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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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계품의 이념(理念) ①
53선지식 식물의 꽃에 비유
지혜로 덕 실현이 보현행

입법계품에 해당하는 범어의 원래 명칭은 간다뷰하(gandavyuha)이다. 이 간다뷰하 학자에 따라 해석이 실로 여러 가지이지만, 예로부터 대체로 ‘여러 가지 꽃으로써 아름답게 장식한다 [雜華嚴飾]’ 는 의미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해석은 선재동자가 찾아가는 53선지식을 각각 식물의 꽃에 비유하여 그것을 경전의 이름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53인의 선지식들은 각각 자신들의 생활영역에서 진실한 가르침에 따라 보살행을 실천하여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꽃피워 낸 존재이기 때문이다.
입법계품의 첫째가는 주제는 선재동자의 구법여행이다. 선재동자라는 한 사람의 구도자가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53인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서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은 보살행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 하는 점에 대해서 묻고,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내용이다. 선지식을 찾아갈 때마다 묻는 내용은 언제나 같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양한 신분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선지식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그 물음에 대답하여 법을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입법계품의 교설은 보리심을 일으킨 사람이 다양한 현실세계의 삶을 살아가면서 보여야 하는 보살의 이상적인 여러 가지 삶에 대해 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법여행은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나 보리심을 발하고, 그의 지도에 의해 구법여행에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보현보살을 만나 법계에 들어가는 수행을 완성한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계라고 하는 말은 진여·제법실상·실제(實際)와 같은 불교용어와 유사한 것으로서, 진리의 세계 혹은 진실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법계에 들어간다고 하는 말은 ‘깨달음을 성취한다’ 또는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하는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원래 gandavyuha 라고 하는 범어로 되어 있던 것을 60권 혹은 80권 화엄경에서 입법계품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어로 되어 있는 ‘간다뷰하’만을 번역하여 40권으로 한 화엄경에는 그 부제(副題)가 ‘부사의한 해탈경계에 들어가는 보현행원품’으로 되어 있다. 법계는 바로 부처님의 경계이며, 그 경계는 바로 해탈 열반의 경계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부사의한 해탈이라고 한 것은 입법계품에서 설하고 있는 해탈 열반이 성문의 수행도에서 말하는 해탈 열반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바로 성문의 수행도에서 말하는 열반은 혼탁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떠나서 얻는 것이지만, 보살도의 해탈은 현실에 순응하면서 현실을 초월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사의한 해탈이야말로 부처님의 경계이며, 이것에 순응하여 들어가게 하는 것이 바로 보현의 행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제를 통해서도 입법계품의 내용이 대승불교의 입장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입법계품이 보현행원이라고 하는 보살도를 가지고 부사의한 해탈경계인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는 법을 설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보현행원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그것을 통해서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인가. ‘보현’이라고 하는 말에 해당하는 범어는 Samantabhadra이다. ‘널리 뛰어나다’, ‘두루 길하고 상서롭다’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의미로 쓰이며, 보통 보현 또는 변길(遍吉)이라 번역된다. 또한 이상적인 불도수행을 찬양하는 뜻에서 대승보살의 깊은 용맹심과 대자비의 광대함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의미가 대비이타의 대승보살의 이념과 부합되므로 적극적인 보살행을 강조하기 위해 입법계품에서 ‘큰 자비행[大行]’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의 이름으로 되지 않았나 생각되고 있다.
보현이라고 하는 말이 행하는 덕이 두루 널리 미치어 항상 일체의 선(善)을 나타낸다는 측면에서 자리이타가 원만한 대보살이나 대승보살행을 의미하는 호칭으로 어울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보현행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지혜로써 법을 잘 관찰하여 거기에 순응하면서 스스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경계를 생각하고, 부처님의 훌륭한 덕을 널리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다. 입법계품은 이러한 보현행의 체현자를 특정 보살의 이름으로 삼아 경전의 으뜸가는 보살로 삼는다. 이렇게 해서 경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부여한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보현보살은 대승보살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덕을 널리 실현하는 대자비의 보살행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아가는 보살이다.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에게 그와 관련된 보살행을 강조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
200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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