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우 (취재1부 차장)
8일 서울 하림각에서는 노무현 당선자 내외와 20여 종단의 지도자급 스님, 재가 신도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평화기원 신년하례법회’가 열렸다. 이날 법회는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이 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민주당의 불자의원 모임인 연등회가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법회는 이상한 분위기로 흘렀다. 정대스님은 인사말에서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빌며, 모든 정성과 힘을 모아 실어드리는 불자들이 되자”고 말했다. 또 행사 사회를 보던 조계종 총무원의 한 국장스님은 노 당선자의 이름으로 ‘노력하는 대통령, 무소유의 철학을 실천하는 대통령, 현명한 대통령’이라는 즉석 삼행시를 지어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연이어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행사장 분위기는 마치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조선 세종 때 정인지 등이 조선왕조의 창업을 찬양하기 위해 지었다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 따로 없었다.
<정법염처경>에 “수행에 방해가 되므로 권력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책이 있다. 굳이 오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면 “왕에게 수행자의 처소를 찾아 예경하고 법을 구하게 하라”는 <불소행찬>의 가르침대로 하면 된다.
종교와 정치는 마땅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 시대 흐름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그 방법은 정치를 가까이 할 것이 아니라, 종교의 이념을 통해 정치를 순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불교계 지도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권력자 앞일수록 당당해야 하는 것이 종교 지도자다. 그렇게 할 때 ‘인천사(人天師)’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