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승시절에 만난 ‘독특한’스님
논리정연…학문에 남다른 열정
스님들의 수행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경우가 지나쳐 참선하는 분과 학문하는 분, 포교하는 분들을 갈라놓고 각각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해 진 이후 수 많은 수행자들이 치열한 구도의 삶으로 지금의 불교를 이루어 냈다. 그 분들의 삶 속에서 우리는 수행자의 참 모습만 볼 뿐, 수행 방법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매년 어김없이 2~3천명의 스님들이 안거에 들어가고 열악한 환경의 도심에서 의미있는 포교를 하며 수행하는 스님들과 오늘도 멀리 이국에서 치열하게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다. 불자들에겐 모두가 소중한 수행자들이다.
예전에 가끔 떠오르던 생각이 하나 있었다. `출가 수행자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출가자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하는 것인데 언제나 `그저 수행하는 사람이란 결론에 이르곤 한다. 수행을 떠나면 출가자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어떤 공부든 그것이 수행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면 최소한의 명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근래 불교의 모습이 선(禪)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포교나 학문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있다. 언제부터인지 절집에서는 포교나 학문이 마치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나 세속화의 지름길로 생각하곤 했다. 그런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외람된 생각이지만 수행자의 모습은 완성된 사람으로써 펼쳐 보이는 삶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위해 애쓰고 정진하는 과정의 삶이라고 본다. 순간 순간 부딪혀오는 상황들을 모두 화두 참구 하듯이 지니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본다.
군승 시절에 만난 여러 스님들은 나에겐 큰 인연들이고 좋은 인연들이었다. 성원스님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독특한 스님으로 기억된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같이 다녔던 분들의 의견도 역시 그러했는데, 어딘지 승복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늘 웃음을 자아냈지만 공부는 참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판단에 스님은 주관이 너무 분명해서 모난 것 처럼 보이기도 했고, 아는게 너무 많아서 때로는 정(?)에 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논리정연 함에는 결국 많은 분들이 손을 들게 된다. 군승 재직시 군승단에 작은 변화의 흐름이 있었을때 이론적 뒷받침을 도맡아 했고, 명쾌한 결론으로 대중들을 이끌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성원스님은 동국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동양 철학을 전공하고 군승으로 재직했다. 군에 있을때도 언제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했고, 제대 후에는 더 넓은 곳으로 공부하러 가야겠다는 얘기를 앵무새처럼 하곤 했다. 그땐 나도 함께 공부하러 가기로 의기투합 했었는데, 나 같은 경우엔 생활의 분주함으로 인해 곧 그 사실을 잊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님은 군승 시절 내내 학문에의 열정과 원력을 한번도 놓은 적이 없었던것 같다. 제대할 무렵 전국의 절을 함께 순례한 적이 있었는데,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을 때 일이다. 스님은 많은 불자들 틈에 섞여 열심히 절을 했다. 난 그때만 해도 명색이 스님인데 스님 자리에 가서 기도하던가, 아니면 간단히 축원이나 하자고 했지만 스님은 상관하지 않고 신도들의 틈에서 큰소리로 염불하며 절을 했다. 옆에서 가만 들어보니 그 염불소리는 `도미성취(渡美成就) 중생구제(衆生救濟)`였다. 난 그저 까맣게 잊고 있던 소망을 스님은 군생활 내내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큰 스님들은 출가자는 먼저 원력을 크게 세우라고 말씀 하시지 않았는가? 원력을 세우고 살아가는 수행자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 모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스님은 그 해에 하와이로 건너갔고, 거기서 다시 위스콘신주립대로 진학해서 박사과정 까지 마쳤다.
역시 수행자는 공부의 방법과는 상관없이 큰 원력을 가지고 정진 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호되게 몰아치면서 중생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운 스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성원스님은 그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 불교계는 그 어느 때보다 인재 양성에 적극적이다. 탑과 절을 세우는 것 만으로는 불교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성원 스님과 같은 학문에 열정을 가진 스님들을 제대로 키우고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가꾸는 일은 이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또 다른 불사일 것이다.
■서울 정혜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