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이라고 쓰신다
스님의 필치는 물 흐르듯이 유연하고 능숙하시다. 나는 편지를 받아보고 글을 쓴 이의 체격과 성격을 판단함에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듯한데, 글씨 모양에 따라 신장이 드러나는 것 같다. 키가 훌쩍 큰 이는 의외로 깨알같이 작은 글씨를 쓰고 반대로 키가 작은 이는 큼직하게 글씨를 쓴다.
또한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대가(大家)의 글씨는 유연하다. 말하자면 법정 스님의 필치도 여기에 속한다. 스님은 대체로 작은 글씨를 유연하게 쓰신다.
이런 글씨를 받아보는 이는 평생 잊지 못하는 듯 하다. 그래서 스님의 옥서(玉書)에 사인을 받으려고,
“스님, 한 말씀 써 주셔요.”
할 때에는, ‘한 말씀’ 하고 쓰신다. 붓을 들고 가서는 점 하나라도 좋으니 찍어달라고 조르면서 종이와 붓을 준비해 가면, 정말 ‘점 하나’ 만을 찍고 멈추신다.
또 어떤 육덕이 좋은 노 보살이 불명을 지어달라고 부탁을 올리니 즉석에서 이렇게 작명을 하신다.
“우량모(優良母) 보살!”
체격이 튼튼한 아이의 튼튼한 어머니로 적합하기에 ‘우량모’로 지으신 것이다.
한번은 엽서 한 장을 보냈는데 그 엽서를 받은 보살님이 돌아가실 때에 이런 유언을 하였다고.
“부탁이 있소. 내 위패 옆에는 큰스님이 친필로 써서 보내주신 엽서를 놓아다오.”
스님은 이 사실을 아시고부터 다른 이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쓸 때에 더욱 조심스러워 졌다고 하신다.
외국여행을 하실 때에 합장주나 조그만 기념품을 챙겨서 간혹 나눠 드리는 일도 스님의 심경 변화가 있은 이후의 일이다. 특히 인도 여행에서 불자들을 만날 때에 나눠준 조그마한 보시품이 받는 이에게 마음의 큰 선물로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모시고 떠났을 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휴게소가 가까워 졌을 때였다. 스님이 말씀을 꺼내신다.
“지묵 수좌, 쵸콜렛 먹고 싶지 않아?”
나는 영문을 모르고 대답한다.
“아니요, 먹고싶지 않아요.”
또 스님이 다른 말씀을 하실 때가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 않아?”
“아니요, 먹고싶지 않아요.”
그러나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스님이 잡수시고 싶을 때에 물으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흔연히 대답한다.
“네에, 먹구 싶어요.”
이러면 스님은 사오라고 해서 함께 잡수신다. 옛이야기에 자기가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누가 시키지 않으면 자기가 나서서 이런 말을 먼저 하였다고 한다.
“동서, 노래해.”
하고 옆의 동서 옆구리를 찔벅거렸다나.
마을에서는 할아버지가 떡을 자시고 싶을 때에,
“얘들아, 너희들 떡 먹고 싶지 않니?”
하고 괜히 손자들에게 물으신다. 이게 옛날 어르신네가 점잖하게 처신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어르신이 체신 머리 없이,
“무엇 무엇이 먹구 싶다.”
하지는 않았는데 은근하면서도 점잖은 표현법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일이 있다.
불일암에서 공양주로 지낼 때였다. 객이 와 있을 때에 저녁밥을 지을지 말지 망설여진다. 차를 마시는 시간이 길어지고 객은 떠나지 않고 해서 어떨까 싶어 스님의 눈과 마주 친다. 이때였다. 스님은 정말 전광석화처럼 눈치를 번쩍 채고 한 말씀을 하신다.
“여기, 오늘밤에 달이 뜨면 달맞이꽃이 보기 좋아.”
이 말씀은 객이 저녁을 드신다는 사인이다.
“가만있자, 불일암까지 오는데 몇 시간 걸렸어요?”
이 말씀은 객을 보고 묻고 있지만 실은 공양주에게,
“이 객은 곧 내려 갈거야.”
하는 말씀이시다. 아니나 다를까,
“한 30~40분 걸렸어요.”
하고 객이 차를 훌쩍 마시고 떠날 채비를 한다. 그래도 객이 눈치가 없을 때에는,
“큰 절로 내려가는 길에 이 책을 잊지 말구 가져가.”
한다거나 혹은,
“아, 주차장까지 30~40분 걸리지요?”
하며 떠나는 이야기로 계속 화제를 삼는다. 나는 이런 대화를 통해 금방 알 수가 있었다.