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장좌불와 오후불식
앞으로 3개월간 ‘스님이야기’를 집필해 줄 지묵스님<사진>은 1976년 송광사에서 법흥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이후 주로 산사에서 공부하면서 수련회와 글쓰기를 통해 생활불교를 이야기해 왔으며 현재 승보종찰 송광사 총무로 있다. 펴낸 책으로는 <죽비 깎는 아침> <초발심자경문> <산승일기> <나마스테> <날마다 좋은 날>등.
心心心難可尋(심심심난가심) 마음마음 한 마음은 정말 찾기 어렵네.
寬時 ▲法界(관시 변법계) 쫙 펼치면 호호탕탕하여 법계에 충만하고
搾也 不容針(착야 불용침) 좁게 접으면 현현밀밀하여 바늘 하나도 용납치 아니하네
我本求心 不求佛(아본구심 불구불) 내 본래 구하는 마음으로 부처를 구하지 말지니
了知三界 空無物(요지삼계 공무물) 삼계는 공하여 한 물건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하느니라.
달마의 <혈맥론(血脈論)>중 한 부분이다. 나는 그때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강원 생활을 중도 하차하고 방황하던 때였으니까. 홀연 발길닿는 대로 인연따라 간 곳이 금정산 원효암(元曉庵)이었다. 여기서 겨울 한철을 지내면서 밤으로는 저녁 예불 후에 지유(知有) 스님으로부터 선문촬요(禪門撮要) 앞 부분을 배웠는데 지금까지도 달마의 혈맥론 이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원효암 주불 관세음보살상에 대한 영험스런 이야기가 지금도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제시대 때의 일이다. 관세음보살상이 뛰어나서 당시 고위직에 있던 이가 일본으로 모셔가서 집안에 모셔두었는데 불이 나버렸다. 다시 딴 집으로 옮겼으나 역시 불이 났다. 불보살님을 경우에 맞지 않게 모셔갔기 때문에 과보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은 다시 원래 위치로 모셔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효암 주불 자리를 되찾은 것이다.
스님은 6.25 때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해인사 치문반 때에 6.25를 만났다고 했다. 동진 출가를 하고 동산(東山) 선사를 은사로 계를 받은 후에 강원에 입방한 것이다. 농구화를 신은 괴뢰군은 관음전에 책상을 놓고 임시 사무실을 차려서 스님네의 신분과 성분을 점검하였다. 줄을 세워서 하나하나 심문 비슷하게 신상을 조사할 때에 어떤 이들은 어름하게 대답해서 따귀를 얻어맞기도 했다. 스님 차례가 되었다.
“왜 출가를 했는가?”
“세상사가 무상하기 때문에 출가를 하였소.”
스님이 대답하자, 별 말을 않고 대열에서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스님은 그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고생고생을 하다가 문득 밤중에 꿈을 꾸고 죽자사자 어둠 속을 토끼뜀 뛰어 구사일생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때 쌀을 잘 일어서 돌 없이 밥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피곤한 중에 잠을 자다가,
“어서 일어나서 도망쳐라!”
하는 공청(空聽) 소리에 무조건하고 깨어 일어나 뛰었다고 한다. 이 일은 수행자에게 내려진 불보살님의 큰 가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유스님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느날 운전이 미숙한 이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 크게 부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 하게 되었다. 의사가 수술을 하기 위해 마취제를 주사하려고 하자 스님은 거절을 하면서,
“괜찮으니 그냥 수술을 하시오.” 하고 침대 위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렸다.
옛날 인욕선인은 아상(我相)이 없는 까닭에 몸이 토막토막 잘리는 극한 상황에서도 끄떡없이 인욕하였다는 이야기가 <금강경> 법문으로 나온다. 우리 범부 중생은 자존심인 ‘나’라고 하는 상이 있는 까닭에 바늘만 살짝 닿아도 아픈 것이다.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들어서 아상이 사라져 버리면 아프다고 호소할 내가 없고 호소를 받을 나도 없어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하셨을 때의 삼매는 해인(海印)삼매였다. 염불삼매, 독경삼매, 주력삼매 등등도 많고 8만4천 삼매 무량묘의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시비와 이해타산이 앞서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어렵다.
지유스님은 마취제를 맞지 않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더구나 실밥이 아물기 전에는 침대 위에서 거동도 삼가 해야 하는데 그대로 걸어다녔으니!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선문촬요 일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석을 어떻게 꼼꼼하게 달아서 강의하시는지 모른다. 길지 않은 시간에 스님을 모시고 지낼 수 있었다는 데에 대해서 지금도 감사한다.
20년 가까이 장좌불와(長坐不臥)에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시고 계신 스님 곁에서 겨울을 나면서 어느 날 밤중에는 아무 할 일 없이 그냥 부산 서면 거리까지 내려가서 다시 절에 온 적도 있었다. 지금도 여행을 즐기는 편이긴 한데 그때는 몽유병환자처럼 밤새 산이고 거리를 헤매었으니 방황치고는 길었다. 마음 마음 한 마음이여, 정말 찾기 어렵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