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잘한 일 더 잘하자
새해가 밝았다. 매년 그랬듯이 선재는 올해도 남들처럼 며칠 가지 못할 다짐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도대체 왜 새해만 되면 선재 자신도 모르게 결심을 하려는 걸까? 결심 안 하면 누가 잡아가나?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선재는 한참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그렇게 간단한 답을 고민했나 싶어 피식 웃고 말았다. 정답은 바로 연말을 보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결심을 ‘발심’이라고 하셨다. 선재는 벌써 서른 번도 넘게 발심을 한 셈이다. 『화엄경』에서는 “처음 발심을 한 때가 바로 깨달음을 얻는 때”라고 하셨는데 그럼 선재는 서른 번도 넘는 깨달음을 얻은 걸까?
삼백 예순 다섯 날로 사람들이 정해놓은 1년을 생각해 보면 한 해라는 것이 마냥 멀기만 한 시간이지만 사실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은 겨우 하루 차이이고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시간으로 따져보면 겨우 1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선재가 웃고 만 이유는 발심하는 순간에 깨닫는다는 말이 새해 첫 날의 결심을 연말까지 이어지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결심하기 직전의 나의 삶을 되돌아보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없이 하는 새해의 결심이니 작심삼일일 수밖에. 발심(發心)은 이미 자기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북돋우는 일이지만 작심(作心)은 원래 없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니 말이다.
새해의 첫날, 선재는 예전과 다른 결심을 한다. 작년에 하지 못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작년에 잘 했던 일을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그렇게 해서 어제랑 똑같은 선재가 되면 새롭게 뭔가를 작심할 일도 없고 이미 선재는 한 해의 시작과 끝을 똑같이 산 셈이다. 작심의 세월 삼십년 만에 처음으로 선재는 발심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생각에 올 한 해가 즐거울 것 같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
‘이렇게 들었다’를 1년 동안 연재할 최원섭(32) 씨는 1995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동대학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성철선사상연구원의 선임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