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승때 악조건 속 수많은 불사
복지·외국어 관심 ‘끝없는 공부’
흔히 절 집에서 `불사(佛事)한다`고 하면 탑을 세우고 법당 짓는 일이 전부인 줄 안다. 그러나 불사라는 말의 의미는 훨씬 크고 넓다. 사전에는 부처님의 능사(能事)인 교화(敎化)를 지칭하는 말로 여러 가지 일에 의탁(依託)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어 보이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불사는 절 짓는 일 이외에도 점안(點眼), 낙성(落成), 수계(受戒)등의 갖가지 법회와 사경(寫經), 제사등의 의식 진행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그래서 `불사가 잘 되었다`는 말은 부처님의 법(如法)답게 모든 일이 진행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일은 불사가 되는 것인데 자꾸 세우고 짓는 일만 중요시하게 된 것이 지금 우리 불교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현대사회는 물질문명의 부작용과 정신문화의 상실로 폐해가 심각하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여 규모나 시설에서 현대화의 의미를 찾는다면 제대로 된 불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교의 현대화가 아닌 현대사회를 불교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불사가 아닐까? 비록 탑과 법당이 낡고 비좁다 하더라도 언제나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하는 자세에서 진정한 불교의 모습은 보여진다.
이렇게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스님이 있다. 스님을 아는 불자들과 우리 도반들이 스님 이름 앞에 `불사제일(佛事第一)`이란 칭호도 붙여 놓았다. 유마경에 등장하는 부처님의 십대제자(지혜제일 사리불, 신통제일 목련, 두타제일 가섭...)처럼 말이다. 스님은 동국대를 졸업하고 현재 하동 쌍계사에서 교무스님의 소임을 보고 있다. 지문 스님이 바로 그 분인데, 스님에게 불사제일이란 별칭이 붙은 것은 주로 군승시절의 활약(?) 때문이다. 스님은 1992년 경에 강원도 인제 원통 지역의 12사단에 군승으로 재직했다. 이곳은 지금도 그렇지만 워낙 오지이고 주변 환경이 열악해서 포교 활동이 쉽지 않은 곳이다. 스님은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도 재직 기간 동안 병사들이 부대에 배치되기 전에 훈련을 받는 신병교육대에 법당을 신축하고 사단 본부의 법당을 과감히 정리해서 부대 바깥에 2층 법당을 마련했는데, 불사제일이란 그런 외형적 활약에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진하고 이루어내는 내용이 훌륭해서다. 스님은 새로운 법당에 우선 유치원을 개설했다. 그 당시의 유치원 개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일이었고 더구나 군(軍)법당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사람도 많지 않은 지역인데다 몇 안되는 군 불자들로 어떻게 유치원을 유지할까 하는 주변의 걱정에도 스님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며 결국 그 어느 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모범적인 유치원을 만들어 냈다. 지역 불교 포교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스님은 그렇게 어렵고 힘든 불사들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이루어냈다. 짧은 지면을 통해서 자세히 설명 할 수는 없지만, 군인과 민간인이라는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아무 거리감 없이 법회에 동참시키는 모습이라든가 계급이 전부인 부대에서의 행사에도 언제나 스님들의 위의(威依)를 잃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한 점등은 나를 비롯한 다른 군승들에게도 좋은 경험으로 실제 군대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또 스님은 불사를 진행하면서 군인 불자들의 힘으로는 부족한 경제적인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의 성지순례 신행모임과 연계하여 인근 지역의 봉정암이나 낙산사 같은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가는 불자들을 군 법당으로 인도하여 많은 도움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동참한 불자들에겐 성지순례의 환희심에다 열악한 군 불교의 현실을 이해하고 군 불자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보탰다는 보람까지 주었으며, 군 불자들에겐 많은 민간인 신도들의 방문과 보시로 자부심을 갖게 했고, 부대 내에서는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등 그야말로 다목적의 효과를 본 것이다.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던 불사들을 이렇게 이루어낸 스님에게 불사제일이란 별칭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스님은 군시절 뿐 아니라 제대 후에도 끊임없이 배우고 정진한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복지, 노인복지를 공부했고 영어 일어등 외국어 공부를 계속하며 또 다른 불사를 준비하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는다. 얼마 전엔 전국교구본사 교무국장 스님들과 대만의 불광산사(佛光山寺)를 견학하고 오셨단다. 스님은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왔다며 더욱 열심히 정진 해야겠다고 한다. 지문 스님의 다음 불사가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질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계속)
■서울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