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저많은 사람을 모이게…
2002년 6월부터 시끌벅적하던 광화문의 열기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선재는 나이와 성별을 떠나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묵묵히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월드컵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느낀다. 무엇이 저 많은 사람들을 쌀쌀한 날씨가 부끄럽도록 모이게 하는 것일까?
윤금이 씨 사건이나 노근리처럼 그 동안 미군들 때문에 생긴 사고는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직업여성(?)’이 관련되었거나 사격장과 관련된 것이어서 선재의 피부에 와 닿은 것이 아니었다. 선재 주변에는 직업여성도 없었고 선재가 사는 곳이 사격장 근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중생이다. 선재의 여동생도 여중생이었던 적이 있었고 선재의 어머니와 이모도 그랬다. 또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선재의 딸도 여중생이 될 것이다. 미선이와 효순이의 죽음이 이제 선재의 일이 되어버린다.
붉은 악마의 발자국 뒤로 이제는 두 여중생을 향한 자비의 촛불이 뒤따른다. <대지도론>은 자비에 대해서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자(慈)이고 중생의 고통을 연민하고 동감해서 그 괴로움을 제거해 주는 것이 비(悲)”라고 설명한다.
또 <수타니파타>는 “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지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정”을 자비라고 설명한다. 선재는 <수타니파타>의 설명이 더 와 닿는다. 보살이 성불을 미루고 중생으로 남는 것은 두 여중생의 죽음을 보는 선재의 마음과 같다. 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언제 자식을 내 몸처럼 여기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이번 주말에는 스스로에게 기쁨 주고 고통을 제거해 주려는, 선재의 어머니 같은 촛불보살들께 따뜻한 차 한 잔이라도 공양해야겠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