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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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이 읊는 평화의 시
빼어난 예술품 청동 은입사 정병
낚시·오리 노니는 풍경 시정 듬뿍

보타락카산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관음보살 곁에는 투명한 유리그릇으로 받친 정병(淨甁)이 놓여 있고 그 정병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 있다. 이는 양류관음도(楊柳觀音圖)에 보이는 정병의 모습이다.
아미타여래는 대세지보살, 관음보살과 함께 극락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왕생자(往生者)를 맞이하는데, 이때 관음보살은 한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가볍게 쥐고 다른 한 손에 정병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다. 이는 아미타불도 가운데 관음보살의 모습이다. 맑은 정화수가 담긴 정병과 버드나무는 관음보살을 상징하는 지물(持物)인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불화뿐만 아니라 실제에도 청동기와 청자로 제작된 정병이 적지 않게 전한다. 그 가운데 청동기로 제작된 청동제은입사정병(국보 92호)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입사(入絲)란 금속 표면에 음각으로 파고 그 안에 금실이나 은실을 넣어 문양을 내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을 사용한 가장 이른 예는 369년 백제의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선사한 칠지도(七支刀)이다. 이 칼 표면에는 금입사(金入絲)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입사기법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유행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정병·향완·합 등 불교공예품에 입사기법이 사용되었다. 특히 고려청자만의 자랑인 삼강기법도 이 입사기법의 자극을 받은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청동제은입사정병은 아담한 몸체에 둥근 어깨를 갖고 있다. 목은 유난히 길게 올라가다가 입술이 좌우로 활짝 피었고, 이와 입 맞춘 뚜껑 역시 긴 대롱을 꼽은 모자처럼 위로 높이 솟았다. 한쪽 어깨에는 짤막한 팔뚝처럼 주둥이를 붙였다. 날씬하게 뻗은 그릇의 형태가 매우 우아하고 세련되었다.
원래 이 정병은 청동색이지만 지금은 연녹색의 녹이 전체를 덮고 있어 오히려 독특한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그 바탕 위에 은실이 명료하게 빛나고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이 산수표현은 회화작품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은 고려전기 회화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렇게 감성적이지도 그렇게 메마르지도 않은 절제된 선으로 물가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그릇의 앞뒤로 늘어져 있고 그 사이에 갈대숲이 점점이 떠있다.
물 위에는 오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하늘에는 기러기가 떼 지어 나르고 있다. 어부는 배를 타거나 물가에서 고기를 낚고 있다. 이처럼 평화로운 풍경에서는 시적인 정취까지 피어난다. 버드나무는 정병과 세트로 병마를 쫓는 상징으로서 정병 위에 버드나무 가지를 꼽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아예 버드나무를 그릇 표면 위에 새겨 넣었다.
또한 굵기가 균일한 몇 가닥의 선으로 산수의 풍경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방식은 당나라나 요나라 벽화에서 보이는 양식을 연상케 한다. 11세기 고려의 정치상황을 감안해 보면, 당보다는 요, 즉 거란의 회화와의 관련성에 더 무게를 둘 수 있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

200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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