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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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답게 사는 사람을 섬겨라
탐욕 ·애착 벗고 마음 안정된 사람
사랑·존경하며 걸림없이 살아야

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이란 살아 숨쉬는 한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 존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아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욕망의 지속을 의미한다. 욕망을 버리고 맑고 향기롭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까지도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처님은 욕망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욕망을 소멸시키는 것이 최고라는 말씀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세상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사는 것이 최선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무쌍한 세상이기에 우리들이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사이 무가치한 것으로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의 도래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도 한다.
이러한 점은 비단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부처님 당시에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울사가라라는 청년이 부처님을 찾아와 잘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에도 부처님은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선지식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의 성인인 공자님도 사람을 섬기는 문제에 대해 한 말씀 남기고 있다. <논어>에 의하면 제자가 귀신 섬기는 것에 대해 공자님의 의견을 물었을 때, 사람도 섬기지 못하거늘 하물며 귀신을 섬기느냐고 책망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이기에 사람을 섬기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잡아함경> 제11: 280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선 사람을 섬기되 법답게 사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코살라국의 나가라빈다 성에 계실 때 성안에 거주하던 장자들을 위한 설법에서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섬기지 말아야 하느냐?’고 물으면 ‘눈으로 사물을 보고 탐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이 법답지 못한 사문과 바라문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하라. 또한 어떤 사람이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공경하고 섬겨야 하느냐?’고 물으면 ‘눈으로 사물을 보고 탐욕심을 내지 않으며 애착을 벗어나 그 마음이 안정되어 법답게 행동하는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대답하라.” 이러한 설법을 들은 성안의 장자들은 “훌륭하십니다, 부처님. 자신을 칭찬하지도 않고 남을 헐뜯지도 않으면서 바른 뜻을 말씀하셨나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시고 닫혀 있는 것을 열어주시며, 헤메는 사람에게 길을 보여 주시며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밝혔습니다”고 칭찬했다.
장자란 지금으로 말하자면 재벌의 총수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당시 인도가 아무리 계급사회였다고 하지만 역시 돈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지도층이 되어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장자들의 모임에서 부처님을 초빙하여 섬길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은 어떠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인도 사회에서 사문이나 바라문은 가장 존경 받는 사회적 위치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도자란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물은 것이 된다. 한편으론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던 부처님의 됨됨이를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러나 대답을 듣고 나자 장자들은 진심으로 부처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자신을 내세우고자 남을 폄하하지도 않았으며, 법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법답게 사는 것을 ‘사물을 보고 탐욕심을 일으키지 않고, 애착을 벗어나 마음이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구나 출가하여 진리를 찾는 수행자나 바라문에게 이러한 문제는 핵심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탐욕과 애착을 벗어나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불교에선 무소유라 말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다. 철학적으로는 대상과 주체 어느 것에도 애착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잡아함경> 제35: 973경에서는 출가하여 부처님의 문하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움을 끊기 위해서”라 말한다. 이 세 가지를 끊어버리면 자신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으며, 현세와 내세에서 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즐겁고 기쁘며, 타는 듯한 갈등과 분노에서 벗어나 스스로 깨닫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답게 산다는 것은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만 요구되는 사항은 아니다. 세속에 살더라도 남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되, 걸림없이 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누군가의 존경과 섬김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주변 가까이에 섬기며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면 그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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