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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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에 이르는 길
8정도는 3학과 삼위일체
구체적 실천 따라야 자아완성

<잡아함경>제28권 771경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어떤 사문이 피안과 피안이 아닌 것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이때 부처님은 불교도들에게 8정도로 알려져 있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은 피안이며, 8정도와 배치되는 삿된 길은 피안이 아니며, 피안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설법하고 있다. 그런 뒤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시를 노래한다.

“사람으로서/ 피안에 이를 수 있는 이는 드물어/ 이 세상의 모든 존재/ 차안(此岸)에서 배회하고 있노라./ 이 바른 가르침과 계율/ 잘 믿고 따르는 그런 사람/ 저 건너기 어려운 생사의 바다 건너/ 피안에 이를 수 있으리”

이상에서 부처님께서는 8정도가 피안이며, 피안으로 이끌어 주는 길이라 설파하며, 동시에 바른 가르침과 계율로 해석하고 있다. 기실 4성제의 핵심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른 견해(정견)란 4성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번뇌가 없는 사유를 따라 깨닫는 것을 말한다. 바른 사유(정사유)란 출가자에게 어울리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마음, 자애로운 마음, 더러움을 떠난 청정한 마음을 갖도록 끊임없이 사유하고 애쓰는 것이며, 세속적으로는 욕망과 분노와 폭력을 여읜 사유를 지칭한다. 정견과 정사유의 공통점은 견해와 사유의 밑바탕에 고-무상-무아의 사상이 전제 되어 있다.
바른 말(정어)이란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욕설, 꾸미는 말을 여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생활을 통해 타인에게 믿음과 사랑, 평화와 행복을 주고자 하는 사회의식이 전제돼 있다. 때문에 타인에 대한 칭찬과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이 필요한 것이다. 바른 행위(정업)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주지않는 것을 빼앗지 않으며, 청정치 못한 행위(음행)를 떠나는 것이다. 바른 생활(정명)이란 세속적인 입장에선 정당하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출가자 입장에선 바르지 않은 생활에 대한 번뇌를 없애고, 즐기거나 집착하지 않되 때를 어기지 않고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바른 노력(정진)이란 이미 존재하는 선은 더욱 증대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아직 발생하지 않은 선은 얻도록 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이후에도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바른 인식(정념)이란 세상의 욕망과 근심을 버리고, 사물에 대해 거듭 생각하고, 기억하여 생각이 진실하고 거짓되지 않은 것이다. 4념처관에 의거, 몸과 감수 작용과 마음과 법에 대해 올바로 관찰하는 것을 지칭하기도 한다. 바른 선정(정정)이란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상태 즉 4성제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면서 산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거두어들이고, 고요하며, 삼매요 한 마음인 것을 말한다. 기본적으로는 공, 무상(無相), 무원(無願)의 마음가짐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상에서 8정도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각각 분리되어 있지만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다. 즉 정견은 나머지 일곱 가지 길과 연계되어 있으며, 정정 역시 나머지 일곱 가지 길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8정도를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로 분석하고, 그것을 3학이라 부른다. 즉 정견+정사유=지혜(慧), 정어+정업+정명+정정진=계율(戒), 정념+정정=선정(定)이다. 이상에서 지혜에 해당하는 정사유는 세속적인 입장에서 욕망, 성냄, 폭력(=어리석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율에도 속한다. 즉 정사유+정어+정업=십선계(十善戒)가 된다. 정사유는 십선계에서 바로 의업(意業)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동시에 정념과 정정은 4념처관을 통해 고-무상-무아를 관찰하고 인식한다는 점에서 지혜에 해당하는 정견 내지 정사유와 상통한다. 선정을 통해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으며, 올바른 지혜를 기반으로 올바른 선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가분리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계정혜 3학은 삼위일체의 관계를 정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정도는 인식과 실천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자상하게 알려주고 있다. 동시에 인식과 실천의 주체는 다름 아닌 개개인 자신이 아닐 수 없으며, 그것은 부단한 자기성찰과 자유의지의 확대에 있다는 점을 말한다. 정명, 정정진 등이 그런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에선 8정도가 피안에 이르는 길임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알되 실천하지 않는 것은 진정 몰랐던가 잘못 알았던 것이 분명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지식 보다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중요시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초현실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에 의지하기보다 구체적 실천을 통해 자아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8정도의 정신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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