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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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계품의 이념(理念) ②
입법계품은 내용 전체가 보현행을 설하는 것이다. 입법계품에서는 부처님을 모시는 보현보살과 문수사리보살을 상수로 하는 500인의 보살마하살들의 경지를 설명하면서 “모두 보현의 행원을 성취하여 경계가 걸림이 없으니 모든 부처의 세계에 두루하기 때문이다”라 하고 있다. 이는 보살마하살들이 모두 보현의 행원을 성취한 이들이란 말이며 궁극적인 보살행이 보현의 행이라는 것과 함께 이를 통해 모든 부처의 세계에 무애자재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현의 행원은 보살마하살들만이 행하는 경계가 아니다. 입법계품에서 “세존의 주위에 운집한 시방의 모든 보살과 그 권속들이 모두 보현보살의 행과 서원 가운데서 나왔다”하고 있는 것 또한 보현행으로써 보살행을 대표하려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선재동자의 구법 이야기이다.
입법계품은 선재의 구법과정을 통하여 입법계의 법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려는 의도로 편찬되었다고 생각된다. 그 입법계의 법이 바로 보현행을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보리심을 발한 후에 보현행을 빨리 원만 성취하는 법을 묻자, 문수보살은 선지식을 찾아가도록 한다.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찾는 수행과정은 보현행의 탐구에 있고, 최후에 보현보살을 만나 그의 설법을 듣고 보현의 행원과 부사의한 해탈경계를 성취하여 마침내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이 입법계품은 대비이타의 대승보살행인 보현행을 주목적(主目的)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화엄경은 부처님에 대해 설한 것이라고 이해해왔지만, 그 근본정신을 살펴보면 보현행이라는 보살의 수행을 설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화엄경은 보살행을 가지고 부처님을 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방세계에 충만한 법신(法身)인 여래의 거룩한 덕은 보살의 삶으로 구현됨으로써 비로소 현실세계 속에서 아름답게 꽃피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현행에서는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믿고 여래의 지혜와 자비에 귀의하는 것이 요청된다. 보살행은 여래의 덕을 실현해가는 것이며, 여래의 덕은 보살행을 수행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귀의(歸依)의 대상이 되는 여래의 덕은 귀의하는 보살에 모두 나타나서 보현행으로 되고, 보살은 보현행을 닦아 여래의 덕에 동참(同參)하여 그것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보현보살은 보현행을 실천함으로써 현실세계에서의 구체적인 여래일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보현행은 부처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보살행이 아니라 부처님을 대신하여 지혜롭고 자비로운 부처님의 덕을 실현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행인 것이다.
보현행에서는 대비이타의 서원(誓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서원은 부처님에 근거를 두고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부처님의 거룩한 덕을 본받아서 일체중생을 위해 살아가려는 서원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원은 행(行)을 일으키고, 행은 서원을 실현시킨다. 이러한 서원에 의해서 현실세계에서의 생활이 정화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삶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보살행이 나오게 된다. 이로써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며, 보살은 서원을 끊임없이 일으켜 보살행을 실천해 나아감으로써 드디어 법계로 들어가게 된다. 입법계품에서 한결같이 보현보살의 덕을 찬탄하고 또한 원행(願行)을 강조하는 것은 보현보살의 원행을 보살행의 모범으로 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보현행을 흔히 보현행원이라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 때문이다.
선재동자의 구법과정이 문수보살에서 시작해서 보현보살에 이르러 마무리되어 깨달음의 세계가 열린다고 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지혜가 뒷받침된 올바른 신앙에 의해 진실의 세계를 확인하고, 그 세계를 실현하려는 여러 가지 보살행을 실천함으로써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입법계품은 반야의 지혜에 의한 보살의 삶을 통해서 깨달음을 구체적으로 실증(實證)해 나아가는 법을 설하는 것이다. 입법계품에서는 깨달음이란 것이 현실세계 속에서 지혜를 바탕으로 한 자비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53인 선지식들이 설하는 법은 소승불교인처럼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법에 대한 해석이 아니고 자각해 수용하고 실천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현실의 중생세계를 떠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야 얻는 해탈 열반을 설한 것도 아니다. 도리어 보현행원을 실천하여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이요, 번뇌를 끊지 않고 현실생활 속에서 열반을 성취하는 것을 설하니 그야말로 부사의한 해탈경계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입법계품에는 소승의 성문불교를 비판하고 대승불교를 선양하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
200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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