동시킨 것일까? 아니면 솜씨가 떨어진 와공의 작품인가? 이보다는 오히려 질박한 표현을 좋아한 신라인의 취향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얼마나 토우식의 질박한 표현을 좋아했으면 지붕의 꼭대기에까지 그것을 표출한 것일까? 신라토우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신라인들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의문이 해소될 것이다. 왕릉 급이나 귀족 계층의 무덤에서도 질박한 토우나 토우로 장식한 잘 생긴 토기가 출토되는 나라가 신라이다. 토속미는 하류계층, 세련미는 상류계층과 같은 도식적인 분석은 적어도 이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삼국 가운데 신라만큼 토속성이 짙게 배인 문화를 가꾼 나라가 없고 신라만큼 국제적인 열망을 보인 나라도 없었다. 신라인은 강한 토속문화의 기반 위에 세계문화를 받아들였다.
괴테는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장 토속적인 문화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이다. 괴테의 논리를 신라문화에 적용하면, 국제적인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꾀한 문화가 신라문화인 것이다. 신라미술에는 두 종류의 미의식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토우와 같이 토속미가 짙게 배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마도와 같이 외래적인 미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두 미의식은 양극단에 서서 대조를 이루기도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그만큼 외래적인 세련미 못지 않게 전통적인 토속미도 더불어 애호한 민족이 신라인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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