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나타내는 정신통일 경지 시공초월 구제하는 생명의 세계
입법계품은 세존께서 사위성의 서다림(逝多林)에 있는 기수급고독원의 대장엄중각 강당에서 보현·문수 등 오백 인의 보살과 오백 인의 성문들과 그리고 무량한 여러 세상들의 주인 및 권속들과 함께 하시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 모인 대중들이 모두 부처님의 경계·지혜로운 행·힘·삼매·머무시는 처소·몸·지혜는 모든 세간의 사람들이 알 수가 없고, 중생들에게 알게 할 수도 없으나 오직 부처님의 힘·선지식들이 거두어주는 힘·청정한 믿음의 힘·깨달음을 향한 청정한 마음의 힘·광대한 서원의 힘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과 모든 중생들의 여러 가지 욕망·이해·지혜·머무는 처지·마음의 경계·여래의 공덕을 의지함·설법을 들음 등에 따라서 부처님께서 옛날에 온갖 지혜를 구하시던 마음으로부터 여러 가지 수행하시던 인연 그리고 깨달음을 이루시고, 묘한 법륜을 굴리며, 불국토를 청정케 하시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모든 부처님의 형상을 나타내어 보이시는 등의 여러 가지 법을 모두 설하여 주셨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큰 자비심으로 곧 사자빈신삼매(獅子頻伸三昧·60권 화엄경에는 사자분신삼매 獅子奮迅三昧)에 드신다. 그러자 세간이 모두 깨끗하게 장엄되고, 대장엄누각이 갑자기 한없이 넓어지며, 모든 곳이 여러 보배로 훌륭하게 장식된다. 또한 부처님의 신통으로 서다림이 홀연히 커져서 불가설불찰미진수 세계의 국토들과 면적이 같게 되었는데, 그 모든 세계 또한 여러 가지 내용과 모습으로 훌륭하게 장엄돼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장엄들은 여래의 선근·위신력·여래가 한 몸으로 자재하게 변화하여 모든 세계에 두루하는 것·여래가 신통한 힘으로써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 국토의 장엄을 그 몸에 들어오게 함·여래가 한 티끌 속에 모든 법계의 영상(影像)을 나타냄 등이 부사의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렇게 부처님 국토가 청정하게 장엄한 것을 보는 것은 서다림의 급고독원뿐만이 아니다. 시방의 온 법계, 허공계에 가득한 모든 세계에서도 이와 같은 장엄을 볼 수가 있었다.
이 때에 시방으로 각각 미진수 세계를 지나가서 있는 세계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있던 보살이 각각 미진수 보살들과 함께 급고독원으로 모여들어 부처님께 정례하고 가부좌하고 앉는다.
이와 같은 광경들은 모두 세존께서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시자 나타난 것들이다.
청정하고 아름답게 장엄된 세계의 광경은 범부 중생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광경이 아니고, 모든 번뇌를 정화한 부처님의 마음에 의해 나타난 광경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환경 세계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는 점에 눈뜨게 된다.
사자분신삼매는 부처님의 커다란 자비를 나타내는 정신통일 경지이다.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자처럼 힘차게 용기를 떨치고 일어나 활동하려고 하는 삼매다. 그리고 입법계품에서 세존께서 이러한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시자 나타나는 부처님의 경계는 청정한 눈에 비쳐진 고요하기만한 그림같은 세계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자비로운 중생구제활동이 계속되고 있는 영원한 대생명의 세계이다.
자비심이 없이 주변세계와 겹겹으로 닫혀져 있는 중생심으로 보는 세계는 모든 것이 서로 대립 차별해서 장애가 있기 때문에 결코 아름다울 수가 없는 세계이다. 그러나 주변세계를 위하고 그것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자비심의 세계는 모든 것이 상호간에 아무런 막힘이나 장애가 없이 융통무애하면서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세계가 되는 것이다. 입법계품에서 부처님께서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시자 모든 세간이 깨끗하게 장엄되고, 대장엄누각이 갑자기 한없이 넓어지며 서다림이 홀연히 커져서 불가설불찰미진수 세계와 같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입법계품에서 부처님 경계와 그것을 실현하는 보살행에 대해 설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알고, 이와 같이 삼매의 경지로써 그것에 답하고 있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부처님의 경계는 본래 언설로써 나타낼 수 없는 경계다. 그러므로 그 경계는 삼매로써 나타낼 수밖에 없는 경계이다. 그리고 수행자가 그 경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다해서 그 경계를 동감하는 삼매의 행을 체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계품에서의 보살행은 여러 가지 삼매에 의해서 설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