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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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충실하게 하루하루 하루살이로 살라
선과 악을 다 놓고 평화스런 자유인이 되어야

여러분하고 새해에 또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더 한층, 새삼스럽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을 해서 잘 굴리고 있는지 한번 더 생각을 잘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잘못된 건 고치고 잘되는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더랍니다. 당시 중국에 있어서는 우리 조선이 소국이었죠. 그런데 중국에서 탄압을 하기 위해서 우리 나라에 의인이 있나 없나를 알아 가지고 오라고 사신을 많이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건너와야 하니까 그때에 우리 나라에서는 마중나가는 사람을 잘 뽑아서 내보내야 했었죠. 이건 국운이 달린 일이라 때에 따라서는 소신껏 하지 않고는 안 되게끔 돼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으로 치면 시라면 시, 또는 군이면 군에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어 봐서, 입이 무겁고 아주 청렴하고 이 마음공부에 정말이지 집념을 가지고 노력을 하는 사람을 뽑았죠. 뽑아서 그 사람을 안내자로 내보냈는데 사신들이 강을 건너자마자 새참으로 떡이 나갔더랍니다. 그래서 모래사장에 가지고 나간 상을 놓고서 떡을 차려 놨는데 그쪽 사신이 거기서부터 시험을 하기 시작해요. 한 번 시험해 보고 자기한테 하치 않게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나라 전체를 그냥 하치 않게 보거든요. 아주 제일 중요한 자리죠. 거기서 안내자로 나간 사람이 시장도 하고 그러니깐 떡을 냉큼 다섯 개를 집어 먹었죠. 그런데 그쪽에서는 떡을 먹다 말고 손가락을 세 개를 척 들면서 아무 말 없이 무언(無言)의 질문을 딱 던지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요, 그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세 개를 먹었느냐?' 하는 줄 알고 ‘난 떡을 다섯 개를 먹었다.' 하고 다섯 손가락을 탁 내밀었단 말입니다. 하하하…. 다섯 개를 탁 내미니까 그쪽에서는 ‘허, 삼강오륜을 그냥 통달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겁니다. 그러고선 가슴이 뜨끔해서 깜짝 놀라면서 또 네모 모양을 그려 보이거든요. 아, 그러니깐 ‘너는 네모반듯한 떡을 먹었느냐?' 이렇게 묻는 줄 알고 또 ‘동그란 떡을 먹었다' 하고선 이렇게 동그라미 모양을 그렸단 말입니다. 하하하…. 얼마나 재밌는 얘깁니까?
그런데 그렇게 한 이유가 어딨느냐 하면 여러분은 알는지 모르겠지만, 육신으로 먼저 태어나고 나중에 정신계의 ‘참나'가, 뿌리가 태어나야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은 어언간에 내면에서 뿌리가 살아난 거예요. 살아나서, 확연히 깨우치진 못했어도 거기서 뜻을 일러 준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그 떡 먹은 걸로 그냥 돌려서 일러 준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퍼뜩퍼뜩 생각을 했지. ‘아, 떡을 반듯한 거 먹었느냐 묻는구나.’ 그러고선 ‘동그란 거 먹었다.’ 그러고 ‘셋을 먹었느냐?’ 하니까 ‘다섯 개를 먹었다.’ 이렇게 한 거죠.
지금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 마음공부를 해서 스스로서 밝아지면 망하게 만들려고 길을 가는 거를 좋은 쪽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흥하게 돌릴 수 있는 거니까 안에서 내가 다스려서 모든 거를 완전하게, 주장자를 만들어놓은 그 자체의 주장자는 자기 몸을 이리로 끌고 가고 저리로 끌고 가고 즉, 악업 선업이 모두 몸 속에 뭉쳐있는 그 자체들이, 악이 나올 땐 자동적으로 녹음이 된다고 했죠. 그래서 자기가 하는 대로 자동적으로 녹음이 돼서 용도에 따라서 차례차례 자동적으로 나오는 거예요. 그거는 피치 못하는 겁니다. 그런 모든 걸 한마음으로서 구성을 해서 작대기가 된 거는, 작대기라는 것은 자기 몸뚱이를 이끌고 가는 겁니다. 마음으로서 그 마음을 먹게 하는 거죠. 그러니깐 그 사람도 그렇게 떡을 먹은 걸로 마음을, 그 사람이 농부이기 때문에 아주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했단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아주 얕보지 못 하게 만들어놨단 말입니다. 그러니깐 중국 사람들이 ‘야! 이렇게 안내하는 사람도 이러하니 저 안은 어찌 감히 말을 물으랴.’ 하고는 떨려서 한 마디도 묻지 못하고 슬슬 돌아다니며 구경만 하곤 갔답니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은, “조선에는 의인들이 많아서 안내하는 사람까지 하늘을 알고 땅을 알고, 삼강오륜을 알고 아주 무불통지했더라.”고 얘기를 하니까 혀끝을 척척 차면서 하는 소리가 “야! 그 나라를 치게 되면은 우리나라가 망해. 그러니까 치지 못하겠구나.” 하더랍니다.
그 뜻을 아십니까? 마음공부 하신 양반들, 항상 법이라는 이름이 따르는 것은 평등 공(平等空)에 우리가, 둘이 아니라는 얘기죠. 생명도 둘이 아니고 모두가 둘이 아니게 돌아간다 하는 평등 공에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니까, 그래서 평등 공에서 나오는 법은, 즉 말하자면 방망이가 오면 철퇴가 들어간다는 얘기입니다. 그 뜻을 아시겠습니까? 이 무궁무진한 법을 우리는 몸 떨어지기 전에 잘 알아서 행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만한 것 하나도 허술히 듣지 말고 허술히 행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업신여기지도 말고 말입니다.
어떤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도 얘기했습니다만 두 친구가 어느 때 길을 가다가 석존께서 설법하시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부처님의 말씀이 사기라고 생각을 했고, 또 한 친구는 나라마다 전체 왕들을 모아놔도 저렇게 이익하게 말씀 못 하실 거라고 하면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을 했는데, 그러고 기쁘게 생각을 하면서 나도 저런 설법의 뜻을 받아서 이런 도리를 모르는 나라에 가서 좀 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랬는데 웬걸요, 사기라고 생각을 한 그 친구는 그날 술을 잔뜩 먹고, 옛날에는 수레가 백 대씩 막 장으로 나가고 했기 때문에 마차가 많았었죠. 그런데 사기라고 생각한 친구는 술을 먹고 쓰러져 가지곤 장에 나가는 마차에 치여서 바로 죽고, 기쁘게 생각했던 친구는 자기 친구가 죽으니깐 집으로 갈 수가 없어서 물건을 배에 실어 가지고 딴 섬나라로 갔더랍니다. 이런 말은 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오네요.
그렇게 가서는 큰 보따리는 어디다 맡겨놓고 조그마한 보따리를 하나 짊어지고 물건을 팔 양으로 사방을 다 구경을 하고 다니는데, 그 곳에서는 인군이 돌아가셔서 다른 인군을 뽑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나라는 국민이 인군을 뽑는 게 아니고 말이 뽑아요, 말! 인군이 타고 다니던 말이 금으로다가 옷을 해서 척 걸치고선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인군을 뽑는 그런 나라에 간 거죠.
그런데 양쪽으로 사람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슬슬 말이 오더랍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어떻게나 영명한지 떡 오더니만 고개를 돌려서 보따리 낀 사람을 척 보는데, 이쪽을 보고 저쪽을 보고 하더니 다시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오면서 사람들 틈에 낀 그 사람을, 자꾸 사람을 비키게 하더랍니다. 그러고는 자꾸 피하니깐 자꾸 쫓아 들어가요. 쫓아 들어가서 주위에, 그 말을 쫓아오는 사람들이 정승들이나 뭐 이런 사람들이었겠죠. 쫓아오던 그런 분들이 ‘아, 여기 인군 될 분이 있나보다.’고 하면서 사람을 태워도 팽개치고, 또 다른 사람을 태워도 또 팽개치고 하더니 그 보따리 낀 사람을 태우니깐 그때서야 타고 가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그 말을 타고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인군이 되고, 그때에 석존의 설법을 들으면서 생각을 했던 것을 다시 생각을 하면서 ‘아! 여기도 부처님을 모셔다가 설법을 듣게 해야겠구나.’ 해서 부처님을 모셔다 설법을 듣고 그 나라가 왕성해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냥 빼먹기도 하고 말을 합니다. 귀찮으니까, 하하하.
그랬듯이 우리가 마음을 잘 써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까 정락스님이 세 가지 여건을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아주 물러서지 않는 정진력과, 말하자면은 실천력과 화가 나도 내려놓는 힘(力), 그거를 말했죠. 어떠한 살림을 살든지 어떠한 일을 하든지, 운동을 하든지 간에 내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지금 내게 있는 것이지 내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내가 있기 때문에 종교도 있고 상대도 있고, 집안도 있고 부모 자식도 있고, 형제도 있고 친구도 있는 거지 내가 없는데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첫째도 마음이요, 둘째도 마음이요, 셋째도 마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 마음이, 그러고 또 법사스님이 말할 때, 처음에 왈딱 일어날 때에 탁 놔야지 그게 벌어져 가지고 얽히고 설킨 다음에 놓는 것은 놓는 게 아니라 그러셨죠. 여러분한테 어떠한 말씀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이 못 알아들으면은 내가 다시 얘기하려고 오늘은 좀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말도 조심해야 하고 남이 언짢아할지 좋아할지를 미리 알아서 말을 하는 것이, 싸움을 붙이지도 않고 가정도 화목하게 이끌어 갈 수가 있고, 어디든지 아주 효과가 충만해 지죠. 또는 우리가 살아나가려면 어떠한 용도에 따라서 닥치는 일이 한두 건입니까? 한두 건이 아니죠.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애들하고나 얼마나, 찰나찰나 닥쳐오는지, 또 어떤 때는 즐거움도 닥쳐와요. 뭐 어려움만 닥쳐오는 게 아니죠. 그런데 즐거움은 잠시 잠깐이고 어려운 일만 많이 닥치죠. 그러니까 그런 어려움과 즐거움을 다 송두리째, 즐거움은 감사하게 놓고, 어려움은 ‘한마음 속에서 나오는 어려움이니까 어렵지 않게 하는 것도 너밖에 없어.’ 하고 되돌려서 맑은 물로 대치해서 쓰라고 하는 말을 수차에 했을 겁니다, 아마.
그러니까 생활하는 것이 물질세계만이 있는 게 아니라, 정신세계에 즉 말하자면 50%가 대두돼 있다 이겁니다.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정맥 동맥이 같이 돌아가듯, 둘 아니게 돌아가듯 정신계와 물질계가 둘 아니게 같이 돌아가느니만큼 정신계를 무시하지 말고 정신계로 돌아서 현실로, 현실계로 나오는 거니까요. 어차피 그렇게 돌아 나올 거라면 먼저 거기다 넣어서 돌아 나오게 만들어야죠. 용광로에다 헌 쇠를 넣으니까 재생해서 새 걸로 나오지 않습니까? 연탄도 부서진 거를 갖다 넣으면은 재생돼서 새로이 나옵니다. 이런 소리를 방편으로 표현을 해서 안됐지만 하치 못한 방편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방편은 크나 작으나 똑같습니다.
우리가 지금 불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저 부처님한테 숭배만 할 줄 알았지, 그러고 숭배를 합네 하고 이만큼 갖다가, 고(苦)의 덩어리를 그냥 갖다가 집어넣고는 그거를 감해달라고, 우리 남편 잘되고 우리 자식 잘되고, 우리 일가 친척까지도 모두 잘되게 해달라고 그냥 난설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내가 항상 얘기하죠. 제 나무는 제 뿌리를 믿어야 모든 에너지가 흡수돼서 올라간다고요. 그러고 또 가장구나 잎사귀는 무엇을 밑으로 내려보내느냐 하면은 태양열과 공기나 어떠한 에너지도 다 아래로 내려보내고,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해야 물 바퀴가 저절로 돌아가듯이, 샘물이 저절로 돌아서 양식으로 먹을 수가 있어서 푸르르게 살 수 있듯이, 내 나무가 만약에 딴 나무를 믿고 기도를 거기다 하면서 딴 나무에서 에너지가 나올 줄 알고, 도와줄 줄 알고 빌고 기도한다면, 딴 형상한테 빌고 기도한다면, 딴 이름을 믿고 기도하고 빈다면 거기서 에너지를 이리로 보내줄까요? 아닙니다. 반드시 그 나무의 그 뿌리만이 서로 상응하면서 서로 이익을 갖다주고 공덕을 갖다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을 해서 여러분 마음, 육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들어있고 나무에는 이파리들이 헤아릴 수 없이 있습니다. 바깥으로 눈으로 보이게 잎사귀들이, 향나무 같은 거는 헤아릴 수도 없어요. 헤아릴 수 없는 잎새와 우리네 육체 안에 있는 생명들이 모습을 갖가지로 가지고 천차만별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있습니까? 그것이 수 억겁부터 진화되고 바뀌어서 모습을 바꿔 가지고 나왔다는 증명서예요, 증명서. 내 몸이 바로 증명서입니다. 그러니 어찌 안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 몸을 배로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는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의 중간에 서있는 겁니다. 이게 중세계입니다. 중간에 서서 배를 타고 가는 셈이란 말입니다. 이 몸을 배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중생들이 잔뜩 탔단 말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선장이 배를 끌고 가는데, 노를 젓고 가는데 배 안에서 이러쿵저러쿵하고 울끈불끈하면은 배가 뒤집혀서 너와 내가 다 죽습니다, 선장이고 누구고 할 것 없이 다 죽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러니까 배에 탄 사람들은 이끌고 가는 선장의 말을 듣고 선장은 그 사람들을 다스리면서, 내 몸 안에 있는 모든 중생들을 한마음으로 다스리면서 거기 서만이, 그 한구녘에서 나오는 거니까 한구녘에서만이 대치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구녘에서 병을 내보냈으니까 한구녘에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의 자동적인 컴퓨터에 과거에 모든, 이 말을 자꾸 합니다. 자동적인 컴퓨터에 자기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입력이 돼있거든요. 그래서 현실에 영혼과 그 인연의 업식, 악업 선업이 부착이 돼 가지고 부모의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나오거든요. 그러니 거기서 나오지 딴 데서 나오는 게 하나도 없는 겁니다. 딴 데서 오는 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악업 선업이 입력된 대로 좋게 나올 수도 있고 기쁘게 나올 수도 있고 아주 악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지 다른 데서 오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 거기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수없이 일이 안 되는 수도 있고 잘 되는 수도 있고, 해보려고 하면 망하고, 좀 살아 보려고 하면은 조금 모였다가도 금방 다 나가고 하는 문제들, 말로는 할 수 없이 건건이 다른 문제들이 생기고 있죠. 그래서 그렇게 건건이 생기는 그 까닭이 바로 그러기 때문에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건건이 들어오는 거마다 불바퀴에다 놓으라고 하는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거와 같이 건건이 오는 대로 그냥 거기 집어넣어라, 그러면 타버린다, 건건이 닥치는 대로 ‘너만이 할 수 있어.’ 하고 믿고 놓아야지 버리라고 해서 놓으라는 게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나오게 했으니까 안 나오게 할 수 있지 않아.’ 하고 놓고, 상황에 따라서 또 ‘너로 인해서 생긴 거니까 네가 모든 걸 막아야 하지 않아.’ 하고 놓고, ‘이것은 너만이 이끌어줄 수 있어.’ 하고 놓고, ‘너만이 집안을 화목하게 할 수 있어.’ 하고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한 건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식이 무엇을 잘못했다거나 자식이 잘못돼서 어디로 잡혀갔다거나, 또는 자식이 병이 들었다거나, 자식이 공부를 안 하고 나가서 논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겨서 애로가 많은 집들도 있고,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분열증이 생겨서 식구들이 다 그냥 애 쓰는 집들도 많고 이런데 그거를 어떻게 다 대치를 해야 옳으냐는 겁니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한 게 그런 거지 딴 게 있습니까? 내 몸과 가족들과 이런 거를 하나하나 해나갈 때에 바로 내 성취도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몸 속의 자생중생들과 더불어 같이 제도가 돼서 보살로 화하게 되면, 이 세상에 물주머니 공기주머니에서도 자유스럽게 다 탁 트인단 말입니다. 그러니 안 하고 배기겠습니까?
세계적으로도 지금 물질계하고 교차로에 서서 정신계로 받아들이려고 무척 애를 쓰고들 있습니다. 정신계를 돌아서 나오니까 의학계에서도 볼 때에, 대뇌를 통해서 소뇌를 통해서 중뇌에서 책정을 해 가지고 사대(四大)로 통신이 되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것은 누구나가 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게 되면 약사나 의사들도 마음공부를 안 한 사람하고는 달라요. 안 한 사람은 그냥 사사건건 다 걸리게 되지만 자기가 마음공부를 하면서 해결해 나가는 사람은 걸리지 않게 됩니다. 우리 절에도 산부인과 하는 분들도 많이 있고 그런데요, 하나도 걸림이 없이 해결해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많았던 애로사항이 다 없어졌다는 겁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그게? 대치가 되니깐 문제들이 모두 해결이 되는 거죠. 그러고 똑같은 약인데, 똑같은 소화제인데 아주 몹쓸 감기가 걸렸어도, 폐가 나빠질 감기라 해도, 소화제를 주어도 그냥 먹고 낫는 겁니다. 이건 무슨 까닭이냐 이겁니다. 고 순간 약을 주고받을 때 바로 직속으로 통하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바로 낫는 겁니다. 그러니 눈 안에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데가 더 무섭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보이지 않는 데가 묘법이라는 걸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됩니다. 왜 내가 법사스님을 다달이 모시느냐 하면은, 나는 위에서부터 그냥 내리 그 뜻을 배워 나왔거든요. 차차 아래서부터 올라가면서 배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 현 시점에서 사회의 물질적인 것이나 예의와 그런 것을, ‘내가 혹시나 모르면 대치해 주십사.’ 하고 다달이 모셨던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법사스님이 말씀하시는 거와 내가 말하는 게 둘이 아니라는 거, 우리가 살림살이하는 것이 전부 바로 그 마음에서 나오는 거니까 정신계에서 나오는 거니까, 우리가 정맥이다 동맥이다 하고 둘을 놓고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다 이럴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듯이 정신계와 물질계는 동일하게 같이 지금 찰나찰나 고정됨이 없이 돌고 있거든요. 그런데 나로서는 좀 부족하든지 부족하지 않든지 간에 내가 힘을 다해서 자세히 한다고 해도 자세히 못 할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눈을 뜨고 귀가 떠져야 내가 자세히 안 해도, 컵만 들어도 벌써 ‘저건 무슨 소리다.’ 하고 알게끔 돼있습니다. 말이 음메 해도 벌써 그게 무슨 소린지 알게끔 돼있고요. 개가 멍멍 짖어도 그게 무슨 소린지 알게끔 돼있어요. 꽃이 바들바들 떨어도 알 수 있구요, 꽃도 살아있거든요. 말을 하고 있다구요. 그런 거 보셨습니까? 아침에 해가 떴을 때는 꽃이 기지개를 착 펴다가 저녁나절이 되면 하나하나 오므라드는 거요. 그런데도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 산에 다니면서 보면요, 풀도 사람의 흔적이 딱 닿았다 하면 말아들여요. 그러니까 사람의 흔적을 말아들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벌레가 오면은 말아들여서 그냥 삼키고 말죠. 껍데기만 남아요. 그런데 어떤 것을 업신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났으니까 모든 걸 보고 느끼고 알게 되니까 모두가 다 스승이지 어디 업신여겨 볼만한 뭐가 있습니까? 돌 하나가 굴러가는 것을 보고서 하하하 웃고 ‘그 돌이 참 똥 덩어리처럼 굴러가네.’ 하고 웃기도 합니다. 또는 물이 흘러 갈 때에 돌이 있으면 돌아 흘러갑니다. 그것이 다 말없이 가르쳐주는 소중한 스승입니다, 전부가. 바다를 내려다보십시오. 바다가 어떻게 한다고 말이 없어도 수많은 물줄기가 다 그리로 흘러 들어갑니다. 비가 쏟아지면 빗물이 흘러 들어가고, 똥물도 흘러 들어가고, 악취가 나는 물도 흘러 들어가고, 구정물도 흘러 들어가고, 뭐 더러운 물 깨끗한 물 할 것 없이 오만 게 다 흘러 들어가도 그냥 여여하게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받아들였다 하면은 그 흔적은 없어지죠. 그러니 모두가 우리의 스승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불교라는 것이 부처님이 계셔서만 불법이 아니고, 머리를 깎고 목탁을 쳐서만이 불교가 아닙니다. 일체 만물만생의 생명이 불(佛)이요, 우리가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통신과 통신이 통하고, 말과 말이 통하면서 일체 만물이 다 서로 끝없이 전달하고 돌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교(敎)입니다. 그리고 스님들이 왜 머리를 깎는 줄 아십니까? 나오면 깎아버리고 나오면 깎아버리는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모두 살아나가는 게 찰나찰나 바뀌고 화해서 나투니, 지나간 것도 없고 앞으로 다가올 것도 없고 그대로 영원한 오늘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공(空)했으니 세월과 네월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대로 충실하게 하루하루 하루살이로 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에 모든 부조리한 무명초를 다 깎아버리면 또 나는 것이 정상이죠. 깎아버린다고 해서 아예 안 난다면 정상이 아니죠. 나면 깎고, 나오면 또 깎고 우리가 한 발짝 딛고 또 딛고, 한 발짝 딛고 또 딛고, 밥 먹고 또 먹고, 똥 누고 또 누고 이러니깐 끝없이 이어지는 거와 같은 겁니다. 이게 불교 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 만사가 다 죽고 살고 죽고 살고 하는 게 그냥 불교예요. 그러니까 불교 안에 종교가 있는 거지 불교가 따로 개별적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어느 외국지원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만, “좋아하지 말어, 가톨릭이나 기독교가 다 따로따로 있다고 하지만 모두 불교 안에 있는 거다. 불교 안에서 걸상 하나 이쪽으로 놓고는, 내 걸상을 저쪽으로 하나 놓고 하는 거나 같다. 그렇게 한다면 너무 옹졸하고 지구 안에 있는 동물들과 전체 치면은 생물들이 다 살고 있는데 지구 안에서 요리로 피하면 뭘 하고 조리로 피하면 뭘 하냐.” 하고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묘지에 가보니깐 케네디 대통령 묘에 밤이나 낮이나 항상 불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놨는데 그 불 뜻을 아느냐고 했습니다. 세계 전체 우주 전체가 불바퀴가 헤아릴 수 없이 있다. 그런데 불이 둘이냐? 생명이 둘이냐? 모습은 다 다를지언정 어찌 생명이 둘이겠느냐 하고 얘기하니까 고개를 끄떡거리고 그렇다고 하더군요. 같이 모여서 그렇게 얘기하다보니까 재미있대요. 아, 그 사람네들이 다 가톨릭이나 기독교인이거든요. 하하하. 어느 스님이 들어갔다 내쫓겼다고 하면서 나도 내쫓길까봐 처음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그러더라구요, 우리 신도들이. 자기들이 초청을 해놓고는 조금이라도 트릿하면 그냥 내쫓는대요.
그러거나 말거나 가서 보니까 강당에 사람들이 꽉 찼는데 들어가서 꽝꽝 치고 얘기했죠. 허허허. 그랬더니 뭐 잡곡밥에다가 팥 넣고 찰밥을 해 가지고 이런 들통으로 하나 하고요, 찌개를 해서 들고 노비까지 가지고 왔어요. 쫓아내지 않구요. 그래서 편을 가르지 않고, 또 진리가 편이 갈라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참 좋았습니다. 그래도 그 말귀를 알아듣고 그렇게 해주시는 그 마음도 역시 동일하구요. 뭐 기독교니 가톨릭교니 그런 것도 없이 아주 평화스럽고 좋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 말을 안 해도 다 아시겠죠. 우리가 공부를 안 하면 안 되는 까닭을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요, 어떤 때는요. 아휴! 내가 다른 데는 하나도 그런 걸 느끼지 못하는데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덮어놓고 이렇게 하는 데는, 언제나 ‘그 노랑도 상투를 길러서 내 낭군 되느냐.’ 하는 셈으로 ‘언제나 길러져서 진짜 자유스럽게 저 집안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 때가 많아요. 그런데 내가 그러면서도 ‘허! 날더러 하라고 뭐 등에 써 붙였나?’ 이러면서도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기의 소임은 소임대로 끊고 맺는 듯이 해야죠. 못 하든 잘하든 말입니다. 자기의 할 일은 자기가 해야죠.
그렇다고 덮어놓고 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진실하고 거짓 없이 이 세상 진리가 아주 거짓 없이 선업이면 선업대로 피할 길이 없고, 악업은 악업대로 피할 길이 없어요. 그런데 선과 악을 다 놓고 평화스런 자유인이 돼라 하는데 왜들 싫다고 하겠습니까? 돈이 바가지로 드는 것도 아니고 자기 마음 가지고 마음대로 할 것인데 왜 못하겠느냐 이겁니다.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 하나하나 말씀해주세요.
▲질문자1: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스님: 복 많이 받을 것도 없고 안 받을 것도 없고, 오는 대로 그냥 사는 거죠, 뭐.
▲질문자1: 스님께서는 항상 고구정녕 저희들을 이끌어주시고 계십니다마는 아직도 저희들은 미망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래서 몇 가지 궁금한 점에 대해서 좀 여쭙고 싶습니다.
먼저, 신선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신선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는 세상에 연연해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세상을 싫어하니 신선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바로 어렵고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 이야기처럼 세상이 싫어서, 왜 이런 세상에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을까를 고민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고 혹은 몹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되는, 또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연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스님: 그것이 그런 말이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은 부자를 건너다 볼 수가 없으니까 포기하는 거죠. 포기해서야 신선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얼른 쉽게 말해서 신선이라는 것은, 이 도리를 다 알아서 내가 빈 손 들고 와서 빈 손 들고 가는 도리를 알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도리를 안다면 그 중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아실 겁니다, 아마. 그러기 때문에 신선이에요. 그러니 내가 항상 얘기하죠. 가는 거 잡지말고 오는 거 막지 말라구요. 어떠한 거든지 오는 대로 모든 것을 대치해서 놓고 갈 뿐 잡지 말아라 이겁니다. 그리고 또 나한테 다가오지 않은 거를 가지고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말을 항상 하죠. 그러니까 신선이라는 것은 지금 이 마음공부를 하고 가시는 여러분이 신선입니다. 가난하든 부자든 막론해 놓고 말입니다.
(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200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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