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취미로 물리치시고…
莫逐有緣(막축유연) 세속 인연을 따르지 말고
勿住空忍(물주공인) 출세간의 공에도 머물지 말지니라.
이 법문은 삼조(三祖) 승찬(僧瓚) 대사의 <신심명(信心銘)> 한 부분이다. 지유스님은 이 법문대로 사시는 분으로 믿어졌다.
스님은 공양을 아침과 점심만 하고 저녁은 하지 않으신다. 울력을 한 날, 시내에 볼 일을 보러 갔다가 온 날 역시 두 끼니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평상시대로 일을 다 하신다. 어떤 때에는 공양주가 방편을 써서 “스님, 국수예요.” 하고 권할 때 마지못해 조금 드신다. 나는 처음 이 모습을 보고 저녁은 ‘오후 불식’에서 ‘오후 불밥’이란 말을 생각하였다.
흉내내어 오후 불식을 하거나 오후 불밥을 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다. 나는 어떤 때 밥만 안 먹고 미수가루를 한 대접 먹은 일도 있다. 또 절 밖에 나와서는 자장면으로도 채웠다. 원칙을 말한다면 반칙임에 틀림이 없는 일이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는 자유인. 지유스님은 그런 분이다. 장좌를 하시는 곁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다. 정말 졸지도 않으신다. 헌데 특이한 방편이 있다.
사람마다 잠이 오는 시간대가 다르다. 초저녁, 한밤중, 새벽녘 등 제각기 잠이 쏟아져 오는 때가 다른데, 스님은 한밤중 견디기 어려울 때쯤이면 좌선하는 자세를 풀고 일을 시작한다. 공구가 많기도 하다. 시계, 카메라 같은 걸 다루는 정밀기구가 있는가 하면, 라디오, TV를 다루는 기구 등 별별 공구가 다 있다. 물건을 뜯었다가 맞추고 또 손볼 것이 있는 걸 손본다. 처음에는 뜯었다가 맞추기를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나 책을 통해서 혹은 전문가에게 알아보고는 원상대로 조립해내는 기술이 있으시다.
흰 종이 위에 차근차근 나사못을 늘어놓고 순서대로 해체시키는 모습을 보노라면 재미가 있다. 일에 열중하는 동안 잠은 어느새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잠은 올 때 죽어라고 쏟아졌다가도 그 순간이 지나면 말짱 개운해진다. 감각은 대개 그렇게 집중되어 있다. 배도 고프다가 한동안이 지나면 그 배고픔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여간 스님은 별난 취미로 잠을 물리치는 비결을 가지고 있으신다. 춘성 스님은 밤중에 걷는 걸로 잠을 물리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앉아만 있으면 졸음에 지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은 송곳을 턱 아래에 바로 세워두고 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음에는 송곳 때문에 앞으로 꾸벅거리지 않다가 며칠이 지나서는 좌우로 꾸벅거렸다나.
잠을 이기는 사람은 장사도 그런 장사가 없다. 백두장사 한라장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앉으면 졸음에 빠진다. 전생에 무슨 연을 지었기에 공부는 뒷전에 가고 그렇게 잘 조는 것인지 한심스럽다. 오후불식을 하면 졸음이 적으나 또 허리힘이 없어 자꾸만 허리가 굽어지는 게 탈이다. 이래저래 힘들다.
한번은 신도분의 따님이 와서 주지실에 누워 지낸 적이 있었다. 대학생인데 어딘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쉬는 모양 같았다. 물론 방사가 비좁아서 그런 탓도 있었겠지만 스님은 그런저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남자 여자 하고 가리는 일도 별 무리 없이 넘기셨다. 평소 약간 끼가 있을 양이면 소문이 파다하게 날 터인데 말이다.
“주지실에 여자애가 자고 있다.”
“큰일이다. 문란해진 주지실을 그대로 둘 것인가?”
어쩌구 저쩌구 하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높을 법한데 역시 스님의 법력 탓인지 아무 탈이 없었다. 혹 이 이야기는 내가 오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속가 친척의 조카애 정도 되는 딸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통하는 이야기인가. 자칫하면 방 앞에 남녀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만 있어도 말이 많은 세상이 아닌가? 초연해졌다고는 해도 그렇게 하기는 보통이 아니다.
스님의 생활에서 나는 어떤 승보의 표준이랄까 불제자로서 스님의 전형적인 모습이 잡혀서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다. 방황도 이 이후 다소 잡힌 셈이다.
“스님, 선방을 갈려면 어느 선방을 갈까요?”
지유 스님은 이 질문에,
“요즘 새로 개원한 불국사가 좋을 것이오.”
하고 추천하셨다. 불국사 선원에서는 중국식 단(壇) 위에서 좌선을 한다는 이야기가 퍽 호기심을 끌었다. 개원한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아 일타 스님 등 쟁쟁한 스님네가 계신다는데 나도 동참하고 싶었다.
스님의 개안(開眼)은 희양산 봉암사 조실을 지냈던 서암(西庵) 스님과 함께 정진을 할 때에 한 스님은 산에서 내려오고 한 스님은 산으로 올라가는데 눈이 서로 마주치자 이미 과거의 그 범부 중생이 아님을 간파하고 서로 인가를 하였다는 일화가 선방 지대방에 전해온다. 불불상견(佛佛相見)이라, 부처가 부처를 알아본다는 법문 말씀 그대로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