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디서 수행할까
“견공스님, 견공스님 없습니까?”
“ 아니, 왠 견공?”
“견공? 견공이라니?”
“ 비구계 받는 자리에 견공(犬公)이 왜 있어?”
“ 누가 지었는지 법명 한번 요상하게 지어놓았네”
모두가 킥킥거리며 술렁이고 있었다. 습의사 스님께서 한참을 그렇게 애타게 찾았건만 견공(?)스님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어서 대공스님이 견공스님으로 둔갑한 것임을. 교육기간 중에는 부르는 순서가 있으므로 순번을 따져 보니 분명 대공스님을 호명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대공스님 순번다음이 나인데 대공스님은 부르지 않고 나를 호명하는 것만 봐도 그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출가후 사년동안의 사미생활을 마치고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비구계첩에 불명(佛名)을 적는 사무직원의 실수로 큰 대(大)옆에 실수로 점 하나를 더 찍어 놓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이었지만 정작 나를 웃긴 건 잘못 적힌 불명 때문이 아니라 분명 자신의 법명이 잘못 호명되고 있음을 뻔히 알고도 그저 무덤덤히 두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끝내 외면해 버리는 대공스님의 표정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절대 타협을 않는 성품의 대공스님이었으니 어쩌면 대답없이 초연해 버리는 그의 모습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대공스님과 나는 사미계 도반이요, 비구계 도반이다. 속랍이 나보다 대 여섯살 위였으므로 형처럼 따랐으나 대공스님은 이제 같이 수행하는 길의 첫걸음에 섰으니 그저 허물없는 친구처럼 지내자며 오히려 깍듯이 대해 주곤 했었다. 그러나 내가 대공스님과 처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
대공스님은 사미계를 받은 후 기도와 만행으로 수행을 하였고 나는 바로 강원에 입방하였으니 서로 친해질 시간적 여유가 없어 겨우 안면만 튼 사이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치문반 해제철 만행 때 남해 보리암에서 기도중이던 대공스님을 만났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해 질 수 있었으니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보리암에서 의기투합한 우리는 방학기간 내내 보궁을 참배하며 만행을 다녔다. 비록 보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고 서로가 격려하며 이제 각자의 길에서 더욱 열심히 수행하자며 기약없이 헤어 진 후 서로를 잊고 살았다.
그리고 삼, 사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연히 보궁 참배길에 사자산 법흥사에서 대공스님을 만났다. 예고 없는 만남이라야 더욱 기쁜 법. 우리들은 그 동안의 공부이야기에 밤 늦은줄 모르고 담소를 나누었다. 대공스님은 천일기도 중이라 했고 이제 칠백일쯤 지났다고 했다.
그동안 많은 도량을 찾아보았지만 법흥사 도량이 자신에게 꼭 맞다고 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다시 한번 삼천일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기도때 그의 기도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목탁을 치고 정근만 하는게 아니라 절까지 빠른 속도로 쉼없이 했다. 매일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였더니 이제는 별로 힘들지 않다고 했다. 기도만 하는 것도 힘들텐데 절까지 하며 사분정근을 하니 그 근성이 놀라울 뿐이었다. 법흥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기도시간 짬짬이 시간을 내어 산행을 즐겼다.
이제는 말이 필요없는 산과의 대화시간이었지만 서로의 뜻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로 송이가 많겠다며 씨익 웃어보이던스님. 하산길의 허기를 송이버섯으로 채우다가 넌즈시 강원에 가 공부할 생각 없느냐고 물었더니 부처님 법이 다 한가지로 통하는데 어디서 공부한들 대수냐고 말한다.
자신은 늦깎이라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기도로 대신하겠다며 자신의 공부까지 다해 달라며 너털웃음을 짓고는 훠이 훠이 동방자락을 흩날리며 저만치 앞서가는 그의 등이 무척 커 보였음은 내 눈의 착각이었을까?송이버섯 몇 송이를 신문지로 정성스럽게 싸서 길 가다 먹으라며 주고는 환한 웃음으로배웅해 주던 대공스님을 어제 본 듯 한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지금은 어디에서 수행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어느 곳 어느 도량에서라도 열심히 정진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한 생각을 쉬어 불현듯 길 떠나 보면 언제나처럼 우연히 만날 수 있으리라. 그때를 대비하여 차 한 통을 준비해 두어야 겠다.
■고려대장경연구소 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