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보상화문 수막새 섬세함 극치
결가부좌 튼 보살표현 화려하고 치밀
천년이라는 긴 역사를 간직한 신라시대에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 적지 않게 창출되었다. 부드러운 곡선 속에 강렬한 직선을 내보인 신라금관, 건축과 조각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석굴암, 아름다운 자태에 웅혼한 소리가 조화로운 성덕대왕신종, 준수한 비례와 다양한 조형세계를 펼쳐 보인 통일신라 석탑.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신라기와를 꼽는다. 2000년 8월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를 기념하여 기획한 신라와전전은 신라기와가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문화유산임을 만방에 알리는 자리였다.
작은 한반도가 그나마 세 나라로 쪼개져 자웅을 겨루었던 삼국시대. 그 시대에는 기와까지도 서로 그 개성을 다투었다. 고구려 기와는 단정하면서 엄격한 조형 가운데 역강한 힘을 표출하고 있다. 이는 한나라 기와의 단정한 구획과 북조의 강한 미의식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백제 기와에는 부드럽고 온화한 곡선미가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러한 양식에는 남조의 기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의 기와에서는 어떠한 특징을 보였는가? 초기에는 고구려 및 백제 기와의 형식에 많은 신세를 졌지만 이내 이를 신라 고유의 미감으로 각색하였다. 고구려의 역강함과 백제의 부드러움에 신라의 질박함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라의 전통을 계승한 통일신라시대에는 다시 당나라 기와의 자극을 받으면서 문양의 종류가 증가하고 표현방식은 매우 화려함과 섬세함에 다다르게 되었다. 불국사 보상화문수막새가 그 섬세함의 극치라 하겠다. 이 수막새에 새겨진 무늬를 보면, 가운데 자방에 점점이 튀어나온 연씨를 제외하고는 주위의 보상화문은 언뜻 무엇을 표현하였는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흐드러지게 나타내었다. 미세한 떨림마저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치밀한 표현력이 화려함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의 기와도 이만큼 화려하고 섬세한 조형세계를 펼치지 못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유창종 기증 와전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회에 통일신라를 대표할 만한 수막새가 출품되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바로 보살문수막새가 그것이다. 보살상이 새겨진 수막새는 지금까지 조각이 몇 점 알려져 있지만, 이처럼 완형을 유지한 경우는 없었다. 수막새의 중앙에는 도드라지게 새겨진 보살이 양손을 들고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이 보살상의 주위에는 한단 내려앉은 가운데 8옆의 보상화문이 빙 둘러 처져 있다. 그리고 높지 않게 솟은 외곽의 테두리에는 꽃무늬가 연이어 새겨져 있다. 탄력적이고 관능적인 보살의 몸매에서는 석굴암으로 대표되는 통일신라 조각의 절정을 감지할 수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잘 보이지 않은 지붕 끝까지 그토록 섬세하게 장엄하였던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구석구석 세부에까지 정성이 미치는 신라인의 문화적 역량에 놀랄 따름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