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명을 불명으로 사용
현재 수행처서 온몸공부
고즈넉한 저녁노을이 그 아름다움을 어둠 속에 뺏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소리없이 풀섶에 스러지는 초저녁. 조실채 댓돌 위 고무신 두짝 만이 유난히 희어 보이던 날이었다. 가끔씩 철이른 낙엽이 앞마당을 훑고 지나가지만 조실채 창호지 밖으로 비치는 두 그림자는 석고처럼 굳어 움직일 줄 몰랐다.
방안, 곱게 정돈된 채 한쪽 벽에 밀쳐둔 다구와 몇 권의 고서만이 초저녁의 쓸쓸함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저 말없이 가부좌를 튼 채 정좌하여 염주알만 굴리는 청화 노스님의 모습은 인자한 촌 할아버지를 닮아 있었고 꽉 다문 입술 밑으로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한 행자의 모습은 좌불안석이다. 한참을 그렇게 뜸을 들인 후 이윽고 행자가 말문을 튼다.
“스님, 제가 여태껏 이십 여년을 ‘대석’으로 살아왔으니 앞으로의 중생활에서도 꿋꿋하게 큰 돌(大石)로 생활할 수 있도록 법명 또한 그대로 사용하게 하여 주십시오” 당돌한 행자의 청탁이다. 찬찬히 행자를 보고 계시던 노스님. 대수롭지 않은 듯 “그렇게 하려무나” 한마디 툭 던지고선 염주를 감아 들고 일어서신다. 절집안에서 출가는 새로운 생명의 출발로 여기며 다시 태어나 부처님의 제자로 거듭난다는 의미에서 계를 주시는 계사스님이나 은사스님이 새로운 이름 즉 불명(佛名)을 지어 주는 것이 법도다. 그런데 이 당돌한 행자는 은사스님의 불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노스님께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순순히 허락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소원대로 불명을 속명과 같은 대석(大石)으로 사용케 되었으니 그 이름 또한 불가에서의 인연이 지중하였던가 보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대석스님의 사제 되는 행자가 같은 이유로 노스님을 찾아뵈었다가 혼쭐이 났으니 노스님의 심중을 헤아릴 수 없지만 대석스님의 심지가 굵고 단단함을 일찍이 간파하시고 ‘큰 돌(大石)’로 남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건 아니었을까.
대석스님을 보면 옛날 영화에 나왔던 E.T가 연상된다. 굵은 안경테 밑으로 씨익 웃어 보이는 그의 미소는 가히 천만불 짜리다. 귀밑까지 올라가는 입술의 크기는 그렇다 치고 봄바람 일 듯 살랑살랑 눈웃음치는 그 모습은 영락없이 E.T를 닮았다. 그러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좋아 연구소의 모든 직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스님이다. 직원들의 세세한 사연을 꼼꼼히 챙겨주고 아픔이 있다면 그 아픔까지도 같이 할 수 있는 스님이다.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열의와 고집 또한 남달라 하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는 일이 없다.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바윗돌(大石)같은 스님이다.
새벽 네시, 밤새 빛을 발하던 형광등도 졸고 있을 시간이다. 밤늦도록 직원들이 작업을 하다 떠나버린 텅 빈 공간에 대석스님 혼자만이 남아 있다. 한쪽 책상머리엔 컴퓨터도 졸리운 지 깜박거린다. 그제서야 스님은 기지개를 한번 켜고 누비옷으로 앞을 가린 후 잠을 청한다. 이런 생활이 그에겐 전혀 불편이 없다. 어쩌면 그에겐 온돌방에 편안히 누워 잠을 청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대장경연구소 초창기, 모두가 대장경 전산화란 작업이 꿈속의 잠꼬대라고 비웃을 때 홀연히 전산화작업의 중요성을 깨달아 동참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편안한 잠을 자본 적이 없는 그다. 일본에서 공부하시던 종림스님께서 귀국하여 세계 최초로 대장경의 전산화작업을 시작할 무렵 전자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일본조차 대장경의 전산화는 엄두도 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모두가 외면하고 헛고생 말라고 말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추운 겨울날엔 연구소 바닥에서 담요 한 장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라면 한끼로 허기를 달래며 칠 팔 년을 견뎌왔으니, 이제 전산화의 막바지 작업에 몰두하는 지금의 고생이 그에겐 고생도 아니라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요즘 대석스님은 곡성 성륜사에서 소임을 보고 있다. 은사이신 청화 큰스님께서 당부하신 일이라 차마 거절을 못했지만 일주일에 꼭 2~3일은 서울로 올라와 연구소에서 일을 한다. 늦은 저녁 고속버스나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한 후 밤새워 일을 하고 다음날 또 내려가는 대석스님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저절로 어느 유행가 가사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 지는가.’
무턱대고 살아온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다. 모든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한다. 자신이 현재 처한 수행처에서 온몸을 던져 수행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요, 큰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대석스님이 오랫동안 애써왔던 작업, 이체자(異體字) 자전(字典)이 12월이면 완성된다. 대장경 연구에 있어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업적이 될 이체자 자전의 완성으로도 대석스님은 ‘아름다운 큰 돌, 바윗돌’로 불교계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