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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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2)
충천의 기상 넘치는데
어찌 여래 가신길 따를까

“집을 떠나오기 전에 내가 망설였던 일은 책 때문이었다. 넉넉지 못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독자(獨子)인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이 나를 그렇게 길러주었을 것이다.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책더미 앞에서 나는 또 생나무 가지를 찢는 아픔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내 유일한 소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너 권쯤은 몸에 지니고 싶어 이 책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놓기를 꼬박 사흘 밤을 되풀이했었다. 그것은 지독한 집착이었다.

책 몇 권을 가지고도 이러는데, 정든 처자권속을 두고 나오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능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결국 세 권을 뽑아 짐을 꾸렸지만 산에 들어와 보니 모두가 시시하고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출가기(出家記)>에 나오는 스님의 담담한 회고담이다.
스님은 임신생으로 음력 2월 15일생이니 금년 춘추는 69세이다. 한번은,“2월 15일이 부처님의 열반재일 날인데 스님 생신이십니다.”
하고 말씀 올렸을 때에,
“그건, 호적상으로만 그래.” 하셨는데 춘추도 호적상으로는 몇 살 적다. 스님은 전라남도 해남 땅에서 박씨 가문에 외동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목포에서 지내다가 23세 때에 충무 미륵산 미래사에 출가하셨고 지리산 쌍계사에서 은사 효봉 노스님을 모시고 탁발을 해가며 공부를 한 바가 있으시다.

초대 역경원장을 지내신 운허(耘虛) 대강백을 모시고 해인 강원에서 수학했고 운수납자의 길에 올라 선원 대중생활을 한 때가 있으시다. 처음엔 무자(無字) 화두로 정진을 하다가 두 번 째에는 관법(觀法)을 통해 스님의 입지(立地)를 튼튼히 하신 것으로 헤아려진다. 일화(逸話)가 많다.

언제 들은 이야기이지 잘 모른다. 한번은 스님이,

“나도, 도적질을 한 적이 있었어.” 하고 말씀하셨다. 학교 앞 장소에서 상이 군인인지 다리가 부자유한 사내가 잉크지우개, 콘사이스, 문방구, 책 등을 길바닥에 늘어놓고 학생들에게 팔아서 그걸로 살아가는 가난한 노점상. 스님이 별 내용이 없는 책인데도 그냥 호기심으로 펴들고 넘겨보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스님이 그들에게 밀려서 주인 사내와 약간 멀어져 버렸다. 주인 사내는 다리가 부자유스러워 쉽게 일어서고 앉고 할 형편이 아닌지 그냥 앉아서 학생들과 흥정을 하며 팔고 있었다. 순간, 스님은 책을 슬쩍 가방 안에 넣어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리나 성한 사람 것 같으면 덜 미안한데.....” 하신다. 이때 나는 스님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큰 기쁨을 맛보았다. 의외로 재미있으시다.

또 이런 일도 있다. 스님이 목욕 빨래를 하신 날이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많이 모아두고 빨래를 방바닥에 널어놓고는 그냥 쓰러져서 살풋 잠이 드셨나 보다. 밤중이었다. 잠이 깨었다. 문득 밤중에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궁금해서 소형 라디오를 켰다. 이때 이런 말이 막 흘러나와 귀를 기울였다.

“안녕하십니까? 한밤의 음악 편지 시간입니다. 오늘 밤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낭송하면서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다락에 가서 옛 책을 꺼내와 오랜만에 무소유 책을 펼쳐서 라디오 진행에 따라 함께 읽어 보셨다고. 차를 마시면서 “참, 오랜만에 무소유 읽었네. 하하하” 하고 웃으신다.

산을 탈 때에는 젊은 우리보다 더 힘있게 앞장서신다. 비결은 발바닥 중간쯤에 위치한 용천혈(湧泉穴)을 자극하는 법을 터득하셨기 때문이다. 그냥 돌을 피해 걷는 게 아니라 용천혈을 자극하면서 발바닥 중간으로 밟고 가신다. 건강도 의외로 좋으시다. 그 연세에 자취 생활이라니! 혼자 지어 잡수시는 건 아무나 흉내낼 정도가 아니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연유는 이렇다. 하루는 제목으로 ‘여름날 돌계단 쌓기’를 주면서 원고지에 10장 가량 써오라고 하셨다. 스님이 <불일회보> ‘불일탑(佛日塔)’ 고정난에 매월 연재를 하는데 그 자리에 대신 실으려고 하신 것이다. 두어 차례 말씀 끝에 쓴 글이 ‘법보의 소중함’이었다.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는,“아니, 이제 중이 된 아이 아니야?”
“지묵이가 벌써 불일탑에 글을 올려?”
하는가 하면 찬탄하는 쪽에서는,
“송광사는 물이 그래서 그런가? 글을 쓰는 이가 많아.”
“괜찮군. 앞으로 유망해 보여.”

하고 격려를 보낸 이도 있었다. 이 한차례 글이 불일탑에 실림으로 해서 말하면 일종의 추천이랄까 인정을 받는 자리가 된 셈이다. 그 이후 나는 10권의 책을 엮어내면서 생활 불교와 선 수련 이야기를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의도적으로는 스님의 책을 잘 펼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문체 스타일 등이 스님을 닮아갈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장부에게는 충천의 기상이 넘치는데, 어찌 여래(如來)가 가신 길을 따라 갈 것이냐?”스님의 교훈이시다. (계속)

200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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