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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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스님의 스님이야기】 관후스님
장주소임 맡은지 20여년
자나깨나 대장경지킴이

짙게 어둠이 깔린 해인사의 아침이 아직 여명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어슴프레한 새벽 안개가 장경각을 휘감고 돌아 궁현당 지붕위로 소리 없이 흐르던 날 새벽예불을 마친 학인 스님들의 간경소리 청아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좌우로 흔들어 소리내어 보는 야경종소리는 적막한 산사의 마지막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바로 그날 무사히 야경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버릇처럼 궁현당 계단을 막 딛고 올라서는 찰나 “야 이눔아, 니는 몸뚱이가 성하고 두눈이 말짱하니 나까지 그런 줄 알았더냐?”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하마터면 들고 있던 야경종을 떨어뜨릴뻔 했다. 그날 아침 나는 장주스님에게 심한 경책을 받아야만 했었다.

해인사 장경각의 장주 관후스님. 스님은 키가 몹시 작았다. 젊은 시절 참선을 잘못해서인지 무릎조차 편치 않아 다리까지 불편하시다. 그러면서도 성격이 몹시 꼬장꼬장하셔서 대하기가 여간 어려운 스님이 아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푹 쉬고 싶다는 요령으로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야경을 돌면서 아직도 컴컴한 도량 속에서 일찍 외등을 꺼버렸었다. 외등은 마지막 야경을 돌때 어둠의 상태를 확인하여 꺼야 한다는 수칙을 무시했던 것이다. 해인사의 계단은 가파르다. 건강한 사람도 조심해야 하는 곳인데 그 가파른 계단을 달도 없는 컴컴한 어둠속에서 편치 않은 다리로 내려 오실려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잎사귀 푸르던 시절 학인때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죄송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해인사에는 고려와 조선조시대의 비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다. 민족의 수난 때마다 달리 의지할 데 없던 약소민족의 국운을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극복하여 보고자 일자 삼배의 정성으로 경판글씨 하나 하나에 민족의 아픔과 염원이 판각되어져 있는 대장경이다. 이 경판을 모셔두는 곳이 장경각인데 이 팔만대장경과 장경각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관후스님은 이곳 장경각의 장주 소임자다. 대장경과 장경각을 지키고 보호하여 잘 보존되게끔 하는 일이 장주 소임중 하나다. 이른 아침, 채 여명이 걷히기도 전에 장주스님은 장경각을 살펴보는 것으로 하루일을 시작하신다. 간밤에 어떤 불상사는 없었는지, 누전 등의 위험요소는 없는지 꼼꼼히 챙겨 보는 일이다.

해인사에는 관광객의 출입이 꽤 잦다. 스님은 관광객의 장경각 출입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가끔씩 호기심 등으로 인하여 장경각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하루종일 노심초사해 하신다. 실제 장경각 으슥한 모퉁이에서는 원활한 통풍을 위한 창문틀 사이로 손목을 비집어 넣어 경판을 만진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런곳은 닳고 닳아서 윤기마저 흐르고 있다. 그것을 스님은 당신의 잘못으로 여기시고 몹시 죄스러워 하셨다.

칠팔년전의 일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휴거소동이 일어났다. 해인사의 도량 곳곳에서도 말세론자들의 유인물과 테이프 등이 다량 발견되었었다. 사중 스님들도 행여 불상사가 일까 싶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곤 했었는데 대장경의 위신력인지 스님의 공덕 때문인지 다행히 장경각은 별일 없이 그 흔한 유인물 한장 발견되지 않은 채 휴거소동은 끝났었다. 그 당시 스님은 잠도 못 자고 장경각을 지켰다고 했다. 스님의 장경각과 대장경에 대한 애착은 어쩌면 무서운 집념과도 같아 보인다. 장주소임을 맡은 지 이십여년이 되어 가지만 그 많은 세월동안 거의 외출을 모르고 살아 오셨다. 내가 잠시 보존부 일을 맡아해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절대 장경각 열쇠 등을 맡긴 적이 없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설사 병중이시더라도 손수 문을 열고 잠그신다. 어쩌다 잠시 자리를 뜰 때에도 두 번 세 번 당부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그러한 스님의 모습에서 나는 칠백오십여년전 고려대장경 조성을 진두 지휘하셨을 수기스님을 연상한다.

신명을 바쳐 민족의 애환과 염원을 대장경에 새겨 조성하셨던 수기 스님과 자신의 삶을 오롯이 대장경과 장경각의 지킴이로 살아가는 관후스님은 대장경이란 틀 속에 자신의 일생을 던졌다는 의미에서 닮았다. 비록 시대가 변하고 맡은바 소임은 다르지만, 그 정신은 하나가 아니었을까? 일찍이 추사 김정희는 대장경 글씨 한자한자의 아름다움이 이세상 사람이 쓴 것 같지 않다 하며 극찬한바 있었다. 수기스님의 조성정신이나 관후스님의 지킴이 정신 또한 글씨 한 자 한 자의 아름다움만큼이나 닮아 있지나 않은지...

오늘 세속의 숲 속에서 사바세계에 은은히 퍼지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향기를 맡으며 관후스님의 무병장수를 기도해 본다.

■고려대장경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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